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미션선교회(Central Asia Mission Association. CAMA)>가 11일 오전 충남 세종시의 물댄동산교회(권균한 목사)에서 창립됐다.
▲ 고려인들이 강제 이주되어 정착한 카자흐스탄을 중심으로 중앙아시아지역의 복음화를 위한 선교사와 교회 및 선교단체 등의 선교, 교육, 의료, 사회봉사 등 선교사역을 지원하기 위한 <중앙아시아미션선교회(Central Asia Mission Association. CAMA)>가 11일 오전 충남 세종시의 물댄동산교회(권균한 목사)에서 창립됐다. © 당당뉴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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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들이 강제 이주되어 정착한 카자흐스탄을 중심으로 중앙아시아지역의 복음화를 위한 선교사와 교회 및 선교단체 등의 선교, 교육, 의료, 사회봉사 등 선교사역을 지원하기 위한 <중앙아시아미션선교회(Central Asia Mission Association. CAMA)>가 11일 오전 충남 세종시의 물댄동산교회(권균한 목사)에서 창립됐다. 중앙아시아미션선교회(CAMA) 창립에 35개 교회, 76명의 회원이 참여했다.
선교회는 창립총회를 열어 중앙아시아미션선교회(CAMA) 정관을 통과시키고 창립준비위가 내정한 회장단 등 임원을 추인했다. CAMA 초대 회장에는 남문희 목사가 추대되었고 부회장 송기성, 권균한 목사, 총무 이성민 목사, 서기 김영범 목사, 회계 김광일 목사 등을 선출했다.
중앙아시아미션선교회(CAMA) 조직
명예회장 / 조성근 목사(천성)
회장 / 남문희 목사(논산제일)
부회장 / 송기성 목사(정동제일) 권균한 목사(물댄동산)
서기 / 김영범 목사(성민)
회계 / 김광일 목사(충주남부)
총무 / 이성민 목사(강남성은)
선교부 / 박성영 목사(수원제일)
교육부 / 이선진 목사(안성제일)
홍보부 / 이종만 목사(봉재)
대외협력 / 윤동규 목사(일신)
감사 / 강호근 목사(인천중앙) 황선필 목사(구치)
CAMA 창립은 창립예배와 총회, CAMA협력선교사로 영입된 서○○ 선교사의 선교특강, 애찬과 교제 순으로 진행됐다.
창립감사예배에서 ‘내 낙타에 물을 준 여인’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한 물댄동산교회 권균한 목사는 리브가의 예를 들어 “선교는 보내고 지원하면 사라지고 없어지는 줄 알지만 오히려 내가 받는 축복의 지혜”임을 강조했다. 리브가가 아브라함이 보낸 늙은 종의 낙타를 먹였지만 아브라함의 며느리가 됨으로 결국 자기 낙타에 물을 먹인 꼴이 되었듯이 선교는 베풀고 나누면서도 남는 장사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권 목사는 “우리 모두 중앙아시아미션선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할 뿐 아니라 발전하고 부흥하고 성장하는 간증자의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선교의 동참을 호소했다.
창립총회 열고 선교회 초대회장에 남문희 목사 선출
예배 후 선교회는 조성근 목사를 임시의장으로 하여 회원 41명이 참석한 가운데 총회를 열어 회칙을 통과시키고 임원진을 선출했다.
또 선교회는 선교회가 상정한 7가지 안건, 즉 △1. 우스토베 선교센터 지원 △2. 우스토베 뇌성마비 까짜 성도 옥내 화장실 및 욕실 건축 △3. 우스토베 현지교회 목회자와 한인 선교사 지원 △4. 끼르기즈스탄 까라발타교회 건축 지원 △5. 서○○ 협력선교사 영입 추인 △6. 중앙아시아 엠마우스 미션 프로젝트 추인 △7. 예산안 등의 안건을 모두 만장일치로 처리했다.
