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삭줄의 번식력은 놀랍다. 강력한 번식력을 지닌 대나무밭 한 귀퉁이를 잠식해 버렸다. 전망을 가린다고 대나무 우듬지를 잘라 주었더니 그사이에 마삭줄이 일취월장하여 대나무밭 한 편을 덮어버렸다.
마삭줄 아래에 갇혀 있는 대나무와 아카시아 그리고 여러 잡목은 숨통이 조여 옴을 느끼며 당황하고 있을 것이다. 공존이 최상이지만, 정원 한 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제 상황은 그렇지가 않다. 먹느냐 먹히느냐의 갈림길에서 자기를 지켜내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마삭줄꽃이 한창 피어 있는 장면은 초록의 잎사귀만 없다면 소복하게 쌓인 눈으로 착각을 일으킬 것만 같다. 순백의 새하얀 꽃이라서 그런지 해가 지고 어둑어둑할 시간인데도 주변이 환하다. 플래시를 터트리지 않아도 될 정도다.
마삭줄 꽃향기는 강렬하다. 유전 무전 상관없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최고급 향수다. 마침, 남풍이 부는 계절이라서 정원 끝에서부터 시작한 향기는 집안은 물론 골목과 이웃집까지 전해준다. 이른 봄부터 지금까지 매화꽃 향을 필두로 천리향, 금목서, 은목서의 향기에 흠뻑 취하며 산다.
바람결에 흩어진 향기를 병에 담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웃에게 선물도 하고 늦가을부터 겨우내 꺼내어 쓰게 말이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혹적인 향기가 흩어지는 게 아까워서 해본 말이다.
K. 슈뢰겔 저서 <제국의 향기>에서 “향기는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역사는 저장할 수 있어도 향기의 아카이브는 존재하지 않는다. 향기는 사라진다.”라고 했다. 옳은 말이다. 영원히 저장되는 꽃향기는 없다.
꽃향기는 저장할 수 없지만 사람의 향기는 그렇지 않다. 특히 아름다운 삶을 살다 간 사람은 떠난 후에도 그 향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의 향기는 마음속 깊숙한 곳에 저장이 된다. 향기로운 사람은 떠난 지 오래 되어도 두고두고 생각이 난다. 무명의 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교회를 섬기면서 교우들에게서 맡았던 향기를 글로 저장하는 중이다. 교회 카페에 <기억의 전당>이란 코너를 마련하여 천국에 가신 100여 명의 교우들 이야기를 기록했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넘어지기도 했지만, 오뚝이처럼 일어선 이야기. 마침내 승리의 개선가를 부르며 생을 마감한 이야기 등을 담고 있다.
천국에 간 교우들의 이야기를 쓰면서 꽃향기는 사라져도 사람 냄새는 지워지지 않음을 배웠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 냄새는 더욱 향기롭게 풍긴다. 그중에서도 돈독한 믿음을 따라 산 자들의 향기로움은 사그라질 줄을 모른다.
성경에도 인간의 업적은 다 불타 사라질 것이지만, 구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일들은 영원토록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 했다. 믿음의 향기는 영원하다. 천국에서도 그 향기를 계속된다. 그래서 바울은 신자를 향해 “그리스도의 향기다.”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하니 그를 믿는 자들의 향기도 영원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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