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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김준곤 목사 그리고 CCC-김상복 목사] 한국 교회의 영원한 비저너리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원로목사,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명예총장
 
김상복   기사입력  2023/10/21 [17:05]

한국CCC의 역사는 고 김준곤 목사(1925.3.28-2009.9.29)를 빼놓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1 958년 한국CCC 설립하고 대학생선교를 못자리판으로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를 위해 평생을 헌신했던 김준곤 목사의 팔순을 기념해 지난 2005년에 제자, 지인, 국내외 동역자 110여 명으로부터 글을 받아 [나와 김준곤 목사 그리고 CCC] 라는 기념문집을 만들었다. 기념문집에 원고를 주셨던 분들 중 여러 분들이 이 세상을 떠났다. 역사적인 글들을 뉴스파워에 다시 올린다. (편집자 주)

 

▲ 설교를 하고 있는 세계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 김상복 목사     ©뉴스파워

“김 목사님의 깨끗한 영성과 강력한 비전에 감동받았습니다.”

 

대학생 시절 저는 서울시청 앞에 있는 교회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어느 주일날 교회 담임목사님과 친분이 있으신 젊은 목사님이 미국에서 공부를 하시고 막 귀국하셨다며 저희 교회에 설교자로 초청을 받아 오셨는데 그분이 바로 김준곤 목사님이었습니다. CCC라는 대학생사역을 하신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그때는 CCC가 무엇인지 아무도 모를 때였습니다. 그 젊은 목사님의 설교 내용은 기억할 수 없으나 그분의 주님을 향한 강한 열정은 잊혀 지지 않고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얼마 후 저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제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자 바로 미국 교회의 목사로 부임하여 목회를 시작했고 또 대학원 공부도 계속 했습니다. 시간의 여유가 없어 공부와 교회와 가족 외에는 다른 것에 관심을 둘 수가 없었습니다. 미국에서 바쁜 여러 해가 지나자 삶을 정돈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역을 내려놓고 워싱턴에 있는 선학대학의 교수로 초청을 받고 유학을 갔습니다. 그때 본래의 목적대로 교수 생활 하나만을 하기로 하고 인디아나에서 워싱턴으로 이사를 간 것입니다.

 

그곳에 도착하여 얼마 되지 않아 한국의 CCC 총재 김준곤 목사님께서 워싱턴에 있는 한인 교회들을 위해 전도 훈련을 하러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20년 전 서울에서 한번 설교를 들은 적이 있는 김준곤 목사님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옛날을 회상하며 집회 장소인 한인 교회에 찾아갔습니다. 가서 보니 김 목사님은 이미 한국에서 유명한 목사님이 되어 있었습니다. 워싱턴 지역의 예수 믿는 많은 교포들이 그 교회의 자리를꽉 채워 입추의 여지가 없는 집회였습니다.

 

저는 김 목사님의 설교를 20년 만에 미국 땅에서 두 번째 듣게 되었습니다. 그날 저는 김준곤 목사님의 설 교를 들으면서 놀랐습니다. 20년 전의 김 목사님과 그날의 김 목사님은 너무도 다른 분이었습니다. 그분의 메시지는 푹 익은 과일처럼 완숙되어 있었고 목사님은 모든 면에서 제 마음에 흡족한 은혜를 느낄 수 있게 하는 비전 있는 영적인 지도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있었습니다.

 

저는 그분의 깨끗한 영성과 강력한 비전과 메시지의 복음성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 자신이 이미 목사가 되었고 신학교수가 되어 있었던 저는 성경적으로나 신학적으로나 영적으로 홈 잡을 데 없는 완숙한 메시지를 들으면서 저는 환희를 느끼며 선선한 충격을 받았고 오랜만에 느끼는 환희를 느끼고 영적인 통쾌함을 맛보았습니다. 한국을 떠난 후 한국 목사님을 거의 대해 보지 못했던 저에게 김 목사님의 이미지는 너무도 아름다웠고 희망적이었습니다. 미국에 온 후 많은 세월 동안 한국과 한국 교회와 단절되어 살아왔던 저에게는 큰 감격의 시간이었습니다.

 

▲ 김상복 목사(우)는 볼티모어 벧엘장로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할 때 초빙강사로 미주KCCC 운동을 협력했다.미주KCCC 초대 대표 강용원 간사와 함께 한 김상복 목사  © 강용원



워싱턴에 왔어도 역시 미국 신학교이기 때문에 몇 명의 한국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한국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별로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인디애나에 살았을 때보다는 접촉이 잦아졌습니다. 3년이란 시간이 지나자 벌티모어에 사는 한인 교인들이 교회를 개척하자며 저에게 요청을 해왔습니다.

