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 7일 오전 7시 은혜광성교회에서 열린 한국복음주의협의회 9월 월례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에서 신평식 목사(한국교회총연합 사무총장)가 발표한 원고이다.(뉴스파워)
▲ 한국복음주의협의회 9월 월례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에서 신평식 목사(한국교회총연합 사무총장)가 발표하고 있다. © 뉴스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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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의 설립 목적에 집중하라
- 섬김 리더십의 관점에서 -
1. 한교총의 출범과 운영의 원칙
한국교회총연합은 2016년부터 연합기관 통합을 논의하다가, 2017년 ‘한국교회교단장회의’가 결의하여 설립되었다. 교단장회의는 국내 교육부 인가를 얻은 신학대학교나 대학원대학교를 소유한 교단을 회원으로 하고 있다. 교단이 난립한 상황에서 그래도 가장 안정되게 운영되는 교단이라고 본 것이다. 이때, 새로운 연합단체 설립이나 교단장회의를 법인화하는 방안도 검토되었으나, 교단장회의가 전체 교단을 포괄할 수 없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 결국 전체 교단을 품을 수 있는 단체로 <한교총>이 설립되었다.
새로운 연합단체를 구상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점은 ‘한국교회 연합운동이 그동안 보여준 실패를 반복하지 말자.’였다. 이를 기조로 첫째, 교단중심의 연합기관으로 할 것, 둘째, 현직 총회장이 대표성을 가질 것, 셋째, 라운드테이블, 즉 공동대표제로 할 것 등이었다. 새로운 연합단체의 주요 임무로는 대정부, 대사회, 통일사업에 집중하며, “교단이나 개별 교회가 할 수 없는 일을 한다.”는 원칙이다.
한교총은 이러한 설립 목표와 정신을 바탕으로 지난 6년간 운영하면서 특별히 한국교회와 한국 사회에 불편한 뉴스는 만들지 않고 잘 운영되었다. 지난 2022년도에는 목회데이터연구소는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2019년부터 3년간의 주요 이슈로는 ‘목회자 범죄’, ‘코로나19’, ‘신천지’, ‘전광훈 목사’ 등 주로 부정적인 주제가 많았는데 2022년 처음으로 ‘전쟁과 참사에 대응하는 교회’, ‘포스트 코로나 시대 교회의 회복’ 등 긍정적인 주제가 등장했다. 한편 가스펠투데이가 주관한 또 다른 빅데이터 분석은 주요 일간지와 방송사를 통해 보도된 한국교회 관련 뉴스를 대상으로 했는데 2018년 이후 5년 만에 처음으로 ‘긍정’ 기사 건수가 ‘부정’ 기사 건수를 앞질렀다. 그동안 한국교회에 대해 부정적인 소식들이 언론을 덮었는데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2000년대 들어 한국교회를 다루는 일반언론의 논조가 비판적이며 부정적인 보도로 가득했는데, 2022년 한 해 동안 교회에 대한 긍정뉴스가 아주 소폭 더 많이 나왔다는 것은 연합운동을 하는 이들이나, 관심 있는 모든 분들에게 큰 힘을 주는 뉴스가 아니었는가 생각한다. 따라서 현재 한교총은 정부와 국회, 지자체 등과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연합단체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자평한다.
2. 한국교회 주요 교단의 설립과 목적
한국교회 교단은 선교초기인 1900년대에 들어서 조직되었는데, 장로교회가 1912년, 감리교회가 1930년, 성결교회가 1933년, 침례교회가 1906년 대한기독교회를 조직하였고,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가 1953년 설립되었다.
