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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1.17 [06:02]
예수와 석가모니(1)
초기 근본불교 사상에 대한 기독교적인 해석...석가모니, 그는 누구인가?
 
정성민
 

 첫 번째 담론:

석가모니, 그는 누구인가?

 

불교는 지금부터 약 2600년 전 B. C. 586년 5월 보름날, 북부 인도 카빌라국 시수서한에서 정반왕과 마야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 “석가모니”로부터 시작된 종교이다.

 

석가모니는 B. C. 506년 80세 되던 해에 쿠시나갈의 사리 쌍수 밑에서 마지막 열반경을 설파하고 열반에 들어갔다.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는 자신을 한 사람의 순수한 인간으로 남길 원했는데, 이는 다른 종교의 창시자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왜냐하면 다른 종교 창시자들은 자신이 신이거나 신에게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거나 아니면 신이 인간으로 모습으로 나타난 화신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석가모니는 자신이 인간일 뿐만 아니라 그 어떠한 외부적이고 초월적인 계시나 영감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석가모니를 부처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가 깨달은 자이기 때문인데,

 

이러한 깨달음은 바로 인간적인 노력의 결과일 뿐이라는 것이다. 결국은 인간만이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모든 인간들에게 부처가 될 가능성이 열려있는 것이라 한다. 하지만 석가모니가 너무나 완전하고 순수한 인간이었기에 후대에 이르러서는 ‘초인간’으로 숭배되었다.

 

이에 대해 정통한 불교학자인 라훌라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우리는 붓다를 순수한 인간이라고 부른다. 그는 인간으로서 너무나 완전했기 때문에 후에 대중적인 종교에서 거의 ‘초인간’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불교에 의하면 인간의 지위는 지극히 높다. 인간은 스스로가 그의 주인이다. 그의 운명 위에 군림하는 보다 높은 존재나 권력은 없다.” (붓다의 가르침과 팔정도, 개정판 22) 이러한 순수한 한 인간으로서의 석가모니와는 달리 초인간으로서의 그의 출생에 관한 전설들이 전해지는데, 아마도 불교가 대중적인 종교로 전환되면서 생겨나는 전설이나 신화로 이해되어진다. 이제 경전에 나오는 석가모니의 전생에 관한 이야기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석가모니는 전생에 뱀이었을 때도 있고, 토끼였을 때도 있었으며 왕으로도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인간으로 태어나기 직전에는 도솔천이라는 보살로서 하늘나라에서 오랫동안 온갖 즐거움을 누리며 살았다고 하는데, 중생들을 가르쳐서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자신의 안락을 포기하였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출생부터 남달랐다. 그의 어머니는 흰 코끼리가 허리를 통해 자기 몸 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꾼 이후로는 부부관계를 갖지 않았다는데 싯다르타, 곧 석가모니가 잉태되었다고 한다. 비록 그녀가 동정녀가 아니었고 이미 다른 자식도 낳았지만, 이는 어쩌면 초자연적인 힘에 의한 동정녀 탄생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모친 마야부인이 석가모니를 낳았을 때, 지나가는 한 현인이 그 아기를 보고 장차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될 것이고 예언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고대 인도의 사상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통치자, 즉 지상을 무력이 아닌 정법(正法)으로 전 세계를 통치하며 다스리는 군주를 의미한다. 이러한 신비한 일은 그의 죽음에도 뒤따랐다고 한다. 석가모니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 하늘과 땅이 진동하며 슬퍼하였다는 것이다. 즉 땅이 흔들리고 꽃비가 내렸다고 한다. (세계의 종교, 84-85)

 

니니안 스마트는 석가모니의 생애에 얽힌 전설이나 신비한 이야기들을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전설로 전해오는 부처에 관한 이야기는 일말의 역사적 사실에다가 온갖 이야기를 갖다 붙인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에 관한 역사적 사실, ‘역사적 부처’를 그대로 집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그의 생애에 관한 전설적인 이야기도 중요하다. 불교인들이 그를 어떤 모습으로 기억하고 신봉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Ibid, 81)

