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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6.27 [22:01]
<치유칼럼> 프로이드와 아들러
김영근 목사(가족치유상담연구원장)의 치유칼럼 1
 
김영근

 

심리상담학자들의 삶, 학문과 사역에서 교훈을 얻어 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 다루고자 하는 인물은 알프레드 아들러(1870-1937)입니다. 그는 정신분석학자로서 개인심리학의 창시자입니다.

 

그는 정신분석학의 원조인 프로이드의 제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프로이드는 이 아들러를 칼 융(1875-1961)과 함께 그의 후계자로 지목했습니다. 프로이드는 자신의 후계자가 될 사람에게 자신의 모든 여타 이론에 반대해도 좋지만 한 가지만은 반대하지 말도록 부탁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원인론(결정론)’으로써 사람들은 과거에 겪은 트라우마(상처)의 절대적인 영향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과거의 삶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는 이론입니다. 그런데 프로이드가 후계자로 삼기를 원했던 아들러와 융은 스승인 프로이드의 결정론에 도전합니다.

 

아들러는 인간은 변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은 과거의 트라우마에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목적에 따라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here and now)”에서 결단해서 새로운 목적을 갖게 되면 사람은 그 방향으로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융도 인간은 어린 시절의 받은 영향력으로 일생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아탐닉에서 자아초월로 변화되면 중년기 이후에도 성장은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자신의 이론에 반기를 들었던 아들러에게 프로이드는 화가 나서 너 같은 난쟁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실제 아들러는 곱추병으로 알려진 구루병을 앓고 있었다)”고 비난했습니다. 이에 대해 아들러는 내가 비록 난쟁이지만 거인인 당신의 어깨 위에 올라서면 더 멀리 볼 수 있습니다.”라는 말로 응수했습니다. 스승의 말을 수용하면서 또 자신의 견해를 재치있게 표현했던 아들러는 스승 프로이드와 함께 심리상담학계의 거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일본의 철학자인 기시미 이치로와 작가인 고가 후미타케 두 사람이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을 이용해 책으로 출판했는데 이 책은 한국에 <미움받을 용기>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어 현재 국내에서 장기 베스트셀러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중심으로 아들러의 심리상담학의 중요한 이론을 나누고자 합니다.

 

 

기독교적 치유상담과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일반적인 치유상담 사역은 어떤 사람의 과거의 상처가 그 사람의 현재를 만들었다는 전제를 가지고 상담사역을 시작합니다. 예를 들면 한 내담자는 어린 시절에 부모에게 버림을 받았는데 그 결과로 현재에도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할까봐 대인관계에 소극적이고 자신감이 없어 한다는 것입니다.

 

상담자는 그 내담자를 다음과 같이 진단합니다. <그 사람은 가까운 가족들의 거절과 무관심으로 인격이 망가졌고 그 망가진 인격으로 실패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살아온 환경이나 겪은 상처는 그들의 인생에 주도적인 영향을 끼쳐서 현재의 그 사람을 만들었고 이렇게 만들어진 현재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이 치유상담의 주요한 전제입니다.

 

 

이러한 상처를 치유하는데 있어서 정신분석학에서는 그 상처의 원인을 발견하는데 집중하고 자유연상(free-association) 같은 방법을 통해 그 원인을 알면 치유가 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적 치유상담은 여기에 도전을 합니다. 과거에 경험한 상처를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그 상처받은 사건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서 치유하고 그 치유된 상처는 한 인간의 성장과 인격의 성숙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상처를 경험할 때에 연약한 내가 혼자 그곳에 있으면서 무기력하게 당하고만 있었는데 이제는 신앙의 눈으로 새롭게 조명해보니까 그 상처의 현장에 내가 혼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셨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 당시에 전능하신 예수님이 크고 강한 팔로 나를 감싸주고 계셨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분이십니다(13:8). 내가 상처받고 있을 때에 나는 예수님을 몰랐을지라도 예수님은 나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 고통의 현장에서 나는 홀로인줄 알았는데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셨구나 하는 믿음을 갖고 그 사건을 새롭게 조명하게 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에, 내가 혼자였을 때와 누군가가 나의 편이 되어 주었을 때의 차이는 엄청나게 큽니다. 캄캄한 밤에 산간 오막살이에 한 여인이 혼자 있을 때는 힘들지만 어린 아기 하나만 옆에 있어도 더 이상 두렵지가 않습니다. 사람은 그 누군가가 동행하면 힘과 용기를 얻게 됩니다.

