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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섭 생태칼럼] 붉은 노을에 대한 반응
공학섭목사(순천대대교회 담임, 작가)
 
공학섭   기사입력  2024/07/09 [08:07]

유난히 저녁노을이 붉다. 같은 지역에서 같은 시간에 이 장면을 보았다면 산 너머에서 큰불이 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노을이니 붉을 수 있겠으나 오늘은 더욱 빨갛다.

 

하늘이 아무리 빨개도 모두가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하늘이 파랗거나 빨개지거나 상관치 않고 자기 길만 바삐 걷는다. 나 역시도 멋진 황혼을 보았다는 목격담과 생생한 사진을 보여주어도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때가 있었으니 남의 말 할 처지는 아니다.

 

  © 공학섭


자연을 향한 감정표현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감정지수가 낮으면 옆사람이 아무리 감동적인 표현을 해도 무반응이다. 자신은 붉은 노을이 혼자 보기 아까워서 찍어 올렸지만, 보는 이들이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면 김이 빠진다.

 

적당한 감정 표현은 필요하다. 우린 감정이 메마른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때에 공감 능력을 갖추고 있음은 좋은 장점이다. 부부간에 공감 능력이 풍부하면 좋은 관계가 성립될 것이다. 부자의 관계, 사제의 관계, 직장 동료와의 관계에서도 서로를 향해 공감을 표하면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공감은 삶의 활력소이며, 관계를 부드럽게 해주는 윤활유다.

 

  © 공학섭


무엇이든 타고난 사람은 없다. 선한 일일수록 더욱 서툴다. 윽박지르기는 쉬우나 차분하게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일은 쉽지 않다. 소설가 신달자 님의 저서 그대에게 줄 말은 연습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공감도 연습이 필요하다.

 

누구의 글을 읽든지 읽은 다음엔 반응해 주는 것이 훌륭한 독자가 되는 길이다. 무더기로 쏟아지는 게시 글에 일일이 반응할 수는 없지만 진지함과 정성을 들인 글들에 대해서는 한 줄의 짧은 글이라도 보답해야 한다. 나도 선한 의무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 공학섭


하지만 습관이 되지 않아서 번번이 놓친다. 어제도 은행 창구에서 나의 복잡한 업무를 맡아준 이에게 공감해 줄 기회를 놓쳤다.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넘어설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어쩌면 내 것처럼 익숙해지는 날은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위대한 스승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국 복음을 가르치셨을 때 듣는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에 놀라움으로 반응을 하지만 믿는 자는 많지 않았다. 대다수가 거절했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외쳤다. 그의 가르침에 반응하고 받아들인 자는 소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공감하는 소수의 능력은 위대했다. 그들이 오늘의 교회를 부흥하게 했다.

 

  © 공학섭


폐일언하고 공감이란 상대를 향한 친절이면서 자신에게 더 큰 혜택을 가져다준다. 당신이 만일 다른 사람을 마음을 헤아려주는 선한 감성을 가진 자라면 복 받은 자다. 다른 사람이 기뻐하는 일을 함께 기뻐할 수 있다면 그만큼 행복한 시간이 늘어가는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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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7/09 [08:07]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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