각각의 교단은 그 헌법이나 장정, 규칙에서 기술하는 목적에 조금씩 차기가 있겠으나 종합하면, 첫째, 치리의 최고기관으로서 교회의 거룩성을 지키는 것이 제1 목적이다. 다른 말로는 교리를 지키는 것이다. 둘째, 교단의 교리에 맞는 목회자를 배출하는 것이다. 목회자 양육의 기본은 지역교회의 몫이요, 노회의 몫이다. 그 때문에 장로교의 경우, 목사 후보생 추천을 당회가 노회에 하고, 노회는 총회가 운영하는 신학교에 위탁교육하고, 교육을 마치면 기본적으로 총회가 시행하는 고시를 보고, 그다음 노회가 안수한다. 셋째, 전도, 선교, 교육, 구제 같은 사역 성격의 일들이다.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교단이라도 모두 최소의 치리 단위인 교회에서 시작되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총회가 노회와 교회의 상회이기는 하지만 총회를 위해 노회와 교회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총회와 노회가 하는 모든 치리와 그 사역이 교회와 교인들에게 향하며, 교회의 예배와 복음 전도를 통한 생명 사역에 집중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모범대로 한 생명의 구원과 자유를 위한 섬김에서 출발해야 한다.
3. 한국교회 교단의 공과(功過)
1) 한국교회 교단의 경우, 교단마다 경쟁적으로 신학교를 세워 대형화하고, 목회자를 양성하면서 많은 수의 목회자를 배출했다. 이렇게 배출된 많은 목회자들은 경쟁적으로 교회 개척 운동에 나서 교회 수가 늘어나며 양적 부흥을 이루었다. 그러나 너무 많이 배출된 목회자로 인해 발생한 사회문제가 많아졌다. 교회 재산의 사유화 문제도 심각해졌으며, 목회자의 경제적 빈곤, 노후, 이중직 허용 등의 문제를 낳았다.
2) 교단마다 선교부의 활동을 통해 많은 선교사를 파송했다. 그러나, 이제는 선교지마다 발생하는 출신 교단간 치열한 경쟁과, 초기 파송 선교사의 은퇴로 사역의 이양과 현지화를 고민하고 있다. 또한 은퇴하고 귀국하는 선교사들의 사역과 생계 문제의 고민이 생겨났다.
3) 한국교회 교단의 경쟁적 부흥 운동은 교단의 사역에서 큰 차이를 보였는데 첫째 국내 교회개척운동 둘째, 학생신앙운동 셋째, 교육공과의 보급 등이다. 이러한 사역적 활동은 나름대로 충분히 평가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방식만을 고집하면서 총회가 이 일을 계속할 것인가 하는 것은 반성의 여지가 있다.
필자는 ‘학생신앙운동’ 세대다. 학생 신앙 운동을 하면서 연합을 배우고, 조직을 배우고, 관계를 배웠다. 그 당시에는 학생들이 직접 이 운동을 주도하며 참여하고 발전시켜 나가면서 리더십을 익혔으며 자연스럽게 교단 신학교에 입학해 목사가 되었다. 실제로 지금 평신도 리더들 가운데 복음적 마인드를 갖고 각계에서 탁월하게 봉사하는 분들 중에 학생신앙운동 출신들이 적지 않다. 신학교마다 모집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는 지금 자발적인 신앙 운동이 없어져 청소년 세대를 리더도 기르지 못한 이유 때문은 아닌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교총이 회원 교단 교육관계자 초청 교육심포지엄을 하면서 교단별 상황을 파악하고 전문위원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현재 한국교회 교단 가운데 공과를 발행하고, 그 공과를 판매해서 정상적인 운영이 되는 교단은 6-7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중에 실제로 사업수익을 내고 있는 교단은 4-5개 밖에 없다. 대형교단들도 교육 출판을 담당하는 직원들의 급여를 교단에서 지원해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적자라고 보는 게 맞다. 그러나 교단을 교육교재의 발행을 사명으로 알고 재정을 투입한다. 그래서 공동공과, 통일공과 제작이라든지, 교단별 연합 공과 제작 등의 말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현실화에는 어려움이 많다는 결론이었다. 신학과 신앙적 전통을 공유하는 교단은 더 나은 공과 편찬을 위해 연대할 필요가 있다.
4. 교단 운영의 개선할 점
첫째, 교단장의 권한과 지위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장로교의 경우 총회장은 회의체의 의장으로 중재자의 뜻을 가진 MODERATOR를 쓴다. CHAIRMAN도 아니고, PRESIDENT도 아니다. 따라서 총회장은 총회가 열리면 그 회의 의장으로서 다양한 견해들을 조율하여 중재하여 결의하면, 그 결의는 결의 내용과 정신에 따라 각각의 위원회, 혹은 상비부가 잘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현실은 많이 다르다. 매년 열리는 총회는 총회장을 뽑는 데 집중된다. 뉴스의 핵심이 선거이다. 그것도 1년짜리 총회장에게 모든 관심이 집중되기 때문에 정책과 사업은 보이지 않는다.
