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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규 목사 설교문] 신랑이 온다!
김흥규 목사(인천내리교회 담임목사)
 
김흥규   기사입력  2023/11/09 [09:25]

성경: 마 25:1-13>

 

 

▲ 인천내리교회 김흥규 목사     ©뉴스파워

 

기다림의 미학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학교에 들어가는 것도 금방 되지 않는다. 일정한 연령이 찰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식당에 가서 음식을 주문할 때도 곧바로 나오지 않는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 현대인들은 유독 잘 기다리지 못한다. “우물에서 숭늉 찾는다는 속담처럼 모든 것을 일사천리로 신속하게 해내고 싶어 한다. 속도와 편리에 유난히 집착하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인터넷과 핸드폰의 발명은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놀라운 속도와 편리를 가져왔다. 어떤 일이든지 몇 초 안에 뚝딱 해치울 수 있는 인스탄트 시대가 도래했다. 기다리는 일이 가장 어렵게 되었다.

 

그 옛날 먼 곳에 떨어진 사람에게 안부를 물을 때 손편지를 썼다. 손때 묻은 편지를 우체국에 가서 부치면 며칠이 지난 뒤 집배원을 통해 당사자에게 배달된다. 해외에 항공기나 선박 편으로 보낸 편지는 시간이 훨씬 더 많이 걸린다. 그런데 지금은 이메일이나 문자 메시지를 통해 불과 몇 초면 지구촌 어디에나 소식을 전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편지를 직접 받는 설렘도 기쁨도 사라지고 말았다.

 

과거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 다방이나 카페에 죽치고 앉아서 한두 시간은 기본이고 온종일 죽치고 앉아서 기다린 적도 허다하다. 기다리다 지쳐 아예 바람을 맞는 일도 있었다. 요즈음 젊은 세대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 고개를 갸우뚱한다. 왜 바보같이 기다리느냐고 반문한다. “못 간다고 메시지 한 통만 보내면 끝날 일을 왜 바람을 맞히고 그러냐고 빈정댄다. 이런 이야기들은 다 디지털 시대의 비극이요, “아날로그 시대에 대한 향수이기도 한다.

 

유대인의 혼인 풍속

신앙생활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성숙한 신앙인미숙한 신앙인의 차이는 좋은 믿음을 간직한 채 잘 참고 기다리는 데 있다. 기도했던 것이 곧바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오랫동안 참고 기다려야지만 응답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수님의 재림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다. 구름을 타고 곧 오신다던 예수님은 이천년이 지난 오늘도 오시지 않았다. 이성과 과학이 판을 치는 시대에 재림과 종말은 영 흥미 없는 주제가 되었다.

 

초대교회도 그랬다. 예수님의 재림이 지연되자 눈에 띄게 영적 긴장이 풀렸다. 생활 윤리도 급격히 해이(解弛)해졌다. 오늘 봉독한 열 처녀의 비유는 현격(懸隔)하게 지연되고 있는 예수님의 재림과 세상의 종말을 기다리는 초대교인들을 독려하는 한편, 영적인 방심을 경고하기 위한 비유다.

열 처녀 비유는 유대인의 결혼 풍습을 배경으로 한다. 고대 유대인들의 결혼 예식은 삼 단계로 이루어졌다. 첫 번째 단계는 결혼을 약속하는”(promise of marriage) 단계다. 양가의 부모님끼리 자녀들을 결혼시키기로 약조하는 단계다. 신랑 아버지가 신부 아버지에게 돈을 지불함으로써 약혼 계약은 성사된다. 두 번째 단계는 정혼”(betrothal)이다. 약혼한 남녀가 서약과 예물을 주고받음으로써 정혼이 이루어지는데, 동거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결혼의 법적 구속력이 발생한다. 그러기에 이혼이라는 법적 절차를 밟지 않고서는 정혼한 부부가 갈라설 수 없다(1:19). 정혼 상태에서 약혼자가 죽을 경우, 약혼녀는 과부가 된다. 세 번째 단계가 결혼 잔치”(wedding feast)인데, 대개 정혼한 지 1년 정도 지난 뒤에 혼인 잔치가 열림으로써 결혼이 완성된다. 이때 신부는 대개 12-13, 신랑은 18세가량 되었다.