 

그런데 함께하는 사람이 어린 아이가 아니라 예수님이라면 상처로부터 치유와 회복은 놀랍게 증가됩니다. 기독교 치유상담에서는 내담자는 과거의 상처받은 사건을 예수님과 함께 대응함으로 치유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들러는 과거에 겪은 트라우마가 현재 영향을 주고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극복했는가요? 그는 현재의 결단을 강조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과거에 겪은 트라우마에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목적을 향해 나아갈 것인가를 결정하게 됩니다. 모든 인간에게 그러한 통찰과 결단의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열등한 사람은 열등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월한 위치로 나아갈 수 있는 권력의지가 있다고 아들러는 말합니다. 아들러 자신의 생애가 그것을 잘 대변해 줍니다. 아들러도 열등감이 많은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는 구루병(뼈가 휘어지는 병)을 앓을 정도로 병약했고 42녀의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들러는 인정받는 형과 사랑받는 동생 사이에서 주목의 대상이 되지 못했고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에는 학업능력도 부진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는 그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본인도 이러한 열등감을 극복해서 초등학교 상급학년에서는 학업능력이 뛰어나게 되었고 이후에는 의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자신의 삶의 여정으로 볼 때에 그는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한 현재의 열등감에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열등감을 우월감으로 가는 창조의 변인으로 활용했습니다.

 

아들러는 프로이드의 제자로 정신분석으로 심리학계에 입문했지만 오히려 실존주의 인본주의에 속하는 심리학자군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경험에 따라 인생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새로운 통찰과 결단에 의해서 새로운 목적을 향해 자신을 개발시키는 심리상담학적인 접근을 했습니다.

 

또한 아들러는 그렇다고 인본주의적인 심리학이 주장하는 긍정심리학에 매여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들러는 자기긍정과 자기수용을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습니다. 자기긍정은 긍정심리학에서 보는 자신의 긍정적인 영역에만 집중합니다. 자신의 모든 영역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면서 실패나 약점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자기수용은 자신의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을 동시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자신 안에 있는 부정적인 영역을 애써 부인하지 않습니다. 부정적인 영역도 귀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런 면에서 아들러의 자기수용은 칼 융의 인격완성을 위해 페르조나그림자를 동시에 수용하는 개성화에 이르는 길과 맥이 통합니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기독교치유상담에서는 과거의 상처는 인격의 성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상처가 치유된 사람은 과거에는 겪은 상처를 아픔으로만 받아들였지만 이제는 그 치유된 상처로 인해 인격의 성숙을 가져오고 자신의 삶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주변 사람들의 삶도 통합적으로 수용합니다. 이러한 면에서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은 기독교적 치유상담과 접근방법에 있어서도 맥이 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시미 이치로는 <미움받을 용기>에서 한 청년과 대화의 형식으로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을 5가지로 정리했는데 본 글에서는 기시미 이치로가 정리한 내용을 축약해서 설명하고자 합니다. 5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트라우마를 부정하라>. 둘째,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시작된다.>, 셋째는 <타인의 과제를 버려라>. 넷째는 <세계의 중심은 어디에 있는가?>. 다섯째는 <지금 · 여기를 진지하게 살아가라> 등입니다.

 

첫째, 트라우마를 부정하라

 

사람이 불행한 것은 트라우마를 만들었던 과거의 환경이나 사람의 탓이 아니고 본인의 능력부족도 아니고 그저 용기가 부족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아들러는 우리의 인생이 경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결정된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어떠한 목적에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젊은이는 불안해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고 불안이나 공포를 만들어 냅니다. 밖에 나가지 않고 방안에 틀어박혀 있으면 부모가 걱정을 해주고 부모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어서 그런 행동을 합니다.

 

따라서 젊은이는 용기를 가지고 밖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도 밖으로 나가지 않는 젊은이에 대해서 지나친 관심을 끊어야 합니다. 물론 젊은이가 밖에 나가기 위해서는 거절당할 용기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아들러는 생활양식은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에 현재에도 새로운 생활양식을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변화될 수 있는데 변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변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변화의 길은 지금의 생활양식을 버리겠다고 한 결심부터입니다.

