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정문화원 이사장 두상달 장로와 원장 김영숙 권사 부부 ©강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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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를 거금을 주고 팔라면 팔수있을까?
선물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것이다. 만약 대가를 바라고 준다면 그것은 선물이 아니라 뇌물이다. 뇌물은 끈 달린 올무로 받아도 뒤끝이 좋지 않다. 그러나 선물은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것이기에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한껏 기쁘다.
그러므로 선물은 주는 대로 흔쾌히 감사하며 받아야 한다. 선물을 받는 사람이 ‘마음에 든다, 안 든다’ ‘어떻다 저떻다’ 불평을 한다면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남편이 모처럼 선물을 사다 주었더니 “어머 당신이 웬일이야? 내일을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하거나 “차라리 돈으로 주지, 내 마음에 드는 거 사게” 한다면 어떨까? 선물해 주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나 버릴 것이다.
한번은 사업차 미국에 다녀오는 길에 아내의 화장품을 샀다. 내 딴에는 큰맘 먹고 꽤 이름 있다는 좋은 제품으로 골라 왔다. 모처럼 선물을 받은 아내는 입이 함박 만하게 벌어졌다. 기뻐하는 아내를 보니 역시 잘 사왔다 싶어 나 또한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포장을 풀고 설명서를 읽어 보던 아내가 실망한 듯 말하는 게 아닌가?
“여보, 이거 지성용이라 건성 피부인 나에게는 안 맞는 거네.”
영어를 몰랐더라면 그냥 지나갈 수도 있었을 텐데 서툴게나마 영어를 아는 것이 문제였다. 좋았던 기분도 잠시뿐, 한마디로 김이 새고 말았다. 화장품에 지성용과 건성용이 따로 있다는 것을 남자인 내가 어찌 알았으랴.
그 후로는 외국에 나갔다 와도 두 번 다시 화장품을 사 오지 않는다. 설령 피부에 맞지 않더라도 “이거 되게 좋은 화장품이라고 해서 꼭 한 번 써 보고 싶었는데, 여보, 고마워요.” 하면서 흔쾌히 받았더라면 신이 나서 자꾸만 사다 주었을 것이다. 큰맘 먹고 사 온 선물을 ‘지성’으로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건성’으로 받으니 문제가 되었다.
그렇다면 지성으로 받아야 할 내 생애 최고의 선물은 무엇일까? 바로 배우자이다. 스스로 선택해서 결혼했든, 선택을 받아서 결혼했든 배우자는 그 자체로 내 생애 최고의 선물이다. 막상 받아 놓고 보니 이런저런 결점이 눈에 띄고, 나에게는 잘 맞지 않는 점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선물을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야만 한다.
‘비교함정’이라는 것이 있다. 내가 가진 것을 남과 비교함으로써 스스로 불행한 심정에 빠져드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나를 남과 비교하는 것은 선의의 경쟁을 불러일으켜 삶을 발전시키는 효과도 있지만 자기 비하와 열등의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내 친구 중에 아내를 끔찍이 아끼는 사람이 있다. 일에 있어서는 매우 탁월한 능력을 지녔지만, 나와 같은 깡촌 출신으로 투박한 모습에 세련미는 좀 떨어지는 사람이다. 아무튼 그의 아내 사랑에는 유별난 데가 있다. 얼마 전부터는 평생 설거지를 도맡아 하기로 작정을 했다고 한다. 무슨 그런 일로 작정까지 하느냐고 놀렸더니, 젊은 시절 자신을 위해 희생한 아내를 위해 평생 ‘설거지 전담 맨’이 되려고 결심했다는 것이다.
한번은 이 친구와 부부 동반으로 외국 여행을 다녀왔다. 우리 일행은 비행기 좌석에 나란히 앉게 되었다. 그런데 식사 시간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친구의 아내가 포도를 가리키며 남편에게 “이게 뭐야?”하고 묻는 것이었다. 그랬더니 친구가 “응, 그건 포도야”하면서 친절하게 대답해 주는 게 아닌가? 좀 있다 다시 딸기를 가리키며 “이건 뭐야?” 하고 물으니 역시 친절하게 “응, 그건 딸기야”라고 대답을 한다. 그의 아내는 딸기를 하나 집어 먹고 나더니 이번에는 토마토를 가리키며 “이건 뭐야?”하고 또 물었다.
‘아니, 정말 포도하고 딸기를 몰라서 묻는 건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유치원 아이들도 하지 않을 질문을 퍼붓는 천진한 아내와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친절하게 대답해 주는 친구. 솔직히 옆에서 바라보기에 무진장 느끼했다. 친구 아내도 이상했지만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는 친구는 더더욱 모를 지경이었다.
그런데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내 아내가 그 모습이 부러웠던지 딸기를 가리키며 똑같이 “이게 뭐야?”하고 내게 물어 왔다. 나는 아내를 쳐다보면서 뚱하게 말했다.
“보면 몰라?”
그것으로 끝났으면 좋으련만 아내는 억울한 생각이 들었던지, 포도를 가리키며 다시 한 번 물었다.
“이게 뭐야?”
“아니, 당신은 눈 없어?”
그러자 아내가 내 옆구리를 쥐어박았다. 우리는 서로 마주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무뚝뚝한 남편보다는 자상한 남편이 좋다. 그러나 내 아내, 내 남편을 남과 비교하면 불만이 생기기 쉽다. 내가 받은 선물을 다른 사람이 받은 선물과 비교해서 요모조모 뜯어보고 따져 보고 조금이라도 못한 점이 발견되면 실망에 빠지는 것과 같다.
비교에는 원래 끝이 없다. 지금 이 사람과 비교해서는 낫다고 만족하더라도 반드시 더 나은 사람과 비교하는 순간이 온다. 그래서 비교함정에 빠지기 시작하면 마지막에 남는 것은 초라함과 불행감뿐이다. 창 밖에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질 때 안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내가 더없이 초라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러나 진정 소중한 것은 내 안에 있다.
사람은 백인백색으로 저마다 다른 개성을 타고났다. 그러니 내 남자가 다른 여자의 남편과 같기를 바란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모자라면 조금씩 채워 가고, 맞지 않으면 하나 둘 맞춰 가면서 둘만의 듀엣 곡을 멋지게 연주해 나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오랜 세월 손때를 묻혀 가며 길들인 정다운 물건처럼, 부부도 서로 맞춤하게 길들여진다. 그때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나 안젤리나 졸리가 나를 쫒아 와도 고개를 젓게 될 터이다.
당신은 생애 최고의 선물을 어떤 자세로 받고 있는가? 진심으로 만족스럽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고 있는가? 혹시 비교함정에 빠져 온갖 불평을 투덜거리면서 한쪽 구석에 밀어 두거나 아무렇게나 굴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깊이 되돌아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