 

전임교수로 있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거부를 하다가 결국 일 년 후에는 담임목사를 찾는다는 조건하에 개척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교회는 급성장했고 3년이 지나자 부흥회를 한번 갖자는 의견이 나와 제일 먼저 김준곤 목사님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김 목사님을 초청했고 부흥회를 교회에서 가졌습니다. 김 목사님은 우리 모두에게 영적인 큰 도전을 주었고 은혜가 충만했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서정시를 읊어 가시듯 우리를 천상으로 끌어올리셨습니다. 목사님의 모습과 메시지는 복음으로 가득 차 있었고 성경적으로 확실해서 신학교수인 저의 마음에 꼭 들었습니다.

 

때때로 한국에서 온 부흥사들의 메시지가 성경적으로 위험하거나 너무 주관적인 것을 보면서 걱정했는데 김준곤 목사님의 메시지는 확실했고 강한 신뢰감을 주어 커다란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부흥회 이후 저는 김 목사님 때문에 CCC에 대한 좋은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국CCC는 미국에 있는 한국 학생들을 모아 캠퍼스에 CCC를 조직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제가 젊은 신학교수요 목회자이다 보니 한인 학생들과 한국에서 온 유학생들을 위한 젊은이 집회를 인도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영어로 설교를 할 수 있는 한인 목사님들이 소수여서 미국에서 열리는 학생들의 집회 대부분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미국의 중·고·대학생들과 청년들이 참석하는 집회에서 저는 많은 젊은이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중에서 CCC를 조직할 때나 CCC 수련회의 강사로 자주 초청을 받으면서 저는 CCC를 접할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저 자신은 CCC 출신이 아니지만 건전한 CCC 운동에 호감을 가지고 가능한 한 도우려고 노력했습니다.

 

어쩌다 CCC 수련회에 강사로 간 저는 그곳에서 김준곤 목사님을 대할 기회가 있었고 만날 때마다 저는 그분의 모습 속에 담겨 있는 깨끗한 신앙의 열정과 선교적 비전, 예수 중심의 단순한 신앙이 저의 신앙과 너무도 맞아 희열을 느끼곤 했습니다. 저에게 신뢰와 기쁨을 주는 목사님들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김준곤 목사님은 제가 좋아하는 목사님 가운데 한분으로 뚜렷하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학생들의 3 만 개의 손을 보는 순간 숨이 막혔습니다.”

 

1990년 제가 미국에 간지 거의 30년 만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횃불선교센터 실행위원장, 할렐루야교회 담임목사, 이 세 사역에 부름을 받고 20대에 미국에 갔다가 오십을 막 넘기고 돌아왔습니다. 귀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김준곤 목사님으로부터 CCC 여름수련회에 강사로 와 초청을 받았습니다.

 

수련회 연단에서 물결처럼 출렁이는 15,000명 대학생들의 3만개의 손을 보는 순간, 저는 감격하여 숨이 막혔습니다. 나라의 희망이 보였습니다. 저들이 예수를 위해, 복음을 위해, 민족과 세계를 위해 헌신할 때 나라와 세계가 변할 것을 생각하니 환한 미래가 보였습니다. 이들은 한국에서 그토록 들어가기 어려운 대학에 들어간 이 나라의 알맹이들이었습니다. 단 위에 올라가 앉은 아내와 저는 말이 필요 없었습니다. 제가 느끼고 있는 것을 아내도 느끼고 있었습니다. 너무 가슴이 벅차 우리 둘은 뺨에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만난 CCC 학생들이나 간사들이나 CCC를 거쳐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교회와 사회 속에서 모두가 긍정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CCC 운동의 중요성을 점점 더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또 그곳에 있던 15,000명의 CCC 회원들이 바로 다음 세대의 지도자들이 될 터이니 이 나라는 안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날은 귀국한 지 며칠 되지 않은 저에게 가장 감격스러운 날이었습니다. 한국에 희망이 있다는 생각을 심어 준 날이었습니다. 김준곤 목사님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심이 끝없이 솟아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동안 김준곤 목사님을 어떻게 서용하셨는지를 보면서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 이후 저는 CCC의 요청이라면 어떤 일에나 협력할 마음이 생겼고 제가 협력할 수 있는 일에는 언제나 서슴지 않고 도우려 노력했습니다. 저는 그 이후 제가 섬기는 할렐루야교회를 위해서도 김준곤 목사님을 종종 모셨습니다. 그분의 아름다운 영성을 성도들에게 나누고 싶었습니다. 피택 장로 구두시험이나 창립예배, 부흥사경회, 새 성전 건축 후 입당 축하 집회 등 김준곤 목사님을 가까이 하는 것을 저는 늘 기쁨으로 여겼습니다.

 

김준곤 목사의 통쾌한 조직력과 추진력

▲ 1995년 5월 20일 서울올림픽 잠실주경기장에서 열린 SM2000대회     ©뉴스파워

 

귀국한 지 5년 후인 1995년 처음으로 김준곤 목사님과 가까이 동역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AD 2000 and Beyond Movement' 가 주최한 세계기독교올림픽, GCOWE'95가 한국에서 개최되었던 것입니다. 전 세계 185개 나라에서 4천여 명의 기독교 대표들이 한국에 와서 2천년 말까지 10/40 창문지역 안에 있는 세계의 미전도 종족을 완전히 복음화하자는 세계복음화 대회였습니다.

