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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0.23 [14:01]
마르틴 루터, 튀링겐에서 빛을 발하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길을 따라(2)
 
김현배

   아이제나흐에서 젊은 루터의 고된 훈련
 
독일의 중부 튜링엔의 아담한 도시 아이제나흐(Eisenach)는 루터 당시 4,500명의 아이제나흐 인구 중 400명 정도가 수도사내지는 수녀들이어서 성직자들의 서식처(Pfaffennest)로 블리워졌다. 이곳에는 루터의 외갓집이 있었고, 루터가 청소년 학창시절을 보냈다. 14살 청소년 루터는 음악을 좋아하고 목소리가 뛰어났다. 그는 명문 귀족 집들을 찾아다니며 노래를 부르고 류트(lute)를 연주하면서 생활고를 해결했다. 어느날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 아이제나흐에서 가장 부유하고 상류 귀족인 우르술라 코타 (Ursula Cotta) 부인은 루터의 아름다운 노래에 감동되어 자기 집으로 초대하였다. 루터는 코타 부인의 사랑스런 섬김 속에 하숙생으로서 코타 하우스(Cotta Haus)에서 기거를 하게 되었다. 광산촌 서민 출신이었던 루터는 부유하고 교양있는 귀족들의 상류세계를 접할 수 있게 되었고, 학생으로서 루터는 이곳에서 1498년부터 1501년 까지 살았다.
▲ 루터가 청소년 시절 보냈던 게오르겐교회     © 뉴스파워
루터가 학창시절에 행복하게 살았던 이 루터하우스 (Luther haus)는 후에 아이제나흐의 목사관으로 쓰여지다가 지금은 루터의 학창시절과 그 생애, 지역교회의 역사를 기념하는 박물관으로 쓰여지고 있다. 루터하우스는 이 도시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독일 전통가옥 (Fachwerkhaus)중 하나다. 또한 루터가 살던 집 옆의 거리 구석에는 작은 사과나무 한 그루가 심겨져 있고 그 밑에 다음의 글이 쓰여져 있다. "Und wenn ich wusste, dass morgen die Welt unterginge, wurde ich doch heute ein Apfelbaumchen pflanzen".- Martin Luther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적은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는 구절과 루터의 이름과 문장이 적혀있다. 우리가 대부분 이 말이 스피노자 (Spinoza, 1632-1677)가 한 말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은 루터의 말이었다. 스피노자는 루터보다 뒤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기억해 보면 스피노자가 인용했으리라 본다. 루터의 표현이 원조인 셈이다.
 
또한 이 도시에는 1498년 마르틴 루터가 청소년 시절을 보낸 게오르겐 교회(Georgenkirche)가 있는데 루터는 이 교회에서 약 3년 동안 소년성가대원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 당시 폰 카이저베르크 목사의 설교를 들으면서 신앙에 눈을 뜬 루터는 그 이후 광명의 빛을 느끼기 시작했다. 
 
▲ 루터가 청소년 시절 살았던 코타하우스     © 뉴스파워

슈토테른하임 - “루터 인생의 결정적인 전환점”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신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하신다. 심한 폭풍 가운데서 나타나서 욥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은 지축을 흔드는 천둥과 번개로 루터에 나타나셨다. 명문 에르푸르트 대학원에서 법률 공부를 시작한 루터는 부모님을 찾아뵙고 먼 길을 걸어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친구와 함께 들판을 걷고 있던 루터는 폭우를 만났고, 그때 옆에 있던 친구 (후에 알렉시우스라고 불려짐)가 천둥 번개 속에서 벼락에 맞아 죽는 사건을 겪게 되었다. 천둥 번개는 그 자체로는 하나의 자연현상에 불과하지만, 루터 시대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벼락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상징이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벼락에 맞아서 죽은 한 친구의 죽음은 루터의 일생 중에서 가장 두려웠던 경험이었을 것이다. 번개가 번쩍하는 사이에 루터는 허겁지겁 들판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평소 하나님을 두려워했던 루터는 그만 땅바닥에 꼬꾸라지고 만다. 그는 생명의 위협을 온 몸이 떨리도록 느꼈다. 그리고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다급한 심정으로 그는 성 안나를 향해 앞으로 수도사가 되겠다고 서원을 한다. 당시 광부들의 수호성인으로 알려진 성 안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를 한 것은 그가 아직 주님과의 만남이 분명치 않음을 짐작하게 한다. 1505년 7월 2일 폭우가 쏟아지는 날, 루터의 서원은 하나님의 섭리적인 환경에 의해 일어났다.   
 
