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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실상 (히 11:1-3)
평광교회 김동호 목사 주일설교, 2010-04-25
 
김동호   기사입력  2010/05/03 [10:16]

어려서 교회 다니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주일 예배는 물론 빠진 적이 없고 어렸을 때에도 주일 저녁 예배까지 참석하곤 하였습니다. 저희 집은 아버지께서 학교에서 일을 하셨기 때문에 학교 안에 있었습니다. 그믐날 밤 캄캄한 운동장을 지나 집으로 가는 것은 참으로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그믐밤 운동장을 지날 때마다 큰 소리로 찬송을 부르곤 했었습니다.

그때 제가 열심히 불렀던 찬송은 어린 아이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나는 갈길 모르니 주여 인도하소서’라는 찬송이었습니다.


어려서 부른 그 찬송이 제 평생의 복이 되었습니다. 찬송이 기도가 되었고 그 기도는 그대로 제 삶에 응답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일산동안교회에서 평북노회가 열렸습니다. 새로 건축한 아름다운 예배당에서 노회가 열렸는데 누구보다 기뻤습니다. 1991년 동안교회 담임목사가 되어 했던 첫 번 째 일이 예배당을 지으려고 모아 놓은 돈을 밖으로 풀어 일산동안교회를 개척하고 건축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간증이 있는 교회가 그 동안 잘 성장하여 주일 장년 출석이 2천 명 가까이 되는 교회로 성장하여 노회를 개최하게 되었으니 그 노회에 참석한 제가 받은 감동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이번 노회에서 제가 시무했던 높은 뜻 숭의교회가 네 교회와 한 기관으로 분립되는 것이 결정되었습니다. 높은 뜻 숭의교회의 해체와 높은 뜻 네 교회와 한 기관으로의 분립은 아마 제 생의 가장 크고도 극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찾기가 어려워 그 일의 결국이 깊은 안개 속에 있는 것 같아 쉽게 판단하고 결정하기가 어려웠으나 끝을 보고 결정한 일이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의 식이고 뜻임을 그냥 믿고 선택했던 일이었습니다. 노회에서 법적으로 처리해 준 것은 이번이었으나 여러분들도 아시는 바와 같이 실질적으로는 교회 분립은 벌써 16개월이 되었습니다. 모르고 간 길, 그냥 믿고 간 길이 맞았습니다. 만루 홈런을 친 것과 같은 기분입니다.


높은 뜻 숭의교회를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한 일 중에 하나는 첫 성탄헌금으로 베트남을 섬긴 것이었습니다. 당시 50만 원 정도면 집을 한 채씩 지을 수 있었는데(가서 보니 생각보다 좋은 집이었습니다.) 개척한지 석 달 밖에 되지 않은 교회였으나 당시 약 4천 만 원 정도가 헌금이 되어 제법 많은 집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교인 중에 한 분이 10만 불을 헌금하여 베트남에 제법 큰 건물을 지어서 기증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의료선교팀이 가서 저들을 진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올해는 전세 비행기를 띄워야 하겠다고 농담을 하리만큼 많은 분들이 추석 휴가를 이용하여 진료를 합니다. 저희 교회에는 의대교수들이 많은데 휴대용 초음파 기계와 휴대용 치과 기계까지 동원하여 한 번 가면 2천 명 정도를 진료하고 옵니다.


베트남은 월남 전 때문에 한국과 기독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습니다. 저들의 주적이었던 미국이 기독교 국가였고 우리 한국은 그 미국의 동맹국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해마다 계속된 봉사 때문에 그 지역에서의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그 사역을 주도하고 있는 선교사님이 베트남 정부로부터 훈장에 가까운 표창을 받았습니다. 그곳 주민으로부터 그곳에 교회를 세워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짓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그곳 주민들이 스스로 교회를 지어달라는 부탁을 한 것입니다.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한국과 우리 기독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그곳에 교회와 병원을 세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그곳의 의사들을 한국으로 초청하여 한국의 대학병원에서 연수를 시켜 병원에 파송함으로 평시에도 높은 수준의 진료가 가능하게 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년 은퇴하신 전문의를 선교사처럼 파송하여 저들을 섬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첫 부활절 헌금은 러시아의 고려인들을 위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스탈린 때 이유도 모른 채 시베리아로 끌려가 말도 못할 고생하였던 고려인들이 그곳에서도 살아나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을 때 다시 소련이 붕괴되면서 다시 그곳에 쫒겨나 러시아로 오게 되었습니다.


볼고그라드 노보니꼴스꼬에라는 곳에 고려인들이 정착하게 되었는데 추운 겨울 있을 곳이 없어서 땅을 파고 움막을 지어 살게 되었습니다. 러시아 사람들의 땅과 고리채를 빌려 도마토 농사를 지었는데 농사는 도박과 같아서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여 고생을 하고 있었고 성공한다고 하여도 땅값과 물 값 그리고 고래 채 때문에 겨우 입에 풀칠을 할 정도였습니다.


