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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6.18 [18:03]
그곳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
생명을 살리는 대화법(19)
 
신평식
내가 이 친구를 만난 것은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대규모 전시회를 준비하려면 무거운 그림 반입과 설치 등의 일을 위해 많은 인원이 필요하다. 특히 오프닝 전날은 전 스텝들이 거의 밤을 새며 꼼꼼하게 그림을 걸고 높이와 균형을 잡고, 이름표를 붙이고, 관람객의 동선을 예상하여 시각적인 배치까지 신경을 쓴다. 또 부스마다 원하는 탁자와 의자, 또는 사인보드까지 신경 써야 할 일이 끝이 없다. 그러다보니 주최 측에서는 단기간 사용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고용한다. 내가 그를 만난 것도 그때였다.

건장한 그는 35세라고 했다. 180정도의 키에 곱상한 외모였다. 큰 키에 비해 어깨가 넓지 않고, 각진 얼굴이 아니라서 곱다는 생각이 들었다. 햇빛을 본 적이 없는 지 하얀 피부에 듬성듬성 긴 수염이 얼굴을 가렸다. 입을 궂게 다물고 있는 그는 땀으로 뒤범벅이었다. 목에 건 긴 수건으로 얼굴과 긴 머리를 뒤로 넘기는 그에게 나는 음료 캔을 건네며 말했다.

“해보지 않은 일이라 쉽지 않죠?”

그는 흘끔 나를 쳐다보더니 캔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청파동 김 선생님께서 한번 만나보라 했어요.”

내가 다시 말을 걸자 캔 음료를 마시면서 수건으로 얼굴을 주섬이며 닦더니 내 앞에 섰다. 그의 눈빛이 지쳐보였다. 내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자 그도 상체를 구부리며 손을 내밀었다.

“힘들죠?”
“괜찮습니다.”

그는 간결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그 대답하는 태도는 나를 거절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김 선생으로부터 내 얘기를 들어 알고 있다는 눈치였다. 나는 다시 말했다.

“이따 일 마무리하면 같이 식사해요. 얘기도 좀 하고.”

그는 알았다고 대답하고는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날 계획했던 일은 자정을 넘기고야 마무리 되었다. 우리는 야식집으로 옮겨 고픈 배를 채웠다. 직원들이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본 나는 그와 함께 불이 켜져 있는 커피숍으로 갔다. 나는 커피를 주문하고 벽 쪽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으며, 그는 내 앞에 마주 앉았다. 그가 말하는데 방해받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그런 자리를 찾은 것이다. 자리를 잡자 이번에는 그가 먼저 살갑게 말을 꺼냈다. 처음 보았을 때와는 상당히 다른 태도였다.

“겨우 이틀 일하고 땀의 가치를 논하는 것 자체가 우습기는 하지만, 암튼 땀의 가치를 배우고 있습니다.”
“일은 안했었나요?”

내가 그에게 묻자 빤히 나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김샘이 다 얘기를 하신 줄 알았는데, 별 얘기 안했나 봐요.”
“긴 얘기는 못했고, 꼭 한번 만나 달라고만 부탁을 하던데요?”
“그랬군요. 김샘은 제 주일학교 선생님예요.”
“주일학교?”
“예. 교회 선생님.”
“교회 나가시나요?”
“지금은 못나가죠.”

나는 서양화가 김 선생이 이 친구를 왜 내게 부탁했을까를 생각했다. 단순하게 알고 지내면서 일자리나 챙겨달라는 의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친구의 주일학교 선생님이었다면 신앙적인 상담을 구하고 있는 것이라는 짐작이 들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말했다.

“맥주 한 잔 밖에 안 마셨어요. 이 정도는 괜찮죠?”

그는 진지한 얘기, 신앙적인 얘기를 하고자하면서 맥주를 마신 것이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한다고 생각해 커피를 마시며 그를 입을 주시했다. 그러자 그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잘 모르겠는 것이, 하나님이 나를 떠났다는 거예요. 아니 내가 하나님을 떠났나?”

그는 횡설수설했다. 그러나 그 모습은 그가 자신이 하고 있는 말의 분명한 의미를 찾으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나는 들고 있던 잔을 탁자에 놓으며 대답했다.

“하나님은 안 떠나죠.”
“그렇죠, 내가 떠난 거지요?”
“…….”
“내가 타락했어요. 술도 많이 마셨고, 여자들하고도 너무 많이 놀았고.”

그는 마음의 얘기를 다 하고 싶다는 듯 거침없이 내뱉었다. 타락, 술, 여자 같은 단어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나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그가 말하는 대로 대화를 이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디서 일했는데요?”
“호스트바요.”
“호스트바라면 ……?”
“선생님 왜 머뭇거려요. 남성접대부 …… 나 거기서 오래 일했어요. 한 3년. 지금도 잘나가는 편이고.”

