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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칼럼] 내 삶의 목적
다시 읽는 김준곤 목사의 ‘예수칼럼
 
김준곤   기사입력  2023/07/03 [08:43]

 

▲ 김준곤 목사     ©뉴스파워

까뮈의 <이방인>은 꿈속의 망령이나 몽유병 환자 같은 주인공을 등장시키고 있다. 삶의 궁극적 의미와 가치를 상실한 무신론자인 그는, 신을 상실한 인간 전체를 대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박사가 되고 돈을 벌고 모범 시민이 되는 것이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인생의 궁극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아무리 질서가 정연하고 각 기관의 상태가 만점이며 좌로 우로 24시간 항진을 계속하는 여객선일지라도 목적지가 없으면 결국 떠돌이 배일 수밖에 없듯이 사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며 왜 사는가 이 말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한 사람은 인생의 허무주의가 될 수밖에 없다. 이 물음을 포기하면 인생도 폐업하는 셈이다. 키에르케고르는 그런 사람은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짐승을 한 마리 키우고 있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런데 이 물음의 답은 나 자신 속에서 끌어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이 자신을 만든 창조주가 아니고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내가 남자 된 것, 내 국적, 나의 태어난 장소와 시간, 내 신체 구조, 내 인간 조건, 생과 사의 시기와 길이 등이 모두 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것이다. 그래서 나를 만드신 나의 하나님을 알 때까지 인생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일 수밖에 없다.

내 삶의 목적은 나를 만든 그 분에게 물어야 한다. 죽음과 죄책과 허무는 삼위일체와 같다. 이 세 개의 망령이 니체나 마르크스의 배후에 있었고 공산주의와 히피의 배후에서 요술을 부리고 있다. 현대의 성적 퇴폐와 광기 문화와 까뮈와 모든 게릴라의 배후에도 이 망령의 무의식적 추적이 있었다.

예수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신다. 영원한 생명,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터지는 생명이 예수에게 있다. 죄를 씻고 속죄를 받는 묘약은 예수의 피밖에는 아직까지 처방이 나온 일이 없다.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으로 만나는 시간부터 크리스천의 실존적 시간은 영원한 첫사랑 같은 밀월의 시간으로 바뀌어진다.

인간의 영혼 속에서 이 세 개의 망령을 쫓아낼 때 그의 삶은 꿈에서 현실로 깨어나고 10배나 알차고 풍성해지는 것이다. 번데기가 나비가 되고 탱자나무가 감귤나무로 변한 것이다. 귀머거리의 귀가 뚫리고 소경이 눈을 뜨며 벙어리의 입이 한꺼번에 터지며 새 하늘 새 땅에 새 사람이 태어나는 체험을 한다.

 

*한 손에는 복음을, 한 손에는 사랑을’이라는 쌍손 선교를 실천한 한국CCC 설립자 김준곤 목사의 <예수칼럼>. 한국 기독교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참된 신앙인인 저자의 선지자적 영감과 시적 감성으로 쓰인 잠언록이다. 민족과 역사,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한 외침을 담아냈다.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의 고백뿐 아니라, 복음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 우리 영혼을 전율시킨다. 출간 이후 최장기, 최고의 베스트셀러로써 수많은 젊은 지성인들의 영혼을 감동시키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킨 <예수칼럼>은 파스칼의 <팡세>에 필적할 만한 현대적인 고전으로 평가되며, 특히 문체의 간결성과 심오한 기독교 사상은 독자들에게 무한한 감동을 안겨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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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7/03 [08:43]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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