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는 멋을 부리며 피는 꽃이다. 담장 높은 곳에서도 피우지만 연한 가지를 길게 늘어뜨려 허공에 매달려 산드러지게 꽃을 피운다. 꽃은 어디에서 피우든 아름답지만, 공중에 대롱거리며 피우는 모습이 참 멋스럽다.
이 세상에 어느 꽃이 밉게 여겨질까 만은 진한 황색의 능소화는 해마다 보고 또 보는 꽃이어도 늘 새롭다. 나무 담장이나 시멘트 담장을 가리지 않고 꽃을 피운다. 그것도 아주 예쁘게 말이다.
더구나 능소화는 한 번 피우고 마는 꽃이 아니다. 꽃이 지고 나면 또다시 꽃망울이 생기고 처음 것과 다를 바 없이 화려하게 피어난다. 장마가 겹쳐 낙화가 빨라 유감이지만, 그래도 몇 차례 지며리 하여 꽃을 피워 낼 것이다.
‘검이불누(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 말이 있다. 곧 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고, 아름답지만 사치스럽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능소화는 가난한 집 담장에서도 검소하게 피어도 누추하지 않고, 부잣집 담장에서 화려하게 피워도 전혀 사치스럽지 않다. 그래서 나는 능소화를 멋쟁이 꽃이라 부른다.
능소화는 까다롭지 않다. 아무 데서나 잘 자라고 꽃을 피운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가지를 꺾어 땅에 심으면 된다. 아름다운 꽃이면서도 아주 서민적이다. 빈집에서도 피우고, 가난한 집에서도 부잣집에서와 차별 없이 꽃을 피운다.
어떤 사람이 멋스럽던가? 생김새나 옷차림에서 오는 멋스러움은 유효기간이 짧다. 인간미가 넘치는 훈훈한 사람, 숨은 매력들이 닳지 않는 사람, 그리고 서민적이면서 기품이 느껴지는 사람이 아니던가?
예수님이 바로 그런 분이다. 그분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아들이시다. 그런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으셨다. 가난한 자들과 어울렸고 죄인들과 식사를 나누었다. 심지어 한센인의 몸을 만져주시며 그느르셨다.
하늘의 영광을 가진 분이면서도 죄 가운데 신음하며 무거운 죄 짐을 지고 괴로워하는 자들을 두남두셨다. 그들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예수님은 멋스러운 분이다. 최고의 멋쟁이를 따르는 우리도 산드러진 멋쟁이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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