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
교계뉴스문화/교육국제/NGO/언론파워인터뷰생활/건강오피니언연재정치/경제/사회한 줄 뉴스
전체기사보기
편집  2019.07.17 [01:02]
성경 속 거짓의 사람은 누구인가?
악의 비밀(4)---정성민 교수의 신앙과 신학의 만남
 
정성민
▲ 정성민 교수     © 뉴스파워
거짓의 사람들도 여러 가지 유형이 있는 것 같다. 자폐성 거짓의 사람, 소심한 거짓의 사람, 비범한 거짓의 사람, 대범한 거짓의 사람 등 다양한 유형들이 관찰되어진다.

다윗 왕의 아들 중 암논은 아마도 가짜 거짓의 사람같이 보인다. 아니면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 암논은 자신의 배다른 동생 압살롬의 여동생 다말과 짝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그에게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 요나답이 아주 비상한 방법을 가르쳐준다. 그것은 다윗 왕에게 자신이 아픈 척을 해서 다말로 하여금 병간호를 받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암논에게 요나답이라 하는 친구가 있으니 그는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이요 심히 간교한 자라 그가 암논에게 이르되 왕자여 당신은 어찌하여 나날이 이렇게 파리하여 가느냐 내게 말해 주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암논이 말하되 내가 아우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사랑함이니라 하니라 요나답이 그에게 이르되 침상에 누워 병든 체하다가 네 아버지가 너를 보러 오거든 너는 그에게 말하기를 원하건대 내 누이 다말이 와서 내게 떡을 먹이되 내가 보는 데에서 떡을 차려 그의 손으로 먹여 주게 하옵소서 하라 하니

이제 암논의 병들어 아픈 연기는 성공을 거두고 드디어 다말로부터 병간호를 받게 된다. 그리고 그때를 이용하여 암논은 다말을 강제로 동침하는데 성공하고 만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부터이다. 강제로 동침 후에 암논이 다말을 그 즉시 그 집에서 내어 쫒아버린다. 비록 강제로 동침을 했지만 만일 암논이 다말을 책임졌다면 문제는 작아졌을 것이다. 참으로 처녀를 강제로 취하고 나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버리는 행위는 정말 용서받지 못할 죄인 것이다.

그리하고 암논이 그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전에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한지라 암논이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 가라 하니 다말이 그에게 이르되 옳지 아니하다 나를 쫓아보내는 이 큰 악은 아까 내게 행한 그 악보다 더하다 하되 암논이 그를 듣지 아니하고 그가 부리는 종을 불러 이르되 이 계집을 내게서 이제 내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라 하니

자신이 짝사랑하는 사람을 강제로 동침시키는 것은 분명 바르지 않은 행위이다. 이러한 불의한 행위는 남자청년들이 범할 수 있는 강간죄에 해당한다. 여기까지의 행위로 보아서 암논이 어떤 유형의 사람인가를 정하기는 좀 힘들다. 하지만 그가 행한 두 번째 불의한 행위에 의해서는 그를 쉽게 판단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암논은 가짜 거짓의 사람이거나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으로 생각되어진다. 그의 두 번째 불의한 행위는 너무나 어리석고 미련하기 짝이 없는 행위다. 금방 들켜서 문책을 받을 일을 저지르고 마는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바보왕자 암논이다. 만약 암논이 소심하고 겁 많은 사람이라면 요나답의 사악한 조언을 아예 귀담아 듣더라도 행할 만한 용기가 없었을 것이다. 아니면 요나답의 조언을 의롭지 못하다 생각했을 것이다. 이에 반해 분별력이 있는 암논이라면, 그런 조언을 하는 요나답을 친구로 두지 않았을 것이다. 설상 그의 충고를 듣고 그런 실수를 범했다고 할지라도 다말을 책임졌을 것이다.

