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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2.08 [11:01]
악의 비밀 (2)
거짓의 사람의 존재와 그들에 대한 대처
 
정선민
과연 거짓의 사람들은 누구일까? 이들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자못 의아해 할 것이다. 과연 이런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일까? 이는 특별히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거짓의 사람들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그들에 대한 무서운 공포심이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혐오감을 가지게 될 것이다.

거짓의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까이 우리 곁에 존재한다. 이들은 당신의 남편이나 아내가 될 수도 있고, 당신의 아들이나 딸도 될 수도 있다. 아니면 당신의 동서나 시부모 또는 며느리가 될 수도 있다. 교회 안에서 살펴본다면, 당신 교회의 권사님이나 집사님 아니면 장로님이 될 수도 있다. 심지어 목사님도 이 가능성의 테두리에서 제외될 수는 없다. 거짓의 사람들은 교회의 신분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존재 자체에 의하여 결정되기 때문에 그 사람이 어떤 신분의 사람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저명한 정신과 의사인 스캇 펙 박사는 거짓의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종교가 기독교이고, 이들이 아주 손쉽게 자신의 존재를 은닉하고 은폐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교회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불교나 타종교에 이러한 유형의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거짓의 사람들이 지닌 파괴적인 성향이다. 이들이 가는 곳마다 관계성의 파괴가 일어난다. 이들이 가는 곳이 처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순간 갑자기 그 단체가 아주 문제투성이 집단으로 전락해버린다. 실제로 그 무엇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데 왜 갑자기 그 단체가 시끄러워졌을까? 그 소란의 중심에 바로 거짓의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누구도 거짓의 사람을 의심하거나 정죄할 수가 없다. 바로 그들이 지닌 외교술과 권모술수 때문이다. 마음으로는 의심이 가지만 그리 쉽게 증거를 찾아내어 죄를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대부분의 맴버들은 그의 섬세하고 교묘한 말과 행동으로 인해 그의 위장된 순수성을 전혀 의심치 않는다. 

어느 단체에 가든지 거짓의 사람들은 먼저 자신의 추종자들을 만들어 놓는다. 이들의 희생양은 주로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들”이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들”은 선과 악의 기준이 아주 교과서적이다. 그래서 아주 단순하고 초보적인 윤리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러나 세상은 교과서에 나오는 그러한 단순한 윤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너무나 미묘하고 복잡한 일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기에 하나의 사건과 문제를 잘 이해하고 풀기위해서는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사고가 필요한 것이다.

스캇 펙에 의하면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들”은 단순사고를 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생각보다 너무 복잡하다는 사실을 이들은 모른다. 험악한 세상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복합적인 사고가 필요한데 이들의 단순사고에 의한 도덕적 판단은 문제를 풀기보다는 오히려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그래서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만약 당신이 문제를 푸는 사람이 아니라면 당신 자신도 그 문제의 일부이다.”

거짓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들”의 윤리기준을 맞추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 간단한 연기만으로도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게 된다.

어쩌면 한국사회나 한국교회가 바라보는 지도자상이나 어른의 이미지가 너무나 도덕적으로 기울어졌기 때문에 거짓의 사람들이 판을 치는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가 원하는 지도자는 능력 있는 지도자보다는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공자와 같은 사람들이다. 특별히 종교지도자들에게 바라는 이미지가 있다면 바로 공자와 같은 도덕적인 삶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능력 있는 지도자나 아니면 문제를 해결하는 지도자가 되려면 막연한 도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서는 역부족이다. 살아있는 지도자, 생명력 있는 지도자라면 겉으로 드러나는 도덕성 혹은 위선적인 삶보다는 내면적인 도덕성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일단 거짓의 사람들은 순한 양과 같은 겉으로 드러나는 도덕성(위선?)으로 자신의 추종자를 얻게 되면, 그들에게 자신들이 발견한 단체의 문제점 내지는 문제점이 아닌 문제점을 말한다. 단체를 세워보고자 하는 건설적인 비판보다는 단체를 무너뜨리는 무분별하고 부정적인 비판이다.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들”의 귀에는 이런 부정적인 비판이 아주 솔깃하고도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 문제를 이슈화하게 된다. 그가 속한 단체를 구원하고 싶은 이상과 꿈에 젖어 이들은 자연스럽게 거짓의 사람들의 행동대장(?)을 자처하게 된다. 이제 그 단체는 더 이상 조용해질 수 없다.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들”이 그 단체의 문제점을 제기할 때 거짓의 사람들이 살짝 거들게 된다. 정말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완전범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가짜 거짓의 사람들”과 “겁 많고 소심한 사람들”의 반응이다. 만약 가짜 거짓의 사람이 그 단체장이라면 다혈질적 성향으로 문제를 단순하게 풀려고 시도하게 된다. 하지만 문제를 풀려고 할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게 되어있다. “가짜 거짓의 사람”이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들”과 멱살을 잡고 싸우면 싸울수록 “겁 많고 소심한 회색분자 사람들”이 점차로 거짓의 사람들에게 기울기 때문이다.