 

잔치는 여러 날에 걸쳐서 진행되는데, 잔치가 끝나야지만 비로소 신랑과 신부는 동거에 들어갈 수 있다. 결혼식은 대개 신랑 집에서 열리는데(22:1-14; 14:16-24), 식이 끝난 뒤 7일가량 연달아 성대한 축하연이 펼쳐진다. 혼인 잔치는 신랑이 신붓집에 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비유의 배경은 신랑이 신부를 혼인 잔치에 데려가기 위해 신붓집으로 오는 과정이다. 이때 결혼하지 않은 10명의 처녀가 들러리”(bridemaid) 역할을 한다.

 

피로연은 대개 저녁 무렵에 열리기에 10 처녀는 횃불을 들고 신랑 맞을 준비를 한다. 신랑이 신붓집에 오면 신부는 신랑과 함께 횃불을 든 10 처녀를 따라 신랑 집으로 가서 혼인 예식을 치르고 연회의 주인공으로 참석한다. 어떤 사람은 신부의 부모 집에서 결혼 잔치가 열릴 예정이기에 신랑이 처가댁을 향하는 것으로 해석하지만, 본문의 상황에 맞지 않는다. 잔치에 들어올 수 있는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을 통제하는 잔치의 주인은 신부의 부모가 아니라 신랑이기 때문이다(10-12).

 

미련한 5 처녀” VS. “슬기로운 5 처녀

유대식 혼인 풍속을 배경으로 해서 비유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그런데,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25:1)

 

등불은 랜턴이라기보다 나무 막대기에 헝겊을 감아 올리브기름을 먹인 횃불로 보아야 한다. “실내용 등이 아니라 야외용 횃불이다. 신랑이 신붓집에 와서 신부를 데리고 혼인 잔치가 벌어질 신랑 집으로 가야 한다면, 가로등이 없던 시절에 횃불을 든 처녀들에게는 상당량의 기름이 필요했을 것이다. 횃불로 오랫동안 밤길을 밝히는 일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유는 갑자기 다짜고짜 5 처녀는 어리석고, 나머지 5 처녀는 슬기롭다고 말한다. 10 처녀가 반반으로 갈라진 것이다. 도대체 어리석은 그룹슬기로운 그룹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비유의 핵심을 파악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물음이다.

 

그 가운데서 다섯은 어리석고(foolish), 다섯은 슬기로웠다(wise).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불은 가졌으나, 기름은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자기들의 등불과 함께 통에 기름도 마련하였다.”(2-4)

어리석은 5 처녀

슬기로운 5 처녀

등불 (O), 기름 (X)

등불 (O) + 기름 (O)

 

슬기로운 처녀들은 ”(lamp)기름”(oil)을 다 갖추었고, 미련한 처녀들은 은 가졌지만 기름을 갖추지 못했다. 이런 구분은 이야기가 전개되는 내내 키포인트의 구실을 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왜 똑같이 신랑을 기다리는 10명의 들러리 사이에 이런 차이가 발생했는가라는 질문이다.

 

신랑이 늦어지니,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그런데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다. ‘보아라, 신랑이다. 나와서 맞이하여라.’ 그 때에 그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서, 제 등불을 손질하였다.”(5-7)

 

10 처녀가 슬기로운 진영과 미련한 진영으로 갈라지게 된 이유는 신랑의 더디 옴때문이다. 신랑은 왜 늦게 도착했을까? 알 수 없다. 신랑 측에서 중대한 사유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신랑의 도착이 예수님의 재림을 상징한다면, 왜 재림이 지연되는가는 우리 쪽에서 알 수 없다. 신랑 되신 예수님만이 속사정을 아실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재림이 우리의 기대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현실이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기에”(벧후 3:8), 우리의 시간이나 계획표에 따라서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

 

기름이 모자라 횃불이 꺼져가니

기다렸던 신랑이 도착하지 않게 되자, 10 처녀 모두 꼬박꼬박 졸다가 잠이 든다. 피곤하고 졸리면 잠이 쏟아지기 마련이니 이것을 탓할 바는 못 된다. 어떤 사람은 비유의 결론인 깨어 있으라”(13)는 말씀을 생각해서 졸며 자는 행위에 주목하지만, 잠 그 자체는 비유의 핵심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잠자지 않고 기도만 하고 성경만 읽고 전도만 하기를 원하시지 않는다.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어야 한다.