문제는 요나답이다. 그는 정말 간사한 사람이다. 이제 그로 인해 다윗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 모두가 정말 상상도 못할 환란 속에 빠지게 된다. 성경은 말한다. “성읍은 악한 자의 입으로 말미암아 무너지느니라.” 요나답을 통해 한 사람의 거짓의 사람이 그가 속한 공동체를 어느 정도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보게 된다.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쟁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 요나답은 이 사람과 저 사람 사이를 오가며 말을 전해 다툼을 일으키는 패역한 혀를 가진 거짓의 사람인 것이다.

이제 다말의 친오빠 압살롬이 자신의 동생을 범한 암논을 향한 복수를 준비하게 된다. 요나답이 간사한 거짓의 사람이라면 압살롬은 비범할 뿐만 아니라 아주 대범한 거짓의 사람이다. 압살롬이 다말에게 말한 것을 들어보라.

그의 오라버니 압살롬이 그에게 이르되 네 오라버니 암논이 너와 함께 있었느냐 그러나 그는 네 오라버니이니 누이야 지금은 잠잠히 있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라 하니라 이에 다말이 그의 오라버니 압살롬의 집에 있어 처량하게 지내니라. 다윗 왕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노하니라 압살롬은 암논이 그의 누이 다말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그를 미워하여 암논에 대하여 잘잘못을 압살롬이 말하지 아니하니라.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압살롬이 치밀한 사람이며 대범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가 거짓의 사람인지 아닌지를 말할 수는 없는 단계이다. 그로부터 2 년 동안 압살롬은 복수의 칼을 갈며 때를 기다린다. 정말 대단히 치밀하고도 인내력이 있는 압살롬이다. 만 2년이 지난 후 복수의 날이 이르렀을 때, 압살롬에게는 두 가지의 선택이 놓였다. 하나는 다윗 왕을 죽이고 아예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이다. 암논을 죽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를 죽이고 나면 압살롬 자신도 곤경에 처하게 된다. 그렇다고 자신의 누이를 더럽힌 이복형제 암논을 그대로 보아 넘겨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제 압살롬은 아예 왕권을 차지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죽음의 잔치에 자신의 아버지 다윗 왕을 초청한다. 이 얼마나 비극인가. 암논에 대한 요나답의 간사한 조언으로 인해 왕자 압살롬이 자신의 아버지 다윗 왕을 죽여야만 하는 비극 말이다.

만 이 년 후에 에브라임 곁 바알하솔에서 압살롬이 양 털을 깎는 일이 있으매 압살롬이 왕의 모든 아들을 청하고 압살롬이 왕께 나아가 말하되 이제 종에게 양 털 깎는 일이 있사오니 청하건대 왕은 신하들을 데리시고 당신의 종과 함께 가사이다 하니 왕이 압살롬에게 이르되 아니라 내 아들아 이제 우리가 다 갈 것 없다 네게 누를 끼칠까 하노라 하니라 압살롬이 그에게 간청하였으나 그가 가지 아니하고 그에게 복을 비는지라

하지만 다윗 왕이 그의 초청을 거절하면서 두 번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어진다. 그의 두 번째 선택은 암논을 죽이는 일이다. 비록 모든 왕자들을 초청했지만 암논 한 사람만을 죽이는 선택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왕을 죽인다면 모든 문제가 쉬워지지만 왕을 죽이지 못했다면 사건을 최소화해야 한다. 암논 한 사람만 죽인다면 비록 처벌은 받겠지만 다말사건에 대한 정상이 참작되어 처벌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망명과 같은 견딜만한 처벌이 주어질 것이다.

압살롬이 이르되 그렇게 하지 아니하시려거든 청하건대 내 형 암논이 우리와 함께 가게 하옵소서 왕이 그에게 이르되 그가 너와 함께 갈 것이 무엇이냐 하되 압살롬이 간청하매 왕이 암논과 왕의 모든 아들을 그와 함께 그에게 보내니라.

이제 압살롬은 정말 과감하게 암논에 대한 복수를 자행한다. 그리고 다른 모든 왕자들은 살려서 보낸다. 압살롬은 비상하고도 치밀한 복수에 성공한다. 그는 대범한 왕자임에는 틀림없다.