필자는 예장합동교단 <100주년사>를 기획하고 편집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총회장이 1년이어서 참 다행이다. 좋은 분, 문제가 많은 분, 사고를 치신 분이 있지만 그래도 총회가 무너지지 않는 것은 임기가 1년이기 때문이다.’
어떤 분은 총회장이 되면 “총회장으로서 내가 무엇을 해야 되느냐?”고 묻는다. 그럴 때 내가 가장 쉽게 하는 대답이 있다. 바로 “아무 것도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이다. 총회장이 되어 그 재임 중 무슨 일을 하고 성과를 내겠다고 하는 것은 욕심이다. 총회는 총회가 가진 100년의 시스템대로 돌아가면 된다. 그 안에 제도화되면서 말씀에서 멀어진 요소들을 개선하고, 보다 복음적인 태도로 일하면 된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제자처럼 직임을 감당하면 된다.
다만 욕심이 있다면 총회장이 가는 곳마다 축복의 말씀으로 격려하고, 상황에 따라 더 순전한 복음의 말씀을 선포하고 긴급히 행동해야 할 일이 있으면 선도적으로 행동하면 된다. 그리고 교단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사랑과 겸손으로 지혜롭게 일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래야 총회 조직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면서 역사를 만들고, 성과를 낼 수 있다.
마태복음 20:25-27에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했다.
바울은 고전 9:18에서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고 했다.
섬김이라는 말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김’ 정도에서 끝나지 않고, ‘내가 갖고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요즘 쓰는 용어로 좀 더 세밀하게 표현하면, ‘권리 없는 자를 업신여기지 않는 것’이다.
총회장이나 총회의 조직이 권력화 되면서 지역교회 많은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이 총회 정치에 매몰되어 그곳에서 시간을 다 빼앗기는 구조가 되었다. <장로신문>의 조사와 보도에 따르면 장로의 역할로 ‘교인들 돌보고 섬김’보다는 권력화의 모습을 보여주는 ‘치리’에 다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는데, 이것은 의식적 권력화의 길을 가고 있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목사와 장로가 세상 정치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은 이러한 폐해를 극복하고 겸손과 섬김이 주는 권위를 회복해야 한다.
둘째, 권한의 분산과 정당한 권한 행사가 필요하다.
교단은 ‘총회’와 ‘노회’(지방회) 그리고 ‘당회’라는 삼심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것은 교회와 개인의 자유를 기반으로 처리하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교단마다 총회에 집중되는 권한과 직무를 분산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그것은 대회제 실시를 위한 연구이고, 노회로의 권한 이양 같은 것들이다.
모 교단의 경우 ‘대회제 실시’를 결의하고 계속 연구하고 있지만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무지역노회의 해소이다. 대회제 시행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무지역노회가 해결되지 않으면 대회조직이 전국대회가 되는 결과가 되어 실현 불가능을 예상하고 있다.
또한 노회로의 권한 이양/위임을 논의할 때 노회의 규모와 행정 체제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총회와 같은 행정행위가 불가한 면도 작용한다. 또한 작은 교단의 경우 노회 규모가 부실해 신뢰성 있는 독립적 직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 의문시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회에만 집중되고 있는 권한의 분산과 결의의 신뢰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총회는 총회장이 갖고 있는 권한이 있고, 임원회 혹은 이사회의 권한이 있고, 상비부 가운데는 재판국과 감사부와 권한이 가장 큰 권력으로 작용한다. 그러기에 이러한 권한들이 정당하고 적합하게 행사되어야 한다.
그 가운데 가장 심각한 부분이 재판국과 감사부의 운영이다. 재판국과 감사부는 그 직무상 전문성과 합법성, 정당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그러나 총회라는 특성 때문에 총회 대의원만으로 구성된 재판부와 감사부는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제한적으로라도 교수, 변호사, 회계사 등의 전문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셋째, 총회의 모든 제도와 행정과 사역은 교회/목회를 살리는데 집중되어야 한다.