이 중에 1호부터 4호의 네 가지 안건은 선교회 창립에 앞장선 조성근 목사, 남문희 목사, 송기성 목사가 사비를 들여 지원하여 이미 실행 중인 안건이었다. 네 번째 안건인 키르기즈스탄의 카라발라타교회 건축은 3인 원로목사가 소속한 교회의 이경란 장로 (정동제일교회), 김용표 장로(천성교회), 배미희 집사(물댄동산교회)가 각 1천만원씩 봉헌하여 건축됐다고 소개됐다.
안건처리 과정에서 송기성 목사(정동제일교회 원로)가 CAMA를 창립하게 된 배경과 취지를 설명했다.
송기성 목사에 따르면, 조성근 목사, 송기성 목사, 남문희 목사 등 3인의 원로 목사가 카자흐스탄 우수토베 지역에서 고려인들을 대상으로 선교하는 박헬렌 선교사를 지원하기 위해 방문했다가 30분 거리에서 사역하고 있던 서○○ 선교사와 만남을 가지면서 그의 사역과 선교열정에 감동을 받고 선교회를 조직해 지원하기로 했다는 것이 요지였다.
서○○ 선교사는 천호제일교회(장이규 목사)에서 ‘창의적 접근지역’에 파송받아 카자흐스탄으로부터 북동쪽으로 300km 떨어진 탈티코르간에서 한글학교와 선교센터운영, 창업지원, 나눔사역, 집수리 사역, 교회건축 등의 사역을 13년째 해오고 있다. (창의적 접근지역- 선교사의 비자발급, 안전문제, 복음에 대한 거부, 교회와 그리스도인에 대한 박해가 있는 지역)
송기성 목사는 서 선교사가 현지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을 통한 복음전도의 장을 만들고자 ‘엠마우스 K푸드 카페’를 만들기 위해 목수 등 본인이 일하여 모은 1천만 원과 월남전 참전용사인 아버지가 원호기금으로 받은 1천만원을 가지고 지난 5월에 50평 규모로 공사를 시작한 사실을 알고 기꺼이 자신의 것을 드려 사역하는 서선교사의 진심에 매료되었음을 밝혔다. 5호 안건 ‘서○○ 협력선교사 영입’은 이런 배경에서 추진 된 것이다.
선교회는 여기에 더해 서 선교사가 추진하고 있는 6호 안건 ‘중앙아시아 엠마우스 미션 프로젝트도 진행하기로 결의했다. 이 프로젝트는 선교센터와 카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대로변 세차장 부지 약 200평을 매입하여 선교센터, K-Food 카페와 연결함으로써 대로로부터의 접근성을 용이하게 하고 K-컬처를 활용한 선교적 공간으로 확장이 이루어지도록 하려는 프로젝트다.
문제는 대지 구입비 10만 달러와 시설비 등을 어떻게 마련하느냐 하는 문제였다. 남문희 회장에 의하면 서 선교사가 이 땅을 구입하기 위해 부친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으려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프로젝트 역시 서선교사가 진심으로 원하고 있음을 알아 선교회가 대지구입비와 시설비 등 1억6천만원을 모금하여 성탄절 전에 지원하기 위해 상정되었다고 내막을 밝혔다.
중앙아시아 선교는 왜 중요한가
창립총회를 마친 CAMA선교회는 서○○ 선교사로부터 중앙아시아의 선교적 중요성과 서선교사가 중앙아시아에서 펼치는 사역에 대해 듣는 시간을 가졌다. 서선교사가 강의한 내용을 그대로 옮겨본다.
중앙아시아는 서쪽으로 카스피해부터 동쪽으로는 중국의 신장 위그르 지역, 북쪽으로는 러시아와 몽골 그리고 남쪽으로는 아프카니스탄에까지 이르는 지역을 말한다. 보편적 의미에서는 옛 소련의 5개 공화국, 즉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을 지칭하며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된 나라들이며 이슬람이 강한 나라들이다. “~스탄(stan)”은 페르시아어로 “~의 땅”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서 선교사는 중앙아시아가 지리적 특성상 이슬람의 동진을 막는 의미가 있고, 복음이 서진을 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라고 강조했다.