 

둘째,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아무리 어려워 보이는 관계일지라도 마주하는 것을 회피하고 뒤로 미루어서는 안 됩니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은 이 상황에서 이대로 멈춰서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건강한 사람은 회피가 아니라 부딪쳐야 합니다.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지 않는 것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인간관계에 발을 들여놓으면 사람들은 크든 작든 상처를 받게 되어 있고 그들 또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게 됩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열등감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주관적 해석입니다. 내 키에 대한 열등감은 어디까지나 타인과의 비교- 다시 말해 인간관계 -를 통해 만들어낸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입니다. 만약 비교해야 할 타인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는 내 키가 작다는 생각을 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객관적인 사실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하지만 주관적인 해석은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습니다.

 

아들러는 열등감열등콤플렉스를 분리해서 사용했습니다. 열등감은 노력과 성장을 자극하는 계기가 됩니다. 가령 학력에 대한 열등감을 느껴 나는 학력이 낮다, 그러니 남보다 몇 배 더 노력하자라고 결심한다면 바람직한 상태가 됩니다.

 

그런데 열등콤플렉스는 자신의 열등감을 변명거리로 삼기 시작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구체적으로 나는 학력이 낮아 성공할 수 없다”, “나는 못 생겨서 결혼을 할 수 없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일상생활에서 “A라서 B를 할 수 없다.” 라는 논리를 내세우는 것은 이미 열등감의 범주를 벗어난 것이고 이것은 바로 열등콤플렉스입니다.

 

인간관계의 중심에 경쟁이 있으면 인간은 영영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불행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경쟁이나 승패를 의식하면 필연적으로 생기는 것이 열등감입니다. 늘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고 이 사람에게는 이겼어, 저 사람에게는 졌어. 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타인의 과제를 버려라

 

아들러는 적절한 행동을 하면 칭찬받고 부적절한 행동을 하면 벌 받는 상벌에 의한 교육을 비난합니다. 상벌교육의 결과로 생기는 것은 칭찬하는 사람이 없으면 적절한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벌주는 사람이 없으면 부적절한 행동을 합니다.” 이러한 생활양식은 잘못된 것으로 우리는 타인의 기대를 만족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인간관계 문제의 대부분은 타인의 과제를 함부로 침범하는 것- 혹은 자신의 과제에 함부로 침범해 들어오는 것 -에서 발생합니다. 아이와의 관계를 고민하는 부모는 대개 아이의 인생은 곧 내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아이의 과제까지도 자신의 과제라고 생각하며 떠안습니다. 이렇게 되면 늘 아이만 생각하다가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인생에서 자신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인간은 모두 인간관계로 고민하고 괴로워합니다. 그 관계는 부모님과 형과의 관계일 수 있고 직장동료와의 관계일 수도 있습니다. 인관관계의 해결의 구체적인 방법은 이것이 누구의 과제인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과제를 분리해서 어디까지가 내 과제이고 어디서부터가 타인의 과제인가를 냉정하게 선을 긋고 분리하는 것입니다. 누구도 내 과제에 개입시키지 말고 나도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유란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것입니다. 남이 나에게 어떤 평가를 내리든 마음에 두지 않고 남이 나를 싫어해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정받지 못한다는 대가를 치르지 않는 한 사람들은 자신의 뜻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남에게 미움을 받는 것은 남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행복해지려면 미움받을 용기도 있어야 합니다. 그런 용기가 생겼을 때, 사람들의 인간관계는 달라집니다.

 

넷째, 세계의 중심은 어디에 있는가?

 

인정욕구에 사로잡힌 인간은 얼핏 타인을 보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자기 자신밖에 보지 않습니다. ‘이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타인의 평가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사람도 자기중심적입니다.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에만 집착하는 삶은 외에 관심이 없는 자기중심적인 생활양식입니다. ‘에게 집착하는 모든 사람은 자기중심적입니다. ‘자기에 대한 집착타인에 대한 관심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는 세계의 중심이 아닙니다. ‘는 인생의 주인공이면서도 어디까지나 공동체의 일원이자 전체의 일부입니다. 자기 자신밖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본인이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타인이란 나를 위해 뭔가를 해 줄 사람에 불과합니다.

