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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2.12 [05:01]
악의 비밀 (3)
정성민 교수의 신앙과 신학의 만남
 
정성민
 과연 거짓의 사람들은 누구일까?

과연 이들은 어떤 사람들이기에 순진한 사람들을 이용하여 사기를 치는 것일까?

왜 자신들의 야망을 자신의 노력으로 하지 않고 남을 이용하려는 것일까?

과연 성경에서도 이러한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과연 예수님도 이러한 사람들을 알고 계셨을까?

다윗은 시편 1편에서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말라고 말한다. 바로 여기서 다윗이 말한 악인이 거짓의 사람들이리라. 또한 시편 5에서 다윗은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라고 말한다.  다윗은 속이는 자들, 곧 거짓의 사람들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살지 않고 남의 힘을 이용하여 쉽게 살아가는 거짓의 사람들이 구약시대에도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신약성서에서의 대표적인 거짓의 사람은 가룟 유다일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도 거짓의 사람에게 사기를 당한 것이다. 물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예수님도 사기를 당하신 것이다. 아니 배신을 당한 것이다. 예수님을 이들을 가라지라 말씀하신다. 가라지와 알곡의 비유처럼, 초기에 그 누구도 가라지와 알곡을 가려낼 수 없다. 정말 똑같이 생겼다. 아니 오히려 알곡이 가라지처럼 보인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말로는 거짓의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그 사람들이 당신 곁에 서 있어도 당신은 그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아마도 천사와 같은 사람이라고 착각할 것이다. 실제로 경험해보면 거짓의 사람들도 자신들 스스로가 천사와 같은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가라지와 알곡의 비유를 통해 우리는 심판의 날이 이르기 전에는 인위적으로 가라지를 걸러 내거나 뽑아낼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그 이유는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을 뽑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가라지는 혼자 뽑히지 않고 반드시 알곡과 함께 뽑혀 나온다는 것이다. 섣불리 거짓의 사람을 건드리면 “문제의식의 없는 사람들”과 “소심하고 겁 많은 사람들”이 더 큰 상처를 받는다는 것이다.

거짓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발각되어 쫓겨날 때를 반드시 대비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하는 일들은 교회나 단체의 성장과 발전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자신들의 체제를 유지하는 데에 주로 힘을 쏟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단체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느라 여념이 없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시키려는 노력 외에는 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추종세력을 만들기 위해 자신들의 돈을 사용한다. 밥도 사주고, 아플 때 병문안도 간다. 생일 축하도 잊지 않고 해준다.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들은 그저 사소하고도 쉬운 일이다. 그리고 어쩌면 아주 비겁한 처사이다. 다른 많은 사람들은 교회의 건축이나 행사를 치루기 위해 자신들의 모든 것을 다 쏟아놓는다. 그러기에 아주 사소한 일들을 챙기기에는 너무나 지치고 여력이 없게 된다.

반면 거짓의 사람들은 교회나 단체의 아주 큰일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어쩌면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의 체면치례만을 한다. 항상 힘이 남아 있고 그 힘을 가지고 다른 모든 사람들이 지쳐있을 때에 사소한 것들로 사람들의 마음을 녹인다. 그리고는 영향력이나 권력이 있는 자리로 자신들의 위치를 이동시킨다. 생각보다 일이 어렵지 않게 진행된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쌓아놓은 지지 세력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체장이나 교회의 목회자 입장에서는 이를 느끼지 못할 리가 없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이들 거짓의 사람들은 정말 한 눈에 보일 수밖에 없다. 거짓의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것들에 치부는 할지언정 실제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밖에 없는 이들이 바로 교회의 담임목사나 기관이나 단체의 장들이다. 정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이들은 때가 이미 늦은 것이다. 거짓의 사람들이 이미 자신의 입지를 구축해 놓은 것이다. 모두가 교회 건축이나 큰일들로 정신이 없는 동안 그들은 차곡차곡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해 놓은 것이다. 이제 이들은 도움이 되기는커녕 아주 해로운 존재들이 된 것이다. 본래부터 해로운 사람들이었지만 아무도 눈치를 체지 못한 사이에 자신들의 입지를 굳힌 것이다.