 

성경적으로 말한다면, 저녁에 쉬고 아침에 일하는 것이 순서다(1:19).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127:2). “노동안식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잠이 올 때는 잠을 자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잠자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잠이 든 사이에도 신랑 맞을 준비를 철저히 갖추는 평소의 태세(態勢)”가 중요하다. 10처녀가 피곤해서 잠자는 행위는 탓할 바가 못 되기에, 비유는 10 처녀 모두가 잠든 것을 탓하지 않고 등은 가지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5 처녀의 게으름을 책망할 뿐이다.

 

신랑의 도착이 늦어져도 긴장을 풀지 않고 평소에 준비를 잘한 사람은 갑자기 신랑이 들이닥쳐도 걱정이 없다. 준비한 그대로 움직이면 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평소에 준비가 잘 된 사람은 신랑이 언제 어떻게 오더라도 맞을 대비가 잘 되어있기에 더 평안히 숙면을 취할 수 있다.

 

10 처녀 모두가 잠에 곯아떨어졌을 때 갑자기 신랑이 들이닥친다. 도둑이 한밤중에 급습하듯이(24:43), 신랑의 도착도 돌발적으로 일어난다. 10 처녀가 잠든 사이에도 횃불은 계속 타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기름도 계속 연소하고 있다. 신랑이 온다는 외침을 들은 10 처녀는 모두 깨어나 급히 신랑 맞을 채비를 한다. 각기 자기의 횃불이 잘 타고 있는지를 살피고, 무엇보다도 예비 기름이 충분한지를 조사한다. 어리석은 5 처녀가 곤란한 처지에 빠진다.

 

미련한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말하기를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의 기름을 좀 나누어 다오하였다.”(8)

 

신랑이 갑자기 들이닥치자 10 처녀 모두는 깜짝 놀라서 일어난다. 허겁지겁 부터 먼저 챙긴다. 문제는 신랑이 더디오니까 긴장을 풀고 해이해진 처녀들이다. 신랑이 오지 않아도 횃불은 계속 타고 있었기에 어느새 기름이 동이 났다. 평소에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은 5 처녀는 엑스트라로 기름을 비축해 두었기에 괜찮지만, 늦게 온다는 핑계로 대비에 소홀한 5 처녀는 낭패다. 기름이 조금 남아서 간신히 불을 밝히기는 했지만, 금방 꺼져가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기름을 준비한 처녀들에게 기름을 꾸어 달라고 부탁하지만, 일언지하에 거절을 당한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이 대답을 하였다. ‘그렇게 하면, 우리에게나 너희에게나 다 모자랄 터이니, 안 된다. 차라리 기름 장수들에게 가서, 사서 써라.’”(9)

 

준비성이 좋은 5 처녀는 현실 판단에도 뛰어나다. 기름을 나누어주었다가는 자기들의 횃불도 꺼지게 된다. 그러니 5명이라도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이하는 편이 10명이 등불 없이 신랑을 영접하는 편보다 더 낫다. 횃불을 들지 않고 신랑을 영접하는 것은 결혼식 자체를 망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릴 때의 준비성은 각자가 스스로 책임질 영역이지, 다른 사람의 준비에 기댈 일이 아니다. 이렇게 해서 부랴부랴 준비성 없는 5 처녀가 기름집에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신붓집에 당도한다.

 

미련한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10)

 

미련하고 게으른 5 처녀가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고, 준비된 5처녀만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굳게 닫혔다. 아무리 문을 열어달라고 애걸복걸(哀乞伏乞)해도 신랑의 대답은 차갑기만 하다.

 

그 뒤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님,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하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신랑이 대답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하였다.”(11-12)

 

준비는 문이 닫히기 전까지만 가능하다. 문이 닫힌 다음에 준비해보았자 소용없다. 재림 직전까지 우리 각자가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지, 재림이 이루어진 다음에 허겁지겁 준비해보았자 때는 이미 늦게 될 것이다. 문이 굳게 닫히기 때문이다.

 

지연된 재림을 기다리는 자세

예수께서 비유를 통해 들려주시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일단 알레고리적 해석”(諷諭的 靈解)은 불가피해 보인다.