또한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들의 문제 제기가 어느 정도의 진실성을 내포하기에 그 누구도 무를 자르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문제의 시발점인 거짓의 사람들이 자신들을 “평화의 사도”로 자처하면서 그 사건을 중재하기 시작하게 되면 문제의 심각성이 더욱 극화되어진다. 결국 그 단체가 문제가 너무 심각해서 현재의 운영진이 도저히 이끌어갈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지게 된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그 문제를 풀 수 있고, 단체를 회생시킬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거짓의 사람이 지명된다. 이런 식으로 거짓의 사람은 아주 손쉽게 그 단체를 장악하게 된다.

하지만 그 단체장이 분별력과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그 분별력이 있는 사람은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들”의 충동적이고 저돌적인 반항에 당황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과 감정적으로 싸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만약 감정적으로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들과 싸우게 되면 바로 이들의 배후세력인 거짓의 사람이 재판관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제 분별력 있는 단체장이 할 수 있는 일은 기도하면서 진실이 밝혀지길 기다리는 것이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인내력이 요구되어진다. 억울한 감정이 복받치더라도 어디 호소할 곳이 없다.

어디 문제없는 단체가 있으랴. 그 정도의 문제는 서로 이해하며 나아가는 것이 인간사회가 아닌가. 하지만 이러한 호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질 못한다.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들”의 이상과 꿈을 맞추어 주기에는 이들의 감정적인 호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고민하다가 결국에 “겁 많고 소심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호소해본다. 하지만 이들로부터 감정적인 동정만 얻을 뿐 아무런 지지나 도움을 얻지 못해 오히려 비애감만 더해진다. 그렇다고 배후세력으로 추정되는 거짓의 사람들을 찾아가서 멱살을 잡을 수도 없다. 그것은 바로 폐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거짓의 사람들은 그들이 그렇게 해주기를 기다린다. 바로 자신들이 놓은 덫에 이들이 걸리면 생각보다 일이 쉽게 끝나기 때문이다.

또한 거짓의 사람들에 대해 맞대응하여 그들을 비난하며 흑색선전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만약 당신이 진실한 사람이라면 거짓의 사람들과 말싸움이나 흑색선전은 패배의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요리가 전공이 아닌 사람이 요리가 전공인 사람과 요리로 맛 대결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믿음과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공격은 정직과 진실로 맞대응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릴 줄 아는 인내가 필요하며 또한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는 소망이 필요한 것이다. 바로 이시간이 믿는 자들에게 주어진 기도의 시간이다. 거짓의 사람들의 배후에는 이들을 돕고 있는 거짓의 영들이 있다. 그러기에 무릎으로 기도하며 영적으로 대적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그 시간에는  말 한마디 한 마디도 절제해야 된다. 특별히 감정적인 언사를 금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 단체장이 거짓의 사람이라면 상황은 많이 달라진다. 거짓의 사람들도 등급이 있다. 더 강하고 독한 거짓의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어 있다. 만약 단체장이 더 강력한 거짓의 사람이라면 그러한 문제를 일으킨 거짓의 사람을 아주 쉽게 퇴출시킬 수 있다. 그것은 그가 지금까지 구축해온 정보망과 더 많은 추종자들을 통해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다. 아니 새로운 거짓의 사람이 자리를 깔기도 전에 내쫓아버리게 된다. 거짓의 사람이 자신과 같은 유형을 알아보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또한 새로운 거짓의 사람이 더 강하다면 상황은 전혀 다르게 진행된다. 그가 그 단체장의 모든 비리를 밝혀서 그를 그 자리에서 퇴출시킬 것이다. 아니면 자신이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그 단체장이 새로운 거짓의 사람의 하수인으로 전락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단체장은 자신의 거짓과 비리가 드러나서 힘을 잃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든 거짓과 비리가 폭로되기 전에 이들 거짓의 사람들 간의 합의나 동맹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참으로 믿기 힘든 현실이지만, 세상의 모든 단체나 기관들이 거짓의 사람들의 사악한 음모와 권모술수로 인해 신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회와 같은 종교단체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만약 당신에게 이러한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온다면 당신은 아마도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이거나 “겁 많고 소심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바로 당신은 우매한 군중들의 한 사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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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10/09 [11:59]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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