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린이날이다.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다니…. 오랜 전부터 나들이 계획을 세운 가족들에게는 매우 실망스러운 날이었으리라. 하지만 처음부터 교회는 나올 생각을 한 가족들과 아이들에게는 우산을 쓰고 교회 나오는 불편 빼고는 다를 것이 없으리라.
비를 맞고 휴가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가족들이라면 짓궂은 날씨가 원망스러울 것이다. 이번 비 오는 날씨는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다. 이미 일기 예보를 하였으니 말이다. 누가 내리는 비를 막을 수 있겠는가? 우산으로 가릴 수 있는 곳은 머리 꼭대기뿐이다.
우리 교회는 날씨를 미리 알고 계획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5월4일 그러니까 어제 어린이날 행사를 치렀다. 부목사님과 선생님들이 유쾌한 행사를 마련하여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었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한발 물러선 나는 뒤에서 조용하게 지켜보았다. 마침, 가지런히 놓여 있는 예쁜 신발들이 눈에 띈다. 조금 틀어진 것은 마저 바르게 고쳤다. 작고 깜찍한 신발을 눈으로만 보이엔 너무 아까워 사진으로 담았다.
아이들은 노는 모습도 예쁘고, 장난을 치는 모습도 귀엽다. 먹는 모습도 사랑스럽고, 신발만 보아도 사랑스럽다. 이렇게 아름다운 아이들이 비행 청소년이 되고, 불량한 말썽꾸러기가 될 수 있다니 믿겨지지 않는다.
벗어놓은 신발에서는 아무런 티가 나지 않지만, 신발의 주인공들인 아이 중에서는 아픈 상처를 마음에 담고 있기도 하다. 아픔의 원인은 아이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그들을 낳은 부모들이 만들어 놓은 것들이다.
철모르는 것 같아도 마음 한구석에 풀리지 않는 응어리가 있다. 그래도 교회에 와 있는 시간만큼은 아픔을 잊고 지낸다. 하지만 그들이 사는 집 현관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순간 아픈 현실을 다시 맞닥뜨려야만 한다.
정상적으로 사는 아이들이라고 해서 미래가 맑은 것만은 아니다. 기후 위기로 인하여 우리 아이들이 겪게 될 미래의 고통이 불 보듯 뻔하다. 지금 내리는 비도 심상치가 않다. 5월의 비가 폭우 수준이다. 브라질, 케냐를 위시하여 지구 곳곳에서 물난리를 겪고 있다. 코로나와 같은 괴질이 발생하리라는 우려가 현실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래도 희망을 말해야겠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절망에 빠진 자들에게 희망을 주시기 위함이 아닌가?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인류에게 희망을 주시는 분이다. 신발의 주인공들인 어린아이들을 위해서도 죽어주셨다. 부디 아이들의 미래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아니다, 반드시 행복해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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