압살롬이 이미 그의 종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제 암논의 마음이 술로 즐거워할 때를 자세히 보다가 내가 너희에게 암논을 치라 하거든 그를 죽이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너희는 담대히 용기를 내라 한지라 압살롬의 종들이 압살롬의 명령대로 암논에게 행하매 왕의 모든 아들들이 일어나 각기 노새를 타고 도망하니라.

압살롬은 이제 거짓의 사람이거나 분별력이 있는 용감한 사람 중의 하나로 생각되어진다. 가짜 거짓의 사람이거나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이기에는 너무나 치밀하고 인내력이 뛰어나다. “가짜 거짓의 사람”이 “거짓의 사람”과 다른 점은 치밀함과 인내력에서 나타난다. 물론 과감한 면에서는 서로 비슷할 수도 있다. 또한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도 인내력과 치밀성에서 거짓의 사람을 따라갈 수가 없다.

그들이 길에 있을 때에 압살롬이 왕의 모든 아들들을 죽이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다는 소문이 다윗에게 이르매 왕이 곧 일어나서 자기의 옷을 찢고 땅에 드러눕고 그의 신하들도 다 옷을 찢고 모셔 선지라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 요나답이 아뢰어 이르되 내 주여 젊은 왕자들이 다 죽임을 당한 줄로 생각하지 마옵소서. 오직 암논만 죽었으리이다. 그가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욕되게 한 날부터 압살롬이 결심한 것이니이다. 그러하온즉 내 주 왕이여 왕자들이 다 죽은 줄로 생각하여 상심하지 마옵소서. 오직 암논만 죽었으리이다 하니라.

이제 다시 한번 간사한 거짓의 사람, 요나답을 주목해보아야 한다. 다윗 왕가의 엄청난 불행이 닥치게 한 원흉은 바로 요나답이다. 하지만 그는 이제 그 엄청난 사건을 강 건너 불을 보듯이 말한다. 그는 자신이 그 문제의 원인제공자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문제의 원인은 바로 암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가 암논에게 조언한 것은 단지 아픈 척 연기해서 다말로 하여금 병문안을 오도록 왕에게 허락을 받으라고 말한 것뿐이었다. 그 조언은 암논을 사랑하기에 위해서 말해준 것이다. 그 이후에 벌어진 일들은 자신은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요나답의 이러한 변명이나 논리는 거짓의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대표적인 것이다. 그들이 속이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암논은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이기에 자신이 짝사랑하는 다말이 자신의 숙소에 들어오게 되면 사건을 칠 수 밖에 없는 단순하고 본능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단순한 사람에게 왜 그런 무서운 비법을 귀에 슬쩍 넣어주었냐는 것이다. 그리고는 속된 말로 오리발을 내민다. 더 나아가 정작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을 때 다윗 왕에게 나아가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사건의 전말을 설명한다. 마치 자신이 제갈공명과 같은 지혜롭고 비상한 사람임을 다윗 왕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 흉악한 조언을 통해 그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게 만든 사람이 바로 요나답 자신인데 말이다. 이제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암논 단 한 사람뿐인데 그가 죽었으니 요나답의 말장난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요나답이 왕께 아뢰되 보소서 왕자들이 오나이다 당신의 종이 말한 대로 되었나이다 하고
말을 마치자 왕자들이 이르러 소리를 높여 통곡하니 왕과 그의 모든 신하들도 심히 통곡하니라.

이제 압살롬은 도망하여 그술 왕에게로 피신한다. 그야말로 망명이다. 그렇지 않다면 다윗 왕이 그술로 쳐들어가서 압살롬을 찾아서 죽였을 것이다. 다윗은 압살롬을 사랑하였던 것이다. 그 이유는 추측하건데 압살롬이 다윗의 비상한 지혜를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압살롬이 그술로 망명하여 3년이 지났을 때 압살롬에 대한 다윗 왕의 그리움이 간절해진다.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이 다윗의 이러한 마음을 알고, 왕의 허락을 받아서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데려온다.

