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CCC의 역사는 고 김준곤 목사(1925.3.28-2009.9.29)를 빼놓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1958년 한국CCC 설립하고 대학생 선교를 못자리판으로 민족 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위해 평생을 헌신했던 김준곤 목사의 팔순을 기념해 지난 2005년에 제자, 지인, 국내외 동역자 110여 명으로부터 글을 받아 [나와 김준곤 목사 그리고 CCC]라는 기념문집을 만들었다. 기념문집에 원고를 주셨던 분들 중 여러분들이 이 세상을 떠났다. 역사적인 글들을 뉴스파워에 다시 올린다. (편집자 주)
김준곤 목사님은 아내의 인생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분을 우리는 20대 초반에 만났는데 이제 50대 후반이 되어갑니다. 1960년대 초 입석 수련회에서 김준곤 목사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그때는 한 마리의 학처럼 고고하고 순결한 분으로 보였습니다. 그 후 나이 오십이 될 때까지 매년 CCC 수련회에 참석했습니다. 수련회에서 주신 목사님의 말씀은 우리 삶에 강한 힘을 주셨습니다.
주님을 위해 살고 싶은 동기가 생겼습니다. 특히 아내는 수련회를 다녀오면 큰 도전을 받고 일통(?)을 저지르곤 했습니다. 사업상의 추진력을 얻었습니다.
김준곤 목사님은 33년 전에 아내와 저의 결혼식을 주례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결혼식 날 광주에는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목사님의 주례사가 너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두 분은 마을 동구 밖의 느티나무 같은 가정을 만들어 주십시오. 인생의 더 위로 지친 나그네들이 마음 놓고 쉬어 가는, 그늘이 널찍한 느티나무 가정이 되어 주십시오. 지친 영혼이 거기서 원기를 회복하고 다시 길을 떠나는 그런 가정을 만들어 주십시오.”
지난 30여 년을 돌아본다.
목사님의 말씀처럼 우리 가정이 느티나무 가정이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내는 어머니 순을 만들어 우리 집에서 풍성한 말씀 잔치를 벌여 왔습니다. 패션 디자이너로서도 큰 그늘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정신과 의사이며 교수로서 육십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주례할 때마다 김준곤 목사님이 저에게 주선 주례사 중에 느티나무가 되어 달라시던 당부를 신랑 신부에게 다시 전합니다. 그런 가정이 많아진다면 세상은 살맛 나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세상입니다.
목사님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일들이 많습니다. 엑스플로'74 여의도광장이 생각납니다. 저는 이 집회가 한국 교회 부흥의 기폭제가 되었다고 믿습니다. 많은 불가능의 산을 목사님은 기도로 넘으셨습니다. “민족의 가슴마다 피 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는 목사님의 이 구호는 전라도 시골 작은 교회에서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먹은 찐 밥의 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안이숙 여사가 밤하늘을 향해 부른 세 번의 “할렐루야”는 지금도 귀에 들리는 듯합니다.
목사님과 간사님들의 기도로 태풍의 방향이 우리나라를 비켜 간 사건도 기억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일하십니다. 목사님의 이 기도 사건이 생각난 사건이 내게도 있었습니다. 제 환자가 주사 쇼크로 심장이 42분간 제 기능을 못 한 적이 있었습니다. 뇌는 산소 결핍으로 망가졌고 환자는 바보처럼 침을 흘리며 웃고 사지는 뒤틀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저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환자는 완치되어 2주 만에 퇴원했고 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그 환자는 지금은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잘살고 있습니다. 저는 기도의 응답을 받고 김준곤 목사님의 태풍 기도를 생각했습니다. 인간 의술의 한계점에서 하나님은 저의 기도를 들어 주신 것입니다.
저는 강의할 때 환자의 증례를 많이 듭니다. 때때로 저는 이런 강의 스타일이 김준곤 목사님에게 배운 것이라는 생각하곤 합니다. 사람의 마음 현상을 설명할 때 사람 이야기처럼 좋은 교재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이에 다른 숙제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숙제를 목사님께서 성공적으로 수행하시고 사모님과 함께 주안에서 행복하시기를 빕니다.
이무석 박사는 전남의대를 졸업했고, 전남대에 정신과를 창설한 김성희 교수와 정신분석학계에 큰 업적을 남긴 런던대학의 샌들러 교수에게 정신분석을 배웠다. 이무석 박사는 한국정신분석학회 회장과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국제정신분석학회가 인정한 국내에 5명뿐인 교육 및 지도 정신분석가(TRAINING & SUPERVISING ANALYST)이기도 하다. 현재 전남의대 정신과 명예교수, 이무석 정신분석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그동안 수많은 저술과 강연을 통해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자유와 휴식을 선사했으며, 약물 치료가 대세를 이루는 현대 의학의 풍토에 꿋꿋하게 맞서 정신분석학의 재해석을 통해 병든 현대인을 치유하고자 최선을 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