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를 본 사람은 많아도 잠자리의 움직임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사람은 드물다. 나도 그중에 한 사람이다. 잠자리에 대한 관심은 어린 시절 살금살금 다가가서 붙잡으려했던 일이 전부다. 몇 차례 맨손으로 잡기에 성공했던 추억이 있다.
어른이 된 지금은 붙잡기보다는 잠자리의 생김새, 나는 방법, 나비의 생태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었다. 교회 정원에 나가면 다양한 식물들과 곤충들이 눈에 띈다. 이번엔 잠자리가 나의 시선 속으로 들어온다.
▲ 가을이면 흔히 볼 수 있는 고추잠자리 © 공학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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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주변을 산책하다 보면 많은 이야깃거리를 얻는다. 자연과 대화를 하고, 자연 속에서 나를 돌아본다. 자연은 내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잠자리 이야기도 역시 자연에서 발견한 작은 파편 가운데 하나다. 평생 정원을 가꾸며 살았던 헤르만 헤세나 산책을 즐긴 괴테가 자연을 즐긴 이유가 무엇인지 조금 알 듯하다.
잠자리에 대해서 할 말이 참 많다. 그중 눈과 날개에 대해서만 말해볼까 한다. 잠자리의 눈은 28,000개의 홑눈이 있어서 쉽게 속여 먹을 수가 없다. 앉아서 360도 회전할 수 있는 놀라운 기적의 눈이다. 잠자리의 눈은 시력의 왕자 매의 눈을 넘어선다.
잠자리는 사방이 적들로 에워싸여 있다. 대항할 만한 신체 구조도 아니다. 허약하기 짝이 없는 몸이다. 공중을 배회하는 새들에게 언제 잡힐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세상이다. 그래서 창조주께서 잠자리에게 최고의 눈을 주어 피할 도구를 주신 것이다.
하지만 눈만 밝은 것으로는 부족하다. 포식자가 나타나면 도망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잠자리는 특별하게 두 쌍의 날개를 달려 있고, 두 쌍의 날개로 시간차를 두고 교대로 난다. 또 날갯짓을 수천만 번 해야 하니 가슴 근육이 필요하다. 잠자리는 가슴이 발달해 있다.
잠자리의 눈은 그렇고 사람의 눈은 어떤가? 깨알 글씨도 보일 정도로 좋은 시력을 가졌는가? 그렇다고 충분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보지 못하면 영혼이 어두움 속에서 헤맬 수밖에 없다. 각기 영적 눈이 열리길 기대해 본다.
끝으로 나의 눈을 만드시고, 잠자리의 눈을 만드신 하나님은 어떤 눈을 가졌을까? 하나님은 불꽃 같은 눈을 가지셨다. 하나님의 눈을 속일 수 없다. 그분은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보신다. 오늘도 우리는 그분의 눈앞에서 살고 있다. 코람 데오(Coram 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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