압살롬은 도망하여 그술 왕 암미훌의 아들 달매에게로 갔고 다윗은 날마다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슬퍼하니라. 압살롬이 도망하여 그술로 가서 거기에 산 지 삼 년이라 다윗 왕의 마음이 압살롬을 향하여 간절하니 암논은 이미 죽었으므로 왕이 위로를 받았음이더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왕의 마음이 압살롬에게로 향하는 줄 알고

왕이 요압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을 허락하였으니 가서 청년 압살롬을 데려오라 하니라

요압이 땅에 엎드려 절하고 왕을 위하여 복을 빌고 요압이 이르되 내 주 왕이여 종의 구함을 왕이 허락하시니 종이 왕 앞에서 은혜 입은 줄을 오늘 아나이다 하고 요압이 일어나 그술로 가서 압살롬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오니 왕이 이르되 그를 그의 집으로 물러가게 하여 내 얼굴을 볼 수 없게 하라 하매 압살롬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니라.

압살롬이 자기 집으로 돌아온 지 2년이 지나도록 아버지 다윗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된다. 이제 압살롬은 화가 나게 된다. 만나주지도 않을 거면서 왜 자신을 예루살렘으로 불렀느냐는 것이다. 용서해주고 빨리 왕자로서의 특권을 내주지 않고 이게 무슨 짓이냐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압살롬은 요압의 밭에 불을 지르게 된다. 요압으로 하여금 다윗 왕을 만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라는 것이다.

압살롬이 이태 동안 예루살렘에 있으되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였으므로 압살롬이 요압을 왕께 보내려 하여 압살롬이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 부르되 그에게 오지 아니하고 또 다시 그에게 보내되 오지 아니하는지라 압살롬이 자기의 종들에게 이르되 보라 요압의 밭이 내 밭 근처에 있고 거기 보리가 있으니 가서 불을 지르라 하니라 압살롬의 종들이 그 밭에 불을 질렀더니 요압이 일어나 압살롬의 집으로 가서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 종들이 내 밭에 불을 질렀느냐 하니 압살롬이 요압에게 대답하되 내가 일찍이 사람을 네게 보내 너를 이리로 오라고 청한 것은 내가 너를 왕께 보내 아뢰게 하기를 어찌하여 내가 그술에서 돌아오게 되었나이까 이 때까지 거기에 있는 것이 내게 나았으리이다 하려 함이로라 이제는 네가 나로 하여금 왕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하라 내가 만일 죄가 있으면 왕이 나를 죽이시는 것이 옳으니라 하는지라

이제 압살롬이 거짓의 사람으로서의 면모를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위의 사건은 가짜 거짓의 사람이나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도 벌일 수 있는 사건이다. 그렇다면 압살롬은 거짓의 사람일 가능성이 아주 커진다. 왜냐하면 그전에 벌인 암논 살인 사건은 거짓의 사람만이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치밀함과 인내가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번 사건과 이번 사건을 합쳐서 모두 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거짓의 사람이다. 지금 압살롬이 벌인 사건은 바로 적반하장이다. 그렇다. 거짓의 사람들의 특징 중의 하나가 바로 적반하장이다. 자신이 회개하고 자숙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불러놓고 왜 만나주지 않느냐고 따지는 것이다. 사실 다윗은 이미 압살롬을 용서한 것이다. 예루살렘으로 불러온 것 자체가 용서이다. 그러나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압살롬의 내적인 변화가 요구되어지는 시간이다. 그것을 모두가 느낄 때 자연스럽게 그 모든 용서와 화해의 분위기가 마련되어지게 된다.

