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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2.07 [22:01]
하나님의 사람과 거짓의 사람의 구별
악의 비밀 (5)
 
정성민
“거짓의 사람들”과 “분별력 있는 사람들”은 많은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전체적인 상황 파악능력과 임기응변적인 문제해결능력 면에서 매우 유사하다. 때론 분별력 있고 정직한 사람이 거짓의 사람처럼 착각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이 다른가? 거짓의 사람들은 지나치게 사람들의 눈을 의식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과 자기 자신의 관계 속에 있지 않다. 다시 말해, 거짓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식하기보다는 사람들을 너무 지나치게 의식한다. 그래서 그들은 너무나 쉽게 속이고 이간하는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거짓의 사람들의 마음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없다. 그것이 문제다. 분별력이 있고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비록 상황판단능력이나 처세술이 거짓의 사람 못지않지만 하나님을 의식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을 의식 하는가 아니면 의식하지 않는가가 우리의 삶의 방향과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다. 분별력 있고 믿음이 있는 사람은 거짓의 사람들처럼 하고 싶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기에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 그들은 악인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지 않는 것이다.

다윗은 분별력이 있고 믿음이 좋을 뿐만 아니라 정직한 사람이다. 다윗의 생애는 거짓의 사람들과는 정말로 구별되는 아주 특별한 생애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윗을 성군이라 부른다.

하지만 다윗왕도 거짓의 사람들이 가는 길을 간적이 있다. 그의 생애의 가장 치욕스럽고도 부끄러운 죄를 짓고야 만 것이다. 그것은 바로 밧세바를 간음하고 그녀의 남편 우리아를 죽인 사건이다. 그리고는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처벌을 받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다윗의 복합적인 죄를 잘 해석하지 못한다. 그냥 간음죄와 살인죄를 지은 것으로 단순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다윗이 지은 죄를 분석해보면 그가 거짓의 사람들이 가는 길을 따라 갔음을 목격하게 된다.

이제 다윗이 지은 복합적인 죄를 거짓의 사람들의 특징을 통해 분석해보고자 한다. 다윗이 지은 간음죄는 보통 왕들이 지을 수 있는 흔한 죄이다. 사람들은 이를 간통죄 내지는 간음죄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밧세바가 우리아의 아내이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에 왕이라면 자신의 능력에 따라 천명의 후궁들이라도 둘 수 있었다. 그것은 왕으로서의 특권이었다. 그러나 조건은 있었다. 그것은 후궁으로 맞이할 사람이 결혼하지 않은 처녀이어야 했다.

아무리 왕이라도 남의 아내를 뺏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구약시대의 왕들이 남의 아내를 빼앗는 죄를 짓지 않은 것은 아니다. 왕의 힘을 이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남의 아내를 빼앗을 수 있다. 그런 왕은 폭군으로 왕으로서 존경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 다윗이 밧세바를 취한 것은 분명 간음죄이다. 더 분명하게 말하면, 강간죄이다. 왕의 위치를 이용해서 남의 아내를 취했다면 간통죄보다는 강간죄가 더 설득력이 있으리라. 이러한 다윗의 간음죄는 보통 사람들이 지을 수 있는 죄이다. 모든 사람들은 죄인이다. 그래서 너무나 쉽게 유혹에 넘어간다. 다윗 왕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문제는 간음죄를 짓고 나서의 다윗의 자세이다. 다윗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잘못했다고 그리고 용서해달라고 기도했을 것이다. 문제는 밧세바의 임신이다. 다윗이 은밀하게 지은 간음죄가 수면 위로 떠오는 순간이다. 이제 다윗은 결단과 선택을 해야만 한다. 선택은 2가지다. 하나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고 벌어진 문제를 풀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그 죄를 숨기기 위해 또 다른 죄를 저질러야 한다. 다윗이 지은 간음죄가 죄의 심층적 1단계라면, 이제는 간음죄를 숨기기 위한 살인죄를 저질러야 하는 것이다. 바로 죄의 심층적 2단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죄의 심층적 2단계부터가 거짓의 사람들이 가는 길이다. 거짓의 사람들의 특징은 회개를 하지 않는다. 위기를 넘기기 위해서 눈물로 회개하는 연기를 할 수 있지만 진정한 내면의 회개를 하지 않는 것이 거짓의 사람들의 모습이다. 죄가 발각되어 수면으로 떠오르려고 할 때 거짓의 사람들은 2가지 중의 하나의 선택을 한다. 하나는 책임전가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증거인멸이다. 자신이 지은 죄를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이다. 거짓의 사람들은 책임전가의 천재들이다. 아무도 눈치를 체지 못하게 자신의 죄를 “가짜 거짓의 사람들”이나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들”에게 뒤집어씌운다. 가짜 거짓의 사람들은 그동안 거짓의 사람들을 무조건적으로 대항했던 사람들이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너무나 쉽게 흔적을 남기는 사람들이기에 사건의 원인으로 뒤집어씌우기에 너무나 용이한 사람들이다.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들은 그동안 자신들을 잘 따라다녔던 충복들이다. 하지만 너무나 단순하고 어리석기에 사건을 그들에게 뒤집어씌우기에 별로 어렵지 않다. 그러나 책임전가가 어려워질 경우 거짓의 사람들은 증거인멸을 시도하게 된다. 다윗이 걸어간 거짓의 사람들의 발자취가 바로 증거인멸이다.