요즘 목사님들은 너무 바쁘다. 목회 이외의 업무로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보낸다. 총회와 노회의 정치적인 일을 위해 동원되든지, 혹은 개인적 취향에 따른 정치적 목적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교인들에게 자기 교회 담임 목사님의 이미지를 물어보면, “우리 교회 목사님은 바빠요.”가 대부분이다. 목사님은 무엇인가 바쁜 일이 있어서 항상 자리에 없는 움직이는 분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데 반대로, “우리 교회 목사님은 항상 내 말에 귀 기울여 주세요.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이세요.”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은 기대일 뿐이다.
지난 정부 시절 모 씨가 청와대 담을 넘어 대통령을 끌어내야 한다고 소리칠 때, 60대 초반의 목사님 한 분이 사무실로 나를 찾아왔다. 항의하고 따지기 위한 것이었다. 그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한교총은 왜 OOO을 끌어내는데 협력하지 않습니까? 한가하게 이렇게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50여 명 모이는 교회에서 목회하는 그분은 자신이 하는 말이 옳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 나는 그분과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지금 코로나 때문에 모두 두렵고 힘듭니다. 목사님 교회 교인들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러면 누가 목사님이 목회하는 교회 교인들을 돌아보고 기도해 줍니까? 그들을 누가 영적으로 돌볼까요?”
그 목사님은 많은 생각에 잠기더니 사무실을 나갔다.
올해 한목협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소위 가나안 성도의 비중이 29%에 달한다. 10년 전에는 10.8%였던 것이 거의 모든 조사에서 30%에 육박한다. 어떤 통계 전문가는 앞으로 10년 후에는 50%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거기다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어 23년 현재 65세 이상 인구가 550만 명 정도이지만, 10년 후에는 무려 1,100만 명에 달하리라고 예측한다. 이러한 수치는 현재 우리가 유지하고 있는 교회 체제가 확실히 무너진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교단의 모든 정책과 행정과 사업이 목회와 교회에 실질적 도움이 되도록 프로그램되어야 한다. 불필요하게 목회자의 동원하거나 아스팔트 위에 나서도록 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타 종단에서는 지역마다 ‘문화 교실’ 같은 포교방을 만들어 운용하고 있다. 물론 그 수단이라는 것이 ‘사주’나 ‘개인 상담’ ‘취미 활동 동아리’ 등이지만 민간에 깊이 다가서는 방법으로는 부족하지 않다.
근자에 예장 통합교단에서는 마을 목회 운동을 폈다. 합동 교단은 샬롬 부흥 운동을 펼쳤다. 모두 좋다. 문제는 그러한 움직임이 일선 목회, 마을 목회, 골목 목회에 실질적으로 활력을 주어야 한다. 목회자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들이 수도 없이 많지만 교회와 목회에 생명력을 공급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반성해야 한다.
과거에는 교회 건물에서 선거를 위한 투표소로라도 사용했지만 종교 편향 운운하는 바람에 불신자가 교회를 공익을 위해 사용하는 것도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어린이집이나 긴급돌봄도 마찬가지다. 세상은 교회와 복음이 공공영역에서 자리를 잡는 것을 도와주지 않는다. 그래도 방안을 찾아 전국 모든 교회가 예배만 드리는 곳이 아닌, 상담실이 되어야 하고, 전도방이 되어야 한다. 그게 아니리면 취미교실이라도 운영하여 불신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한교총은 매년 전국 40여 교회를 선정해 마을음악회를 개최한다. 어찌 되었든 예배당에 일반인들을 불러 모으기 위한 방안이다.
마무리하며
총회는 총회의 본연의 직무를 다해야 한다. 교회를 지키기 위한 정당한 권한의 행사와 섬김의 리더십으로 사랑과 감동을 주는 현장이 되게 해야 한다. 총회는 노회와 지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과감하게 이양하며, 또한 모든 사역이 교회와 목회를 위하도록 재편되어야 한다. 총회 소속 모든 목회자가 목회에만 전념하며, 모든 교회가 죄인의 변화를 이루는 새 생명 탄생의 현장이 되게 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