압살롬의 문제는 과거의 엄청난 사건에 대한 회개와 변화를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술에서 왜 불러왔느냐는 것이다. 불러왔으면 무엇인가 가시적인 용서를 보여주어야 할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렇다. 거짓의 사람들은 사건을 종합적이고 입체적으로 보지 않고 자신에게 유리한 시점에서부터 논리를 전개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거짓의 사람들과는 대화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적반하장적인 궤변이 나온다. 내가 할 말을 그들이 하기에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전개된다. 압살롬을 그술에서 불러온 시점에서 그를 2년 동안 만나주지 않은 처사를 놓고 이야기한다면 다윗 왕도 요압도 실없는 사람이거나 무례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이것이 바로 거짓의 사람들의 적반하장의 논리이다. 이러한 논리는 곧바로 흑백논리로 이어진다. 선택하라는 것이다. 만나주고 용서해주든지 아니면 죽이든지 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공갈협박이다. 흑백논리를 놓고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는 공갈협박이 이어진다. 사실은 이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현재 압살롬이 취해야 할 자세는 죄를 지은 자신을 용서해준 아버지 다윗에 대해 감사한 마음으로 겸손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다윗 왕이 압살롬을 용서한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단지 압살롬을 만나기 위해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바로 그것이 다윗의 사랑이다. 정말 사랑해서 이방 땅에 망명하는 것을 볼 수 없었던 아버지가 다윗이다. 하지만 예루살렘에 데려다 놓고는 경거망동한 압살롬이 마음을 닦고 수양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은 것이 또한 다윗이다. 이것은 정말 깊은 사랑이다. 하지만 압살롬이 이러한 사랑을 알 리가 만무하다. 거짓의 사람에게는 이러한 사랑은 사치인 것이다. 또한 이러한 다윗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오히려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만 커져간다. 비록 요압을 억압해서 다윗 왕과의 만남을 성사해놓고도 압살롬의 마음은 이미 떠나있었다. 아마도 과거에 암논을 죽이려고 준비하는 동안에 벌써부터 다윗 왕에 대한 압살롬의 마음은 떠나있었을 것이다. 다윗 왕과 만나서 공식적인 용서를 받으려고 했던 것도 반역을 준비하기 위한 절차이었으리라. 성경은 말한다. “악한 자는 반역만 힘쓰나니....”

요압이 왕께 나아가서 그에게 아뢰매 왕이 압살롬을 부르니 그가 왕께 나아가 그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어 그에게 절하매 왕이 압살롬과 입을 맞추니라. 그 후에 압살롬이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호위병 오십 명을 그 앞에 세우니라.

이제부터 압살롬의 아주 계획적이고 치밀한 반역이 시작된다. 먼저 단순한 백성들의 마음을 훔치기를 시도한다. 아버지 다윗 왕의 힘을 이용해서 다윗 왕과 백성 사이를 이간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거짓의 사람들의 특징 중의 하나다. 이들은 특정한 사람의 힘과 관계성을 이용해서 오히려 그 사람을 넘어뜨리는 아주 오묘한 기술을 발휘한다. 압살롬은 자신이 용서받고 다시 왕자로서 권위를 회복한 것을 가지고 이제는 오히려 다윗 왕에게 반역할 수 있는 힘을 모으는 것이다. 그것도 그의 거짓된 입맞춤과 값싼 친절로 말이다. “원수의 잦은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

압살롬이 일찍이 일어나 성문 길 곁에 서서 어떤 사람이든지 송사가 있어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올 때에 그 사람을 불러 이르되 너는 어느 성읍 사람이냐 하니 그 사람의 대답이 종은 이스라엘 아무 지파에 속하였나이다 하면 압살롬이 그에게 이르기를 보라 네 일이 옳고 바르다마는 네 송사를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아니하셨다 하고 또 압살롬이 이르기를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나 재판할 일이 있어 내게로 오는 자에게 내가 정의 베풀기를 원하노라 하고 사람이 가까이 와서 그에게 절하려 하면 압살롬이 손을 펴서 그 사람을 붙들고 그에게 입을 맞추니 이스라엘 무리 중에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마다 압살롬의 행함이 이와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압살롬이 훔치니라.