이제 단체장은 그들을 내쫓기로 결심하게 된다. 왜냐하면 거짓의 사람들이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세력의 중심으로 다가와서 급기야는 단체장의 영향력에도 도전을 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권력인 것이다. 힘 안들이고 돈 안들이고 아주 쉽게 권력을 획득하려는 것이 바로 이들의 나쁜 습관이요 본능인 것이다.

그러나 거짓의 사람들은 그리 쉽게 내몰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을 내쫓으려는 순간 그들은 반란세력을 구축하게 된다. 그것도 아주 쉽게 말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잘 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단체장이나 개인적으로 기분이 나쁜 것이지 실제로 그들을 퇴출시킬 수 있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교회 건축에 필요한 헌금도 조금은 냈다. 경제적 형편이 되는 데도 아주 눈에 걸리지 않을 만큼 냈을 뿐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

또 하나의 이유는 그들이 이미 벌써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다는 것이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단체장이나 교회의 지도자들이 까맣게 잊어먹은 민초들의 생일이나 어려운 일들을 거짓의 사람들이 미리 챙겼다는 것이다. 자, 한번 생각해보라! 만약 단체장이나 목회자가 그를 아무런 이유 없이 단체나 교회에서 내쫓으려고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바로 민란이 일어나는 것이다. 다윗왕도 자신의 아들 압살롬에게 이런 식으로 왕권을 빼앗긴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압살롬도 대표적인 거짓의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정이라는 것이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거짓의 사람들은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들”과 “겁 많고 소심한 사람들”의 동정심을 유발시킨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사태가 벌어질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정을 이용하여 동정심을 유발시키려는 작전을 미리 세운 것이다. 아니 작전을 세운다기 보다는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그러면서 단체장이나 교회의 지도자들로부터 자신들이 내몰리려는 상황을 더욱 부풀리려는 할리우드 액션1)을 취한다. 이때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들”은 심한 감정의 요동을 느끼면서 교회 지도자에게 강력한 반발을 하게 된다. 이제 목회자는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들”에게 왜 거짓의 사람들이 문제인지를 설명해야만 한다. 하지만 목회자들이 깨닫게 되는 건, 그들을 이해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소심하고 겁 많은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주로 소심하고 겁 많은 사람들은 원칙주의자들이다. 눈에 보이는 특별한 반칙이나 법에 직접적으로 걸리는 문제점이 없는 이상, 거짓의 사람들을 처벌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는 것이다.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큰 반칙을 거짓의 사람들이 행하고 있지만 이는 “겁 많고 소심한 사람들”의 일반적이고 기초적인 윤리의 망으로 도저히 잡을 수 없다.

이제 거짓의 사람들의 무혐의가 드러난 이상에는 거짓의 사람들을 내쫓으려고 시도한 목회자나 단체장이 위기에 내몰리게 된다. 왜 그렇게 착한 사람을 내쫓으려고 하느냐는 반박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의 지도력이 의심받게 된다. 급기야는 단체장이 그를 시기한다는 분위기까지 조성이 되면서 사건은 종결된다. 정말 놀라운 반전이지 않은가!

결국 단체장이나 목회자는 그 거짓의 사람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그가 원하는 영향력이 있는 자리를 줄 수밖에 없게 된다. 어떠한 결정권이 있는 교회의 당회나 단체의 심사관의 자리에 앉아 이제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단체를 이끌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비극이 또 있을까? 목회자가 내쫓으려했던 사람이 교회 의사 결정권이 있는 자리에 올라서 목회자가 원하는 일들을 하나하나를 인준한다니 말이다. 이제 목회자는 다른 목회지를 향해 떠나든지 아니면 철저히 통제된 시집살이를 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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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10/10 [19:20]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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