 

저는 이 대회의 공동회장이었고 김준곤 목사님은 준비위원장이었습니다. 토마스 왕 목사, 루이스 부시 목사와 함께 ‘AD 2000 and Beyond Movement' 의 국제 이사로 섬기던 저는 대회 계획 단계에서부터 관여해 왔었습니다. CCC 조직이 모든 구체적인 사역들을 맡았고 김준곤 목사님은 준비위원장으로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과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을 확보하는 데 그동안 한국 교회에서 쌓아 오신 관계를 총동원하며 이 대회의 준비를 지휘하셨습니다. 국제적 배경을 가진 저는 대 회장으로서, 국제적 경험이 풍부하신 노봉린 목사님은 대회 총무로서 국내 및 국제적 실무를 맡았습니다.

저는 김 목사님과 함께 오랫동안 이 대회를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그분의 세계적 비전과 사역의 추진력, 자원의 동원력을 보고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다른 곳에서 자주 보지 못했던 탁월한 리더십을 볼 수 있었습니다. 김 목사님은 통쾌할 만큼 뛰어난 조직력과 추진력이 있으셨습니다. GCOWE '95 대회는 성공적이었고 기독교 선교 역사에 있어, 특히 세계 미전도 종족 복음화에 있어서 큰 획을 그었고 그 영향은 오늘까지도 계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나 기독교 지도자들을 만나면 아직도 GCOWE '95 이야기를 합니다. 그 후 이 운동은 GCOWE ' 97로 이어졌고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세계 복음화를 위해 전진했고 2000년 가을 네덜란드에서 모였던 세계전도자대회에서도 목표한 미전도 종족 복음화의 마지막 남은 종족 입양을 마치는 결단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세계 복음화 사역에 김준곤 목사님은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셨습니다. 저는 지금도 김 목사님과 함께 처음으로 국제적인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것을 기뻐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주님의 나라를 위한 거목으로 하나님께 쓰임을 받아 왔습니다.

 

1997년 김준곤 목사님은 독립 교회 연합운동의 필요성을 제시하셨습니다. 한국에 800여 개의 독립 교회가 있는데 이 교회들과 초교파 선교기관들과 초교파 선학 대학과 대학원들을 망라한 연합회를 조직하여 자유로운 복음 사역을 하는 교회와 선교단체와 선학 대학들이 정치를 떠난 순수한 신앙운동으로 한국 교회에 새로운 흐름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CCC가 제일 먼저 회원이 되겠다고 앞장을 서시고 깃발을드셨습니다.

 

그로부터 박조준 목사님이 담임하시던 독립 교회인 갈보리교회와 제가 담임하고 있는 할렐루야교회, 횃불선교센터, 한국성서대학교, 횃불트니리티신학대학교, 아세아연합선학대학교, 기타 수많은 교회와 선교단체들이 한국 독립교회 및 선교단체연합회라는 새로운 운동에 참여했고 김준곤 목사님은 고문, 박조준 목사님은 초대 회장이 되셨습니다.

 

김준곤 목사님은 이 새로운 운동에 적극적이셨습니다. 한국 독립교회 및 선교단체연합회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전국에서 많은 교회, 선교단체, 학교들이 관심을 보였고 참여 의사를 밝혀 왔는데 오늘 현재 600 교회, 기관, 학교의 회원으로 증가했고 싱가포르, 일본, 미국 등지에서도 가입하고 있습니다. 김 목사님은 시대적 안목이 출중하신

 

김준곤 목사님은 20세기 후반 한국 교회에 하나님께서 보내 주산 가장 순수하고 영향력 있는 하나님의 종이요 가장 큰 비전과 영향력을 행사하신 영적 지도자들 가운데 한 분이라고 저는 느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분을 한국 교회에 보내 주신 하나님의 은총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김준곤 목사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환상에 붙들려 계선 하나님의 신실한 종으로서 한국 교회의 영원한 비저너리로 후배들의 가슴속에 오래도록남아계실 것입니다.

 

 

김상복 목사는 서울대와 그레이스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미국에서 조직신학 교수와 목회를 하다가 귀국하여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조직신학 주임교수, 횃불트리니티신학대원대학교 초대와 4대 총장을 지냈으며,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공동회장, 세계 신학교 총학장 회의(PAD) 의장, 아시아신학협의회(ATA) 회장, 세계변혁운동(Transform World Network) 의장, 세계복음주의연맹(WEA)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할렐루야교회 원로목사,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명예총장, 아시아복음주의연맹(AEA) 회장, 세계변혁운동 국제대사, 한국복음주의협의회(KEF) 고문, 주기철목사기념사업회 명예회장, 세계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 한국기독교원로회의 의장 등으로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를 섬기며 활발히 사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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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10/21 [17:05]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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