이제 마지막으로 압살롬이 얼마나 무서운 거짓의 사람인지를 말하고자 한다. 그것은 그가 다윗 왕을 몰아내고 예루살렘에 왕으로 입성했을 때 행한 일 때문이다.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아버지 왕의 후궁들과 더불어 동침한 것이다. 그것도 백주 대낮에 옥상에서 말이다. 이는 도를 넘어서는 것이다. 정말이지 치명적 거리를 넘어서 인륜을 저버린 행위이다. 복수도 좋고, 아버지를 왕권에서 내쫒는 것도 좋다. 하지만 압살롬이 행한 음행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 그 누구에게도 용서받을 수 없는 패륜적 행태이다. 단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찾은 방법치고는 너무나 치졸하다. 그리고 비겁하다.

“사악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하게 하느니라.”

그렇다. 거짓의 사람들은 반드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압살롬이 다윗의 부하들과 마주치니라. 압살롬이 노새를 탔는데 그 노새가 큰 상수리나무 번성한 가지 아래로 지날 때에 압살롬의 머리가 그 상수리나무에 걸리매 그가 공중과 그 땅 사이에 달리고 그가 탔던 노새는 그 아래로 빠져나간지라 한 사람이 보고 요압에게 알려 이르되 내가 보니 압살롬이 상수리나무에 달렸더이다 하니 압이 그 알린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보고 어찌하여 당장에 쳐서 땅에 떨어뜨리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네게 은 열 개와 띠 하나를 주었으리라 하는지라 그 사람이 요압에게 대답하되 내가 내 손에 은 천 개를 받는다 할지라도 나는 왕의 아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우리가 들었거니와 왕이 당신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삼가 누구든지 젊은 압살롬을 해하지 말라 하셨나이다 아무 일도 왕 앞에는 숨길 수 없나니 내가 만일 거역하여 그의 생명을 해하였더라면 당신도 나를 대적하였으리이다 하니 요압이 이르되 나는 너와 같이 지체할 수 없다 하고 손에 작은 창 셋을 가지고 가서 상수리나무 가운데서 아직 살아 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찌르니
요압의 무기를 든 청년 열 명이 압살롬을 에워싸고 쳐죽이니라.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밴드 구글+
기사입력: 2009/11/01 [13:11]  최종편집: ⓒ newspower
 
관련기사목록
[정성민 교수의 신앙과 신학의 만남] 악의 비밀 (6) 정성민 2010/01/05/
[정성민 교수의 신앙과 신학의 만남] 하나님의 사람과 거짓의 사람의 구별 정성민 2009/11/05/
[정성민 교수의 신앙과 신학의 만남] 성경 속 거짓의 사람은 누구인가? 정성민 2009/11/01/
[정성민 교수의 신앙과 신학의 만남] 악의 비밀 (3) 정성민 2009/10/10/
뉴스
연재소개
정성민 교수의 신앙과 신학의 만남
연재이미지1
예수와 부처, 누구를 따를 것인가?(6)
예수와 석가모니 (5)
예수와 석가모니 (4)
예수와 석가모니 (3)
예수와 석가모니(2)
예수와 석가모니(1)
악의 비밀 (6)
하나님의 사람과 거짓의 사람의 구별
성경 속 거짓의 사람은 누구인가?
악의 비밀 (3)
악의 비밀 (2)
악의 비밀 (1)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 법 2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 법(1)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당신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것일까?
어느 종교가 진짜일까?
과연 천사는 존재하는가?
과연 이 땅에서의 성화는 가능할까?
하나님이 살아계신데 왜 세상은 이렇게 악한가?
광고
인기기사 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개인정보취급방침회사소개후원 및 광고 만드는사람들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
서울 종로구 김상옥로 17(연지동 대호빌딩136-5) 본관 107호 TEL 02-391-4945~6| FAX 02-391-4947,
Copyright2003-2019뉴스파워. all right reserved. mail to newspower@newspower.co.kr 등록번호 서울 아 00122 등록일 2005.11.11 발행 및 편집인 김철영. 청소년보호책임자:김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