 

그렇다면 우리가 알 수 있는 역사적 부처, 즉 석가모니의 생애는 어디까지가 사실일 것인가? 부처가 이 세상에 고타마 싯다르타로 태어난 것은 기원전 586년이라고 한다. 그가 태어난 곳은 갠지스 강 유역에서 형성되고 있던 새로운 역사의 중심지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석가모니가 속한 석가 족은 코살라 왕국의 통치하에 있었는데 그의 부친 정반왕은 그 코살라 왕국에 속한 작은 왕국의 통치자이었다. 석가모니는 부유한 환경 속에서 호화스럽게 자라났고, 결혼을 하고 아들도 하나 낳았다.

 

그러나 결국 세속을 떠나서 떠돌아다니며 구도하는 수행자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다. 왜 석가모니는 갑작스럽게 부유한 삶을 포기하고 떠돌아다니는 수행자의 삶을 선택했을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떠한 중대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필자가 그 세 가지 이유를 추측하자면, 첫째로 석가모니의 신분이 비록 왕자지만 인도의 계급제도에 의하면 제 2의 신분계급인 크샤트리아다. 게다가 자신의 나라는 코살라 왕국에 속한 아주 작은 나라이다. 무엇인가 제 2인자의 서러움과 답답함을 나이가 먹어가면서 더 느꼈을 것이고,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무력감과 함께 울분도 느꼈을 것이다.

 

둘째로, 브라만 계급의 타락이다. 브라만들이 자신들은 신의 선택받은 제사장 계급이라고 특권의식을 나타내는 것과 신에게 드리는 제사를 자신들이 집전하면서 누리는 특권들을 누리는 바라보면서 석가모니의 마음은 정의심에 불탔을 것이라고 본다.

 

셋째로 석가모니의 허무주의적이고 염세적인 성향인데, 이는 그가 태어난 지 8일 만에 그의 모친인 마야부인이 죽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인생무상을 깨달았던 것이다. (무샤고지 사네아츠, 붓다, 20-21.) 이러한 세 가지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상황에다가 석가모니 자신만의 독특한 신분적 위치와 유아기적 아픔들이 석가모니로 하여금 현실을 포기하고 광야로 뛰쳐나가게 하였을 것이라고 추측을 할 수 있다.

 

사실 석가모니가 처한 상황 속에서 그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이나 방향은 세 가지 중의 하나인 것이다. 하나는 브라만을 중심으로 하는 불합리한 계급사회구조를 뒤엎기 위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개혁을 시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개혁을 통해 사회정화운동을 일으키는 것이고,

 

마지막으로는 자신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사회를 바라보며 허무주의에 빠져 철학적 몽상가가 되거나 그냥 모든 것을 체념하고 세상을 즐기는 풍류가가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석가모니가 선택한 길은 정치적인 혁명보다는 사람의 정신을 만지는 사회정화운동이었던 것인데, 이는 어쩌면 바로 예수가 택한 길과도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석가모니는 노인과 병자, 화장되는 시신들 그리고 걸식하는 구도자들을 보고 마음의 충격과 도전을 받게 되었고, 결국 부인과 아들을 떠나 그도 떠돌아다니면서 극도의 금욕적인 삶과 명상의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는 마침내 지금의 부다가야에 있는 한 보리수 아래에서 세상의 이치와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깨닫게 된다. 드디어 그는 붓다, 즉 부처라 불리게 된 것이다. 부처는 깨달은 자라는 뜻이다.

 

그는 바라나시 외곽의 사르나트에 있는 사슴공원에서 첫 번째 가르침(설법)을 베풀게 되는데, 우리는 이를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고 부른다. 이는 처음으로 법(진리에 대한 가르침)의 수레바퀴를 굴렸다는 뜻이다. 깨달음을 얻지 못했던 동료수행자들이 그의 첫 제자들이 되었으며 나아가 승가라는 수행공동체가 형성되어 새로운 종교집단의 핵심이 되었다.