 

신랑 = 예수님, 혼인 잔치 = 재림 후의 천국 잔치, 연회 문이 닫힘 = 최후 심판 때 구원받을 사람구원받지 못할 사람의 분리, 신랑의 더디 옴 = 재림의 지연, 갑자기 들이닥침 = 재림의 돌발성, 슬기로운 5 처녀 = 평소에 재림 맞을 준비가 잘 된 신자들,

어리석은 5 처녀 = 재림이 지연되자 해이해져 준비에 소홀한 신자들

 

비유의 핵심을 파악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10명의 들러리 처녀를 지혜로운 그룹어리석은 그룹으로 갈라놓은 기름이 각각 무엇을 상징하느냐에 있다. (단순히 부지런함게으름이 아닌, “슬기미련함의 문제다.) 10 처녀는 재림을 기다리는 신자들이다. 구름을 타고 속히 오시리라고 약속하신 주님이 금방 오시지 않는다(13:26). 재림과 종말이 지연되고 있었을 때 사람들은 당황했다. 세상은 너무나 멀쩡하게 잘도 돌아간다. 영적 긴장이 풀어지고, 윤리 도덕도 해이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돌발적으로 발생할 재림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고자 마태가 예수님의 원()비유를 채록해서 편집한 것이 열 처녀의 비유.

 

도둑이 예고 없이 찾아오듯이 재림 역시 순식간에 일어난다면(13:32-33; 1:7), 평소에 준비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말처럼, 평소에 깨어서 준비해야 한다. 낚시질할 때 고기가 입질을 안 한다고 졸면 안 된다. 언제 어떻게 입질할지 모르니 꾸준히 준비하며 기다려야 한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동료의 도움을 구할 겨를이 없다. 챙겨줄 여유도 없다. 각자가 책임져야 할 뿐, 누구에게 의지할 수 없다. 평소에 준비된 사람만이 살아남는다!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름의 관계다. “”(형식)이 우리의 믿음 생활 전반을 의미한다면, “기름”(내용)은 기도와 성령, 각종 봉사와 선행 등등을 의미할 것이다. 슬기로운 진영과 어리석은 진영 두 그룹은 모두 을 가졌다. 양쪽 다 교회에 다니는 신자들이다. 그런데 한 쪽은 등잔 안의 기름뿐만 아니라 여분의 기름을 비축했지만, 다른 쪽은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다. “등은 있으나 기름이 모자란 사람은 신앙생활이라는 형식은 갖추었지만, 불붙는 기도와 말씀과 성령의 능력, 선행의 실천 등등은 모자란 사람이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한 것이다(딤후 3:5). “기름 없는 등은 장식품에 불과하다. 등은 기름이 있을 때만 자신을 불살라 어둠을 밝히 비출 수 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5:16)

 

미련한 5처녀는 기름이 부족해서 어둠을 밝힐 수 없었다. 신랑이 베푼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없었다. 우리도 평소에 선행으로 믿음을 증거하지 않으면, 세상의 빛이 될 수 없다. 재림의 지연은 선을 실천할 좋은 기회다. 이 기회를 놓치거나 낭비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시시각각 신랑이 오고 있다!

예수 재림의 특징은 신랑 쪽에서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방향성에 있다. 10 처녀의 비유가 보여주듯이, 신랑이 다가오는 것이지 10 처녀가 다가가는 것이 아니다. 단연 신랑의 시간이 중요하다! 주도권은 신랑에게 있다. 들러리인 10 처녀에게는 신랑이 언젠가 오고야 말 것이라는 믿음으로 꾸준히 준비하고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할 뿐이다.

 

재림과 종말은 우리 쪽에서 그 목표를 향해 돌진해 가는 것이 아니다. 역사의 알파와 오메가이신 예수 그리스도 쪽에서 우리 쪽으로 시시각각 거리를 좁히며 다가오는 사건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상이나 기대, 시간 계산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는다. 철저히 신랑의 시간표에 따라 예측불허로 진행될 것이기에 우리에게는 오로지 준비하며 기다리는 덕목이 요구된다.

 

재림과 종말은 지금 이 순간도 시시각각 촌각을 다투며 진행되고 있다. 최종 결말이 나지 않은 것뿐이지, 예수님 쪽에서 우리를 향해 돌진해 오고 계신다. 언제 어떻게 올지 우리가 모를 뿐이다. 예수께서 소리 없이 우리 쪽으로 다가오신다면, 우리는 미련한 5 처녀처럼 팔짱을 끼고 수수방관만 해서 안 된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무엇인가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일을 하면서 기다려야 한다.