저들에게 집을 사 주고 선교센터를 구입한 후 선교사를 파송하였습니다. 60이 다 되신 권사님이 지원하셨습니다. 말도 못할 고생(육체적, 정신적, 영적)을 하시면서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남편 되시는 장로님이 은퇴를 하시면서 들어가셔서 3년을 섬기고 오셨습니다. 지금 또 다른 장로님과 권사님 부부가 교대해서 들어가 저들과 함께 살면서 저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몇 천 평씩 도마토 농사를 짓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되어 집에 있는 텃밭(텃밭이라고 하지만 보통 700평 정도가 됩니다.)에다 비밀하우스 농법을 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농자금도 대출해 주었습니다. 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국 성공하였습니다. 작년에도 평균 4천 만 원 정도의 매출이 되어 경비를 제하고도 한 가정당 매월 150만 원 정도의 소득을 올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아시겠지만 그곳에서 150만원의 수입은 엄청난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그곳에 교회를 세우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습니다. 현재 40명의 고려인이 노보니꼴스꼬에에 있는데 그 중 37명이 주일 교회에 출석한다고 합니다. 매일 새벽기도회에도 10여명이 출석하여 열심히 기도한답니다. 뿐만 아니라 교인들이 십일조를 하여 교회는 자립하였습니다. 예배당 운영과 수리등을 한국에 의뢰하지 않고 자신들의 힘으로 감당하고 있습니다.


고려인 중에 여의사가 한 분 있는데 그 분이 지금 신학을 전공하여 전도사가 되었고 앞으로 목사가 될 예정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분에게 교회를 맡겨 드릴 작정입니다. 선교 8년 만에 주민의 90%가 교인이 되는, 그것도 아주 열심 있는 교인이 되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와 같은 성공을 지켜 본 이웃 동네에서 자기 동네에도 교회를 세워 달라고 요청을 해 왔습니다. 그렇게 할 작정입니다.


여러 번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재단을 세우고 탈북자와 노숙자 그리고 장애우들의 자활과 자립을 위하여 공장을 세우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당장 망할 짓(?)과 같았던 일이 하나님의 기적과 같은 은혜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물론 아직도 이런 저런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문에 망하지 않고 다 해결해 나가며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4월 달에 탈북자를 고용하여 커피 전문점을 열었습니다. 커피에 대한 개념이 없는 탈북자들을 고용하여 커피전문점을 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동키호테와 같은 발상이었습니다. 돈도 제법 많이 투자하였습니다. 며칠 전 매장을 책임지고 있는 점장에게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숨도 쉬지 않고 <대박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점장에 의하면 월매출 천 만 원을 올리는데 보통 5-6개월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그만큼 자리를 잡는 것이 쉽지 않다는 뜻입니다. 저희 매장은 16일 만에 매출 천 만원을 돌파하였습니다. 이번에도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머리 흔들던 일을 성공시켰습니다. 하나님이 말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모든 일들은 제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가야만 했던 일들입니다. 사람들이 보통 잘 가지 않는 길이어서 그 결국을 가늠하기 어려웠던 길이었습니다. 가늠하기 어려운 길이 아니라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미션 임파서블 한 일과 길이라고 사람들이 염려하는 길과 일들이었습니다. 불가능하다고 하는 일과 길들을 하고 가서 길을 열고 일을 성공하였을 때 기쁨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믿었던 일이 실상으로 나타나는 것보다 더 기쁨 세상에 정말 많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 일은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경험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대로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실상입니다. 그러나 믿음 아닌 다른 모든 것의 결과는 실상이 아닌 허상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바람에 나는 겨’(시편 1편)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시편 2편)라며 안타까워 합니다.


저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오늘 본문의 말씀이 좋습니다. 믿음은 허상이 아닙니다. 추상이 아닙니다. 상상이 아닙니다. 실상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만 삶의 실상을 증거로 쟁취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자기 부인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나는 갈길을 모른다’는 고백이 있어야만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자기가 길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리하여 자기의 길을 자기가 결정하여 가고 걷기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과 길을 인도하실 수 없습니다. 믿음의 실상을 맺을 수 없습니다.