 

석가모니는 그 후로 80세까지 45년 동안 여러 곳을 다니며 가르침을 펴고 승가 조직을 다듬었다. 그는 왕과 왕족들뿐만 아니라 매춘부와 대장장이들과도 교제하며 누구에게든지 고통에서 자유로워지는 길, 즉 해탈의 길을 가르쳐주었다. 그의 나이 80세에 이르러 마침내 소화 장애로 탈이 나면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석가모니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도 교훈을 남겼는데, 이는 모든 존재는 영원히 존재하는 실체가 없기에 삶의 여러 가지 요소가 일시적으로 화합하여 생긴 무상한 것이며, 석가모니 자신도 또한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임을 보여준 것이다. 죽기 전에 석가모니는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내가 죽은 뒤에는 나의 가르침을 너희들의 스승으로 삼아라. 게으르지 말고 늘 스스로를 점검하고 정진하라.”

 

그래서인지 그는 자신의 후계자를 지정하지 않았다. 아마도 후계자를 지정하여 새로운 종교로서 구조와 질서를 찾는다면 그의 가르침에 역행할 것을 예측했기 때문일 것이다. 석가모니가 죽은 후, 그의 신자들은 그의 시신을 화장했고, 남은 유해는 각지로 나누어져서 석관에 안치했다. 그리고 그것이 후대에 큰 봉분이나 또는 고전시대 불교 사원의 중심이 된 탑으로 발전되었다. (세계의 종교, 81-93 참조. 또한 Peter Harvey, An Introduction to Buddhism: Teachings, History and Practices, 26-27 참조.)

 

그렇다면 우리에게 석가모니는 어떤 사람인가?

표면상으로 보면, 석가모니는 불교의 창시자로 기억되지만, 실제로 그는 불교의 창시자이기 이전에 종교개혁자라는 사실이다. 타락한 힌두교를 개혁한 것이 먼저이고 불교라는 새로운 종교의 발생은 그 결과라는 것이다.

 

석가모니는 3억이 넘는 자연신들에게 생사화복을 빌면서 인간의 운명을 그들에게 맡기는 힌두교의 미신적이고 기복적인 민간신앙을 거부하고, 인간의 운명을 자신 스스로 짊어지는 인간중심적인 종교를 창시하였던 것이다. 석가모니는 의인화된 그 수많은 자연 신들의 존재를 부정하고, 신의 존재의 유무는 알 수가 없다는 무신론적이고도 불가지론적인 입장을 주장한 것 자체가 종교개혁의 출발점이었다.

 

더 나아가 운명의 주체가 신 중심에서 인간으로 전환되었기에 업보를 강조하는 전통 힌두교의 수동적이고 숙명적인 윤회설보다는 인간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보다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윤회설을 주장했던 것이다.

 

그렇다. 석가모니는 기복신앙으로 점철된 힌두교의 신 중심적인 종교를 인간중심적인 종교로 탈바꿈한 종교개혁자인 것이다. 석가모니는 “인간은 자신이 자신의 피난처이다. 다른 누가 피난처가 되겠는가?”라고 말했듯이 자신의 제자들에게 제자들 각자가 자신의 피난처가 되어서 신과 같은 초월적인 대상들에게 조차도 도움을 구하지 말라고 했던 것이다.

