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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섭 생태칼럼] 고양이와 함께 사는 법
공학섭목사(순천대대교회 담임, 작가)
 
공학섭   기사입력  2023/12/07 [13:41]

 

고양이 삼 형제가 태어나 자라고 있다. 일부러 먹을 것을 챙겨주거나 잠자리를 제공해 주지 않았는데도 셀프로 입주하여 자기 집인 양 살고 있다. 엄마 때부터 살았으니 적지 않은 세월을 산 셈이다.

 

이들에게 과한 친절을 베푼 일이 없는데도 계속 머무는 이유는 무엇일까? 숨어 지낼 수 있는 공간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지 싶다. 양지바른 테라스 안에 들락거릴 수 있는 작은 틈을 이용하여 보금자리를 마련해 두었다. 

▲ 엄마와 새끼 고양이가 햇볕을 쬐고 있다. 부녀가 아주 여유로워 보인다.  © 공학섭


함께 살아온 날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였나 보다. 가까이 다가오기를 주저하지 않고,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곳에서 한가로이 햇볕을 쬐고 있다. 새끼들도 경계심을 풀고 재롱을 피우며 재미있게 논다.

 

생선이나 고기 냄새가 나면 방문 앞에서 앉아서 주인의 자비를 기다린다. 간절한 눈빛을 마주할 땐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멸치라도 가져다가 준다. 임신한 듯싶을 땐 좀 더 자주 준다. 먹을 것을 주되 사냥을 멈추어도 될 만큼은 아니다.

 

고양이도 그걸 터득했는지 끼니마다 기웃거리지 않는다. 고양이를 돌봐주되 야생성을 상실하지 않을 정도로 조절해 준다. 집안에 쥐가 없는 것을 보니 고양이가 천적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나 보다. 가끔 날짐승까지 사냥하여 생태계의 수효를 조절하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 

▲ 새끼가 세 그중 두 마리만 엄마와 함께 나와 세상 구경을 하고 있다.   © 공학섭


고양이와 의논한 적은 없지만 한집에 살되 서로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는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는 Rule이 정해진 셈이다. 큰 호의를 베풀지는 않지만, 저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아끼지 않고 보내준다. 고양이도 그것을 눈치 챈듯하다.

 

사람과 동물은 경계가 있어야 맞다. 공존은 하되 사람은 사람의 방식으로 살고, 동물은 동물의 사는 방법으로 살아야 한다. 동물이 사랑스럽다고 사람처럼 취급함은 동물을 위한 될 수 없다.

 

아이들이 귀엽다고 어른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어린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그들의 수준에 맞게 보살펴 줄 때 아이는 행복해한다. 고양이는 사람처럼 사는 것보다 고양이답게 쥐를 잡으며 살 때 행복하다. 가끔 주인이 주는 사료보다 주인의 생선을 훔쳐 먹는 쾌감을 누리는 것이 고양이의 행복이다.

 

사람의 행복은 동물과 친구가 되기보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통을 나눌 때 온다. 또 가족들과 이웃들과 친밀한 사귐을 가질 때 피차 행복해진다. 예수님이 오신 이유도 죄로 단절되었던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고 친밀한 사귐을 갖게 하려 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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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12/07 [13:41]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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