나는 이 친구가 왜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말하고 있는지 생각했다. 자기가 했던 일이 결코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언젠가 호스트바에서 일한 종업원들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여성고객들을 상대로 술시중을 들고, 필요하다면 2차를 나간다. 그렇지 않는 경우 그 자리에서 손님의 욕정을 해결해 주는 경우도 있고. 기사의 내용은 그랬었다. 나는 그 상황이 이 친구와 오버랩 되면서 머리가 복잡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친구의 어떤 마음이 주일학교 선생님을 얘기하고, 또 나를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집중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의 말이 이어졌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몇 달만 하고 나가려 했는데. …… 일은 잘했어요. 손님을 맞으면 묘하게 밀당이 있잖아요. 내가 서비스하는 거지만 내가 손님보다 우월해야 손님이 지갑을 열죠. 손님들 가운데 호감이 가는 여성분도 있지만, 대부분의 손님들은 내 상대로는 부족하죠. 나는 여성들의 그 심리를 이용하고. …… 그러나 그게 좋은 일이 아니기 때문에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타이밍을 놓친 거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될 대로 되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런 갈등을 하던 차에 김샘을 만났죠.”

그가 너무 당당하고 또 담담하게 상황을 설명했기 때문에 나는 뭐라고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어떤 충고를 하는 것도 주제넘은 일처럼 생각되었다. 그래서 내가 즐겨쓰는 방식인 질문을 선택했다. 그의 말을 더 들으면서 할 말을 찾을 심산이었다.

“김샘은 뭐라고 했나요?”
“당장 그만두라고 했죠. 김샘은 제가 어렸을 때 엄마 대신이었고, 누나 대신이었어요. 어머니가 집을 나갔는데, 학교를 다니게 해주셨거든요. 그래서 거부하기 힘들어요.”

나는 평소 김 선생이 밝고 착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렇게 마음을 쓰는 줄은 몰랐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하던 일을 왜 ‘그만두라’고 했을까요?”
“샘이 생각할 때 ‘죄악의 수렁’이라는 거죠. 내가 수렁에 빠졌다고.”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맞는 말이죠.”
“그럼, 떠나면 되잖아요.”

나는 공격적으로 몰아붙였다. 그래도 그는 물러서지 않고 자기 생각을 이어갔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돈벌이도 너무 힘들고.”
“그뿐인가요?”
“솔직히 내가 두려운 건 하나님이 나를 받아줄까 하는 거예요?”
“…… 왜요?”
“솔직히 그런 생각이 들어요. 처음에는 가책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거든요. 그래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별일도 없고. 돈벌이도 잘 되고. ... 그래서 이제는 완전히 하나님이 나를 버린 거 같기도 하고.”
“하나님을 믿어요?”
“그럼요.”
“뭘 믿는데요?”
“그분이 살아 계신다는 거. 그거는 확실히 믿죠.”
“그런데, 지금 하는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할까 모르겠다는 그 말?”
“예, 나를 버렸으니까, 아니 내가 떠났으니까 하나님이 괘씸하다고 버리신 거 같아요.”
“…… 믿는다면서 왜 그렇게 생각해요?”
“뭘요?”
“믿는다면, 하나님을 믿는다면 당신이 하는 그 모든 행동과 함께 하는 하나님을 몰라요?”
“예? 아니요, 난 하나님을 떠났어요.”
“그래, 당신이 하나님을 떠났어. 맞아. 그런데 하나님은 자네 옆에 있는 걸. 자네와 함께.”
“에이? 말도 안돼요.”

그는 강하게 부정했다. 특히 그는 평소 호스트바에서 하는 일과는 결코 연결되지 않는다는 말투였다. 그가 다시 말했다.

“선생님이 나를 몰라서 그래요. 내가 날마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래 나는 자네를 모르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어떻게 서비스를 하고, 어떻게 수입을 올리는지.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다 알아, 그리고 자네와 함께 있어. 단지 자네가 하나님이 같이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래서 스스로 속이는 거야. 확실한 건 우리가 죄를 짓거나 악한 행동을 할 때 하나님이 그 일을 기뻐하시지는 않지만. 그것을 모르지 않지. 알고 있고, 함께 있는 거야. 우리가 생각하기를 그분이 눈을 감았거나 떠났다고 하는 거지. 실제로는 다 알고 계시는데.”

내가 하는 말에 그는 상당히 충격을 받은 눈치였다. 그는 자기가 하나님을 떠났고, 하나님도 자기를 떠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기가 한 행동들은 어둠의 행동, 죄악 된 행동으로 하나님과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내 설명을 진지하게 듣고 있더니 이렇게 물었다.

“생각해 보니 그런 거 같아요. 그러면 하나님께 미안해서 어떻게 해요?”
“그게 출발이에요. 그게 믿음의 출발.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가 옆에서 함께 있는 것을 믿는 거야. 내 모든 행동과 생각을 알고 있는 그분에게 물어봐요. ‘내가 어떻게 할까요?’ 라고.”

그는 한참 생각에 잠기더니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죄를 지을 때는 하나님이 눈을 감고 버려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대개 미안하네요. 내가 죄를 짓는 그곳에서도 나와 함께 있었다니.”

그 대화를 한 다음에도 그는 한참동안 호스트바를 떠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리고 다시 몇 달이 지난 다음 지인의 전시회에서 김 선생을 만났다. 김 선생은 환하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그놈, 이제 내가 소개해준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많이 밝아지고, 건강해 졌습니다. 행복해해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예배할 때, 착하게 살아갈 때만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가 어느 곳에 있더라도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신전의식(神前意識)의 믿음을 갖게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아신다. 우리의 허물을 용납하시며 우리를 기다리신다. 시편 기자는 말한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시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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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8/30 [17:42]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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