 

결국 석가모니는 우리들 각자가 우리 자신을 의지하고 우리 자신을 계발해서 우리 스스로 해탈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는 인간이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사용하여 그 모든 고통과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이 자력적인 종교로서의 불교의 진정한 모습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인간의 자유와 능력에 관하여 라훌라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는 이 길을 스스로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붓다가 제자들에게 자유를 허락한 것은 이러한 개인적인 책임의 원리 때문이었다...... 붓다가 허락한 생각의 자유는 어떠한 종교의 역사 속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다. 붓다에 의하면, 인간의 해탈은 진리에 대한 자신의 자각에 기인하는 것이지 헌신적인 선행에 대한 보수로서 드리워지는 영예로운 은총이나 외적인 힘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유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22-24)

 

이러한 종교개혁자로서의 석가모니가 가능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과학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철학자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것도 무신론적인 철학자이기에 그렇다. 석가모니는 맹목적인 믿음을 거부하는 철학자로서 매우 현실적인 합리적인 사고를 품었던 것이다. 그래서 눈이 보이지 않는 신들, 특별히 자연신들을 거부하였는데, 그 이유는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세상의 악이나 고통이 만연할 수 있느냐는 합리적인 추론에 의한 결과이다.

 

석가모니는 또한 인간의 영혼이 영원하다는 힌두교의 유아론을 거부를 하였는데, 그에게 존재란 단지 정신적이고 물리적인 힘이나 에너지의 집합에 불과한 것이기에 영원하다고 우리가 믿고 있는 영혼의 존재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사후세계도 부정하였는데, 그 이유는 현재의 자아나 영혼과 동일한 불변의 실체가 사후에도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라훌라는 이러한 석가모니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영원하고 불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한 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똑같이 이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분명히 영원하고 불변한 것이 한 삶에서 다른 삶으로 이어지는 것은 없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파괴되지 않은 채로 지속하지만 순간마다 변화하는 연속이다. 이 연속이란 실제로 움직임 자체에 지나지 않는다. 밤을 새워 타는 불꽃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똑같은 불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불꽃도 아닌 것이다...... 이처럼 여기서 죽은 사람과 다른 곳에서 윤회하여 태어난 사람은 같은 사람도 아니고 다른 사람도 아니다. (74)

 

결과적으로 죽음은 생물학적 기능의 정지로서 이해가 되는 것인데, 이는 인간 존재가 심리적이고 물리적인 유기체에 불과하다는 현대 무신론 철학자들의 입장과도 동일한 것이다. 이는 석가모니가 비물질적인 자아로서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고 영혼을 단지 두뇌활동이나 중추 신경계의 작용이나 활동으로 받아들이는 것인데, 이는 마음과 몸, 영혼과 육체를 동일하게 보는 ‘심신동일론’과 동일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석가모니는 현대 심리철학의 선구자로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석가모니는 누구인가?

첫 번째로, 그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한 무신론 철학자라는 것이다. 두 번째로, 석가모니는 자신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철학적인 사고를 통해서 힌두교의 미신적이고 기복적인 민간신앙을 비판하고 개혁을 시도한 종교개혁자라는 것이다.

 

그는 힌두교의 유신론, 유아론, 유신론적 윤회론 등을 부정하면서 타력적인 종교의 문제를 극복하려고 한 인본주의적인 종교 개혁자이었다. 석가모니는 초월적인 신이나 영원한 영혼의 존재, 그리고 그로 인한 사후세계는 불가능한 것이고, 단지 자연법칙만이 존재하는 세계만이 진실한 세계라고 믿었던 것이다.

 

셋째로 석가모니는 불교의 창시자이다. 그는 타력종교로서 힌두교의 타락과 한계를 극복하고 인간 스스로 자신을 구원하는 자력종교의 세계를 열어 놓은 종교 창시자인 것이다. 힌두교의 미신적이고 기복적인 신앙을 비판하는 부정적인 입장에만 서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인간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제시한 종교 창시자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석가모니는 자신이 가르친 구원의 길을 스스로 행한 성인이라는 것이다. 구원에 이르는 길인 팔정도를 스스로 행하면서 극도의 금욕의 길을 걸어간 거룩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기독교인 우리들조차도 석가모니를 언행일치를 실행한 성인의 한 사람으로서 존경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두 번째 담론부터 석가모니의 이러한 세계관과 구원관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과연 불교는 기독교와 무엇이 다르며, 과연 예수를 믿고 따르는 기독교인들이 석가모니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를 다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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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10/15 [02:19]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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