 

아들러의 심리학에서는 온갖 수직관계를 반대하고 모든 인간관계를 수평관계로 만들고자 주장합니다. 인간관계를 수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상대를 자신보다 아래라고 보고 개입을 합니다. 아이가 공부하는 것은 아이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이지 부모와 교사가 대신해줄 수 없습니다.

 

개입이란 타인의 과제에 불쑥 끼어들어 공부해라고 하거나 그 대학에 가야 해하고 지시하는 걸 뜻합니다. 반면에 지원이란 과제의 분리와 수평관계를 전제로 합니다. 공부는 아이의 과제라는 것을 이해한 상태에서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수평관계에 근거한 지원을 아들러 심리학에서 용기부여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타인을 행위의 차원에서 보고 있습니다. 즉 그 사람이 무엇을 했는가?’ 하는 차원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하면 자리에 누워만 있는 노인은 주변 사람에게 폐만 끼치고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타인을 행위의 차원이 아닌 존재의 차원에서 살펴보면 타인이 무엇을 했는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그 자체를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다섯째,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아야 한다.

 

아들러는 자기에 대한 집착(self interest)을 타인에 대한 관심(social interest)으로 돌리고 공동체 감각을 기르는 것을 강조합니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자기수용타자신뢰’, ‘타자공헌입니다. 아들러는 적극적으로 자신을 긍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긍정이 아니라 자기수용입니다.

 

자기긍정은 하지도 못하면서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강하다라고 스스로 주문을 거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삶의 방식으로 자칫 우월 콤플렉스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한편 자기수용이란 하지 못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할 수 있을 때까지 앞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자신을 속이는 일은 없습니다.

 

자기긍정은 60점짜리 자신에게 이번에는 운이 나빴다. 진정한 나는 100점짜리야라는 말을 들려주는 것입니다. 반면에 60점짜리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100점을 맞으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라고 방법을 찾는 것이 자기수용입니다.

 

변할 수 있는 것변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주어진 것에 대해서는 바꿀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주어진 것을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내 힘으로 바꿀 수가 있습니다. ‘바꿀 수 없는 것에 주목하지 말고 바꿀 수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인생이란 찰나(순간)의 연속입니다. ‘지금이라는 찰나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를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삶이란 찰나 안에서만 존재합니다. 생활양식은 지금, 여기에 관한 이야기며 자신의 의지로 바꿀 수 있습니다. 직선처럼 보이는 과거의 삶은 사람들이 바꿀 수 없다는 결심을 반복한 결과로 그렇게 보이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인생은 완전히 백지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김영근 목사 프로필

▲ 가족치유상담연구원 김영근 목사     © 가족치유상담연구원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졸업

장신대 신대원(M. Div.) 졸업

프린스턴신학교(목회상담학, Th. M.) 졸업

뉴욕신학교(노인상담학, D. Min.) 졸업

한남대학교(기독교상담학, Ph. D.) 졸업

 

영화교회(서울, 교육전도사), 신광교회(부산, 전임전도사)

엄천교회 개척시무(진주노회, 경남 함양군, 담임목사)

팰리세이드한인장로교회(미국 뉴욕주, 부목사)

녹산사랑의교회(부산노회, 담임목사)에서 섬김

 

한남대학교 학제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역임

복음신학대학원대학교 상담심리학 교수 역임

대전신대, 부산장신대 목회상담학 강사 역임

장로회신학대학교 초빙교수(강의전담, 목회상담학) 역임

() 가족치유상담센터 대표(daum.cafe/가족치유상담센터)

() 총회(예장 통합) 훈련원 전문위원(치유상담)

() 한국기독교 복음주의상담학회 감독상담사

() 한국기독교 심리상담학회 수퍼바이저

 

<저 서>   

상처받은 영혼들에게 띄우는 편지(도서출판 기가연), 1998.

마음치유, 가족치유(에스라서원), 2001.

복음주의 기독교상담학(공저, CLC ), 2004.

복음주의 가정상담학 (공저, CLC), 2006.

영혼의 돌봄(공동역서, 기독교문서선교회), 2006.

전인치유(예장통합 총회훈련원), 2008.

쓴뿌리 치유(목양미디어). 2010.

홀로 걷는 길, 함께 걷는 길(목양미디어).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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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5/24 [23:58]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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