루터는 단 한 번의 벼락 사건 때문에 훌륭한 법률가가 되겠다던 인생의 목표를 일순간에 수도사로 바꿔버렸다. 루터는 결코 소명감에서 비롯된 결단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한 두려움과 죽음 그리고 다가올 심판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때문이었다. 또한 지옥으로부터의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수도사가 되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슈토테른하임(Stotternheim)의 체험은 루터 생애에 있어서 놀라운 전환점이 되었다. 루터처럼 우리들도 생의 전화점이 되는 슈토테른하임이 있어야 할 것이다. 가슴 설레이고 감격스럽고 역사적인 현장인 슈토테른하임의 주위는 넓고 푸른 들판이었다. 이곳에 이 위대한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1917년 높이 2m의 비석이 세워졌다. 
 
▲ 1505년 7월 2일 친구가 벼락을 맞아 죽은 것을 보면서 수도사가 되겠다고 서원한 루터의 기념비     © 뉴스파워
루터의 서원 기념비에 새겨진 내용은 다음과 같다. 
 
거룩한 땅
종교개혁의 전환점
 
하늘에서 이곳에 떨어진 번개가 젊은 루터에게 그 길을 보여주었다
 
2. Juli. 1505
 
1505년 7월 2일
“도우소서, 성 안나여, 내가 수도사가 되겠나이다”
  
 
튀링겐에서 빛이 발하다
 
빛이 밝아오는 중세 암흑기 - “종교개혁의 불이 붙기 시작하다”
 
초대교회 당시, 베드로와 바울 그리고 많은 전도자들의 복음 전파로 인해 타올랐던 복음의 등불은 중세기 유럽에서 점점 꺼져가고 있었다. 중세 암흑기는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진리가 완전히 가리어져 있었고, 교회들이 참된 영적 생명과 활력이 없었다. 교회가 부패한 상태로 타락되어가고 있었다. 아직 개신교 설교자가 없던 시기이며 그 누구도 복음을 선포하지 않았던 시대였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로마 가톨릭교회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독일에서는 오랜 동안 종교적인 불만 및 소란함이 쌓이고 쌓였다. 중세교회의 억압은 깨트려지고 닫힌 문이 열려져야 한다. 이제 종교개혁자들이 나타나 로마 가톨릭 교회의 악행을 정화하여 철저하게 새로운 교회를 세우는 종교개혁이 필요했다.   
▲ 사과나무 밑에 쓰여진 루터의 말과 글     © 뉴스파워
하나님은 부패한 중세시대를 마무리 하시기 위해 젊은 루터를 고된 시련을 겪게 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경건한 가톨릭 신자였던 루터는 신앙 교육과 삶의 시련으로 훈련되어져 가고 있었다. 경건한 평민에 속한 젊은 루터는 수준 높은 교육의 결핍과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오히려 그의 얼굴은 더욱 더 강인해 졌고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전투적인 성품을 가지게 되었다. 루터는 무엇인가 살아있는 신앙을 원하고 있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신앙의 개혁이었다. 에르푸르트대학원에서 법률을 공부하고 있던 루터는 벼락 사건으로 인해 법관으로서의 희망을 포기했다. 그의 부친은 루터가 수도사보다는 변호사가 되기를 원했지만, 루터는 장차 법률가가 되기를 꿈꾸었던 아버지를 크게 실망시키면서 결국 어거스틴 수도원을 향하게 된다. 역사학자들은 사실상 루터의 종교개혁의 불은 슈톤테른하임에서부터 타오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렇다. 종교개혁의 불이 붙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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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3/25 [21:18]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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