믿음의 반대는 죄고, 죄의 뿌리는 욕심입니다. 믿음에 끌리지 않고 욕심에 이끌리게 되면 딴 길이 보입니다. 딴 식이 보입니다. 그런데 그 길이 실상처럼 보입니다. 확실한 실상으로 보입니다. 틀림없을 것 같습니다. 성공할 것 같습니다.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쉬울 것 같습니다. 빠를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결과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정말 풀과 같습니다. 자라기는 빨리 자라나 열매가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사는 사람의 삶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전에 심긴 종려나무와 같습니다. 늙어도 결실하는 나무와 같습니다. (시편 92편)


저는 아직도 갈 길을 알지 못합니다. 저는 그것이 오히려 좋습니다. 안심이 됩니다. 저는 제가 갈 길을 스스로 안다고 착각할까봐 그것이 늘 염려가 됩니다. 세상의 식과 길이 눈에 들어오고 그것이 믿어질까 봐 늘 걱정이 됩니다. 그런데 다행히 저는 아직도 제 스스로 갈 길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보고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끝까지 믿고 살고 싶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와 교인들의 힘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성공과 승리입니다. 건강한 교회의 성장과 부흥에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요소도 바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성공과 승리입니다. 지금 우리 평광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믿음은 내가 길을 주도하고 이끄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길을 주도하시고 이끄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길을 따라가고 그의 식과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나 다 그렇지만, 우리 평광교회도 보니 교회를 주도하고 이끌려고 하는 사람과 힘이 눈에 띕니다. 많이 띕니다. 서로 교회의 주도권 즉 이니시어티브를 잡으려고 힘겨루기를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내려놓아야만 합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신앙이 아닙니다. 내가 내려놓으면 교회가 잘못 될 것이라는 생각도 믿음의 생각이 아닙니다.


동안교회에서 목회를 할 때 당회원들의 안식년제를 실시하였습니다. 6년 시무를 하고 일 년 동안 안식년을 하시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해하지 못하고 반대하시는 분들도 꽤 있었습니다. 왜 열심히 교회를 섬기려고 하는 당회원들을 억지로 쉬게 하려는 것이냐고 묻는 분이 계셨습니다. 제가 숨도 쉬지 않고 대답해 드렸습니다. ‘장로님이 안 계셔도 교회 큰 문제 없다는 것을 배우시라고요...!!!’


노회를 참석하고 총회를 참석할 때마다 자꾸 눈에 거슬리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노회와 총회가 정작 중요한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보다 자리와 힘 다시 말해 권력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입니다. 노회장과 총회장이 되는 일, 노회와 총회의 임원이 되는 일, 노회와 총회에 속한 조직과 기관의 장이 되는 일이 주관심사입니다. 그리하여 자기를 드러내고, 자기를 부각시키고 그것을 통하여 자기만족을 얻는 일이 노회와 총회에 팽배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많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것은 교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만족을 위하여 교회를 섬기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말은 교회를 섬긴다고 하지만 실상은 교회와 노회와 총회를 자기 마음대로 지배하고 다스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하여 교회와 노회와 총회에 실상이 아닌 허상과 허사들이 난무하게 된 것입니다. 교회와 노회와 총회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아지고, 자라기는 빨리 자라지만 아무 열매도 없이 해마다 망하고 스러지는 풀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나의 길을 가는 것이 기쁨이 아닙니다. 주의 길을 가는 것이 기쁨입니다.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우리 주님 걸어가신 발자취를 밟겠네. 한 걸음, 한 걸음 주 예수와 함께 날마다 날마다 우리는 걷겠네’ 얼마나 좋은 찬송인지 모릅니다.


‘나는 갈길 모르니 주여 인도 하소서’라는 찬송과 기도로 제 인생은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 찬송이 기도가 되었고 그 기도는 응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제 삶의 길을 인도하시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길을 따라갔더니 세상이 맛보지 못한 성공과 축복을 맛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의 제 찬송은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공과 축복이 넘쳐서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 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는 찬송이 간증의 찬송이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축복해 주시는지 이해 할 수 없는 은혜를 받으며 살게 되었습니다.


머지 않아 하나님 앞에 서는 날이 올 것입니다. 저는 그 날에 부를 찬송을 골라 놓았습니다. 그것은 ‘나의 갈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라는 찬송입니다. <내 인생 다 하도록 내 인생의 모든 길을 예수님이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일을 당할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족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나의 앞의 반석에서 늘 샘물 나게 해 주셨습니다. 앞으로 영원토록 부르고 싶은 찬송이 있다면 그것은 ‘영영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하셨네’입니다.> 그렇게 노래하고 찬송하고 간증하고 싶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만 삽니다.(롬1:17) 예수님만이 길이십니다.(요 14:6) 이기적인 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길을 볼 수 없습니다. 딴 길을 보게 됩니다. 딴 길을 보게 되면 실상이 아닌 허상을 좇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을 내려 놓으십시오. 욕심을 내려 놓으십시오. 인간적인 야망을 내려 놓으십시오. 집착을 버리십시오. 그리고 아이처럼 ‘저는 갈 길을 모르니 하나님 인도하여 주십시오’라고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따르십시오. 순종하십시오. 죽을 것 같고, 망할 것 같아도 믿으십시오. 그리고 그 믿음이 맺는 엄청난 실상과 증거들로 말미암아 넘치는 은혜와 축복으로 이 땅에서부터 천국의 복을 누리고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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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우 목사는 1982년 로마한인교회를 부임하여 지금까지 목회하고 있으며, 1993년 유럽목회연구원을 설립하여 선교사와 목회자들의 영적 재충전을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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