고려인들
중앙아시아에는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소련의 극동 블라디보스톡으로부터 강제 이주되었다가 정착한 교려인들이 흩어져 살고 있다. '고려인'은 중앙아시아 교민들이 '조선인(북한)'도 '한국인(남한)'도 아닌 정체성을 나타내기 위해 스스로를 부르는 이름이다. 구한말 일본의 억압을 피해 연해주로 건너간 조선인들이 연해주가 과거 고구려의 땅이었음을 과시하려고 자칭한 것인데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일본인과 외모가 비슷하여 간첩 활동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터무니 없는 이유에서 당시 총 18만 명 정도의 고려인들이 스탈린에 의해 이주행렬에 올랐는데 그중 25,000~30,000 명 정도가 이동 도중 사망했고 도착해서는 영하 40도에 이르는 추위에 많은 사람들이 얼어죽었다고 한다. 우슈토베는 블라디보스톡을 출발한 고려인들이 6500㎞를 달려 1937년 10월 9일 첫 도착한 지역이다.
이곳에 소련이 해체된 이후 선교사들이 들어갔고 미선교사의 미망인인 박헬렌 선교사(80세)가 우슈토베에 와서 그들의 삶에 동참하며 교회와 기념관을 세우고, 가난한 이들에게 도시락과 연탄을 보급해 주며 살고 있다. 자기 삶 전체를 바치는 이 사모를 보며 남문희 목사 등 세 원로 목사가 큰 감동을 받아 선교회를 조직하게 된 것이다.
중앙아시아의 기독교 역사
중앙아시아에는 4세기부터 네스토리우스파가 실크로드를 타고 선교를 시작했다. 네스토리안교는 카톨릭교에서 이단 종파의 하나로 지명되면서 박해를 피해 실크로드를 따라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에 전파되었고 '경교(景敎)'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5세기 말 경에는 네스토리우스교가 중앙아시아 유목민 사회에 깊이 전파되었고 6~7세기 경에는 사마르칸트(우즈베키스탄)에 대주교구가 설치되었다. 7세기 초반에는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에까지 전파될 정도로 활발히 전파되다가 14세기 중반과 후반을 거치면서 지배층들과 무슬림의 박해, 흑사병, 교역의 중단, 전쟁 등의 이유로 1천 년간 중앙아시아를 무대로 활동했던 네스토리우스 기독교는 쇠퇴되었다.
중앙아시아 선교의 장애
기독교가 쇠퇴한 자리에 이슬람이 들어섰다. 10세기~19세기 초까지 중앙아시아에 이슬람화가 진행되었다. 20세기 초에 소비에트 유니온에 편입되어 공산주의의 사상인 무신론주의 교육이 실시되면서 이슬람이 약화되기도 했지만 1991년 소련 연합이 붕괴되면서 부터 각 국가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이슬람에서 찾으려는 노력과 더불어 아랍권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작은 마을에까지 모스크가 들어서는 등 급속도로 이슬람이 확장되고 있다.
소련은 혁명 이후 러시아 제국에서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러시아 정교회의 특권을 박탈하였고 종교는 문화적 관습이라는 범주에서만 허용하였다. 여기에 70여 년간 공산주의 체제하에 있었던 중앙아시아의 사람들은 무신론적 교육을 받아 종교에 대하여 냉랭하다.
여기에 카톨릭, 동방정교회, 개신교 등의 기독교 구분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데다 ‘크리스찬은 러시아 정교회’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어 이슬람에게 전도하면 러시아인들의 종교를 따를 수 없다고 반응하고 정교회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자신들은 이미 크리스찬이라고 반응하는 현상이 있어 복음 전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서선교사는 또 △미성년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과 공개적인 전도 활동 금지 △교회 등록에 대한 엄격한 법적 절차 △허가된 장소 외에서 다수의 인원이 모인 종교활동 금지 등을 정한 종교법도 중앙아시아에서의 개신교 확장을 막는 요소라고 지목했다.
그럼에도 서선교사는 중앙아시아 개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교회 개척, 한국어 교육, NGO사역, 비즈니스, 스포츠 등 개신교 선교사들의 선교 활동을 통해서 미약하지만 계속해서 복음이 확장되어 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당당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