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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섭 생태칼럼] 산울타리가 그립다
공학섭목사(순천대대교회 담임, 작가)
 
공학섭   기사입력  2023/11/12 [17:09]

 

 

예전 시골에는 대문도 없고, 길과 집 사이에 경계는 몇 그루의 나무가 고작이었다. 울타리 나뭇가지 사이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노크할 대문이 없으니, 헛기침으로 인기척을 대신하였다.

 

대문이 없으니 스스럼없이 들락거릴 수도 있고 작은 것도 서로 나누어 먹는 정겨움이 있었다. 이제 그러한 일들은 추억일 뿐 대문 없는 그런 세상은 다시 오지 않을 것만 같다. 갈수록 담벼락은 높아만 가고 대문은 굳게 닫힌다. 

▲ 산울타리가 시골스럽고 정겹기 짝이 없다.  © 공학섭


요즘 산울타리가 희귀하다. 어쩌다 나무가 심어진 울타리를 만나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그런데 산울타리가 있는 곳은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니라, 밭을 에워싸고 있는 것뿐이다. 언젠가 그곳마저 사람이 사는 집이 되면 벽돌담을 둘러치게 될 것이다.

 

다행스럽게 우리 마을에 운명처럼 남아 있는 생나무 울타리가 몇 개 남아 있다. 사람이 사는 집에 나무 울타리가 남아 있다니 반갑기 그지없다. 고맙게도 여름엔 마삭줄, 가을엔 쥐똥 열매가 탐스럽게 달려 있어 운치를 더해준다. 

▲ 돈나무 울타리가 골목을 아름답게 꾸며준다.  © 공학섭


그나마 언제 잘려 나갈지 미래에 대한 보장이 없다. 밤사이에라도 주인이 변심하여 나무를 잘라내면 그만이다. 대신 그곳에 높은 담장을 쌓아도 할 말이 없다. 혹시 모르는 일이니, 사진에 담아두는 수밖에.

 

이제 다른 동네를 가면 나무를 심어 울타리를 삼는 집이 있으면 사진에 담아 두어야겠다. 그리고 시골에 새 집을 짓는 분들에게 담 없는 집, 정원수를 겸하여 산 나무로 경계를 삼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 산울타리에 주렁주렁 맺힌 쥐똥나무 열매다.   © 공학섭


내 집 울타리에 있는 생나무는 내 집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흡수해 내고, 그 집안사람들이 마실 산소를 만들어 준다. 쾌적한 지구를 만드는 일에 한몫을 해낸다. 나무의 수종에 따라서 꽃도 볼 수 있고, 꽃과 나비와 새들까지 불러들일 수도 있다.

 

다만, 생나무 울타리는 방범 역할은 해낼 수 없다. 어쩌면 역설적으로 우리 집은 가져갈 것이 없다는 표시가 되어 더 안전할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경험하는 바로는 담을 높게 한다고 안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 공학섭


미국 여행 때 고급 주택가에서 며칠 묵었는데 울타리도 없고 담도 없는 집이 대부분이었다. 현관문 하나만 잠가두면 그만이다. 대신 집 앞에 나무와 꽃을 심어 예쁜 정원을 가꾸어 놓았다. 어쩌면 집 앞에 심어둔 나무와 꽃이 기웃거리는 도둑의 마음을 순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사람의 안전보장은 대문이나 높은 담장에 있지 않다. 이 세상에는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 주는 것은 없다. 우리의 안전은 오로지 하나님께 피하는 데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요새이시며, 피할 바위가 되신다. 그분은 우리의 가장 안전한 울타리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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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11/12 [17:09]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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