다윗은 두려웠을 것이다. 자신이 밧세바를 범한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리고 회개하기에는 잃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물론 하나님은 그의 회개를 받으시고 용서해주시겠지만 그가 세상적으로 겪어야 할 죄의 결과는 그리 만만치 않을 것이다. 바로 다윗 왕이 성군이라는 이미지를 잃을 것이다. 그와 함께 이스라엘 장군들과 병사들로부터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다. 모든 장군들과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 싸움터에 나가 나라를 지키는데 왕은 궁궐에 누워 낮잠을 자고, 그것도 부족해 야전장군의 아내를 간통하다니. 이러한 이미지 추락과 신뢰상실은 다윗이 너무나 두려워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다윗은 죄에 대한 인과응보를 피하기 위해 결국 하나님보다는 사람을 의식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죄의 심층적 2단계로 즉 거짓의 사람들의 길을 따라 간 것이다.

밧세바가 임신한 것을 아무도 모르게 하는 방법은 그의 남편 우리아를 죽이는 것이다. 하지만 다윗은 우리아를 죽이기로 결심하기 전에 또 다른 증거인멸의 방법을 간구한다. 그것은 전쟁터에 있는 우리아를 불러서 그로 하여금 밧세바와 동침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의 아이가 우리아의 아이로 쉽게 바뀌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아는 너무나 충성스럽고 우직한 용사이기에 전쟁 중에 감히 혼자서 자신의 아내와 동침할 수는 없었다. 이에 다윗은 정말로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그렇게도 충성스러운 부하를 죽여야만 하다니. 이제 더 이상의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하나님도 두렵지만 그리고 충성스러운 부하를 죽여야만 하는 심정이 괴롭지만 자신이 지은 죄를 덮기 위해서는 가야만 할 길이었다. 그것은 회개의 길이 아닌 바로 증거인멸의 길이었다. 결국 다윗은 요압에게 편지해 우리아를 죽이는 사지로 내몰게 했다. 바로 간접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이 간접 살인이 더 큰 죄이다. 직접 살인은 살인자로 붙잡혀서 재판을 받게 되겠지만, 이 간접 살인은 범인이 누구인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살인이 살인인지도 밝혀지지 않는 아주 은밀한 죄인 것이다. 바로 증거인멸은 아주 은밀한 간접살인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제 다윗왕은 합법적으로 밧세바를 아내로 취한다. 정말 감쪽같다. 그 누구도 문제를 삼지 않는다. 증거가 없다. 증인이 있다면 하나님과 군대장관 요압이 있다. 하지만 밧세바 문제에 있어서만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기로 결심한 다윗이다. 그리고 군대장관 요압은 다윗의 충복이기에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윗은 하나님의 사람들과 거짓의 사람들의 구별이 되는 시금석, 즉 회개할 기회를 놓친 것이다. 그는 죄의 1단계에서 회개했어야 했다. 우리아에게 사과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성군으로서의 이미지 손상과 장군들로부터의 신뢰상실을 겪어야 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회개이다. 그러면 역사의 심판자 하나님께서 다윗에 대한 심판을 거기서 멈추셨을 것이다. 하지만 다윗은 죄의 심층적 2단계에 들어가고 말았다. 바로 거짓의 사람들이 다니는 길로 말이다.

이제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 다윗 왕에게 경고하신다. 이때 다윗왕은 또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바로 증거인멸을 위해서 나단 선지자를 죽이느냐 아니면 그 앞에서 회개하느냐의 선택이다. 만일 나단을 죽인다면 다윗은 죄의 심층적 3단계로 진입하게 된다. 보통 왕들이라면 나단을 죽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의식하는 사람 다윗, 분별력이 있는 사람 다윗, 그는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가 이번 회개의 기회를 잃어버린다면 영원히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사람을 의식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무시한다면 그를 향한 하나님의 은총이 사라질 것을 직감한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다윗은 거짓의 사람들의 길을 떠나 믿음의 길로 돌아서게 된다. 평생 거짓의 사람으로 살아왔던 사울 왕의 최후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 바로 다윗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사람과 거짓의 사람을 구별 짓는 시금석은 바로 회개이다. 거짓의 사람은 회개하지 않는다. 단지 후회하거나 회개한 것처럼 위장하는 것뿐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기에 회개하지 않는다. 가룟 유다는 회개하지 않고 자살하였다. 그들은 회개하기보다는 책임전가와 증거인멸을 하기 위해 끝까지 나아간다. 마지막 기회조차도 회개하기보다는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목숨을 건다. 다윗이 의로운 사람으로 평생을 살아왔지만, 일생을 단 한번 악인의 길을 따랐다. 그것은 회개하지 않고 증거 인멸하는 죄를 따른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엄청난 죄의 심판을 받았다. 아들에게 왕권을 빼앗길 뿐만 아니라 백주의 대낮에 옥상에서 자신의 후궁들이 자신의 아들인 압살롬에게 강간을 당하는 수모를 겪게 된다.

죄는 무서운 것이다. 하지만 죄를 짓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회개하지 않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고 남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거나 증거를 없애려고 하는 것은 아주 큰 죄다. 바로 거짓의 사람들이 짓는 죄다. 성경은 회개하지 않고 증거인멸을 하는 사람들에게 “양심의 화인”을 맞았다고 표현하는 것 같다. 또는 이들을 "멸망의 자식"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지옥에 도달하는 가장 안전한 길은 한 발짝씩 내딛는 완만한 길이다.”

우리는 죄인이다. 그래서 우리도 모르게 연약해져 유혹을 받고 죄를 짓게 된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죄를 회개하는 것이다. 때를 놓치지 말고 죄를 회개할 때 거짓의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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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11/05 [15:52]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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