 

헬무트 틸리케(Helmut Thielicke, 19081986) 목사님의 책에 나오는 예화다. 목사님이 배를 타고 유럽에서 미국으로 여행하게 되었다. 갑판 위에는 주인 없는 큰 목양견 한 마리가 있었다. 주인이 비행기에 함께 태울 수 없어서 선박 회사에 맡긴 셰퍼드였다. 잘생기고 값비싼 개였지만 여행 내내 외로워 보였다. 사람들이 다가가 말을 건네고 목덜미를 쓰다듬어 주어도 처량해 보였다. 언젠가 주인을 만나리라는 기대를 품고 있었겠지만, 주인과 함께하지 않은 개는 한없이 외로워 보였다. 미국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 갑판 위에는 또 다른 개가 있었다. 발육이 덜 되어 왜소할 뿐 아니라 가볍게 다리를 떨었다. 그러나 개 옆에는 주인 소녀가 함께 있었다. 이 개도 배 위에서 여행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마냥 행복해 보였다. 걱정거리가 생길 때마다 그 어린 주인에게 신뢰를 가득 담은 눈길을 보냈다.

 

두 마리 개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똑같이 기다렸지만, 옆에 주인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있다. 주인과 함께 기다리는 개에게는 안정감과 행복이 있다. 어려움이 생겨도 걱정하지 않는다. 주인이 해결해 줄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조건에서 기다린다고 할지라도 주인이 동행하지 않은 개는 불안하다. 조금만 어려움이 닥쳐와도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주인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 없이 기다리는 인생은 불행하다. 불안하다. 여유가 없다. 조금만 어려움이 닥쳐와도 사정없이 흔들린다. 하나님을 인생의 참 주인으로 모시는 기다림은 지루하지도 두렵지도 않다.

 

기름은 소모성이다. 한때 찬란히 타올라 사방의 어둠을 밝히 비추었다고 할지라도 언젠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기름이 떨어지면 제아무리 좋은 등이라도 이내 꺼져버리고 만다. 그러기에 기름을 끊임없이 보급받아야 한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끝없이 영적인 기름을 재급유해서 재충전해야 한다. 주유소에서 주기적으로 기름을 채우듯이 기도와 성령과 봉사와 선행의 기름을 자주 채워야 한다. 무엇보다도 성령의 기름이 떨어지면, 아무 능력도 발휘할 수 없다. 한 줌의 타버린 재처럼 되고 만다. 지금이 기름을 준비해야 할 적시(適時). 신랑이 오고 있다! 혼인 잔치의 기쁨에 참여하려면 미리 기름을 준비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기름을 빌릴 수 없다. 문이 닫힌 뒤에는 소용이 없다. 아멘.

 

 

김흥규(金興圭목사는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 텍사스주 남감리교대학교(Southern Methodist University)에서 조직신학으로 박사학위(Ph. D.)를 취득했다또한 독일 그라이프스발트대학교(Universität Greifswald)에서 목회자안식학교(IEEG, Summer Sabbatical)를 수료했다.

 

저서로는 사추덕과 신학적 덕(2023), 산상수훈 길라잡이 ― 예수 따라 살기(2021), 약한 자 VS. 강한 자 ― 로마서 강해 2(2019),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의 ― 로마서 강해 1(2017), 왕따가 왕자가 되는 세상(2016), 개혁 지도자 느헤미야(2014), 김흥규 목사와 함께 넘는 예수 비유 열 고개(2011), 가라모세소명을 향한 제3의 인생으로(2009), 그 무엇도 우리를(2009), 예수의 비유 다시 보기(2009), 귀로 듣다가 눈으로 뵈오 ― 욥기서 강해(2007) 등이 있고옮긴 책으로는 신학 탐구 방법론(2020), 경계선 위에서(2017), 일상목회와 신학적 성찰(2012), 기독교인은 전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1993) 등이 있다.

 

 

또한 신학 연구서로는 Prolegomena to a Christian Theology of Religions』 (Lanham, Maryland: University Press of America, Inc. 2000), 신학연구 어떻게 할 것인가( 201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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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11/09 [09:25]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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