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쯤엔 마을 앞 논두렁으로 나간다. 누렇게 익은 벼를 보기 위해서다.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걸어서 5분이면 논두렁에 도착할 수 있고 30분 정도 쉬엄쉬엄 걷는 것으로 충분하다.
▲ 순천만습지 곁에 대대뜰이 풍요롭다. © 공학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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볏논이 누구의 소유인지 아는 바 없다. 이토록 넓은 들녘에 내 소유의 땅은 한 뼘도 없다. 비록 내 몫으로 된 벼는 한 포기도 없지만 탐스럽게 익은 벼를 보니 마음이 좋아진다. 쌀 한 톨도 입에 넣은 일이 없는 데도 마음은 이미 배가 불러온다.
농부는 이때를 위해서 봄부터 묵묵히 수고를 해왔다. 삼복더위에 이마의 땀을 훔쳐내면서 거름을 주고 풀을 뽑아주었다. 예전에 비하여 많이 편리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비 오는 날에는 물을 빼내 주고 날마다 물을 적당하게 채워주는 수고를 해야 한다.
▲ 본래를 갯벌이었던 곳을 개간하여 논이 되었다. © 공학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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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많은 농부들은 올해만 농사지으면 그만이라고 말하지만, 내년 봄이 되면 또다시 땅을 파고 씨를 뿌린다. 수확의 기쁨이 지난여름의 수고를 까마득히 잊게 하는 구멍수다. 농부에겐 가을이 있어서 손에 농사를 놓지 못한다.
벼농사는 양식을 얻기 위해서 함이 일차 목적이다. 부차적으로 여름엔 녹색, 가을엔 황금빛으로 물들인 들녘을 감상할 수 있게 한다. 사람은 배만 부르면 그만인 존재가 아니다. 눈도 즐겁고 마음도 배부름이 있어야 한다.
▲ 황금 들녘은 하나님께서 일년에 한 차례씩 꾸며 놓은 자연정원이다. © 공학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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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가을 하늘 아래 펼쳐진 황금 들녘을 바라보면 마음이 평온해질 것이다. 사람의 취향에 따라서는 꽃보다 황금 들판이 더 만족스러울 수 있다. 나 역시 정원이나 갈대밭보다 황금물결 이루는 들판이 더 좋다. 가을 들녘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모자람 없이 누리게 한다.
지자체마다 볼거리를 만들기 위해 많은 비용 들여 꽃을 심는다. 반면 벼는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또 일부러 구경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일 필요도 없다. 언제든지 황금 들녘이 보이는 곳을 지날 때 잠시 멈춰서면 된다. 논두렁에서도 얼마든 가을을 만끽할 수 있다.
▲ 노란색의 들녘은 마치 고흐의 그림을 보는 듯 하다. © 공학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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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신 하나님은 이 땅에 사는 모든 인류가 풍성한 삶을 누리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산과 바다 그리고 하늘과 땅 위에 누릴 거리를 무진장으로 펼쳐 놓으셨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에 펼쳐져 있는 황금빛 들판은 신이 내려준 선물이다. 가을은 아름다움은 누리는 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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