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CCC 설립자이자 초대 총재를 지내신 고 김준곤 목사님(1925-2009.9.29).
▲ 광주 숭일고등학교 교장실에 걸려 있는 역대 교장. 김준곤 목사는 제14대 교장을 역임했다. ©뉴스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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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서부교회(현재 서현교회) 담임목사로 짧게 시무한 후 광주숭일중고등학교 교목으로 부임해 사역하다가 1955년 10월 25일부터 1956년 10월 7일까지 제14대 교장으로 재직했습니다.
그리고 여수 음성 나환자촌이자 순교자 손양원 목사님이 시무하셨던 애양원의 한성신학교에서 교수로 한 학기를 가르쳤습니다. 한성신학교는 1955년 개교했으며 1962년 폐교가 되었습니다.1953년 신축된 2층 건물을 교사로 사용했습니다.
목사님은 그곳에서 조직신학 등 여러 과목을 가르쳤는데, 초등학교 친구였던 양재평을 교수와 학생으로 만났습니다.
▲ 1993년 12월 광주CCC원단금식수련회에서 저녁집회를 인도하는 양재평 장로 ©뉴스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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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군 지도면 면장 아들이었던 양재평은 경성제국대학(지금의 서울대)에서 법을 공부해 법조인이 되려고 서울에 올라가서 공부를 하던 15세에 한센병에 걸렸습니다.
양재평은 모든 희망이 좌절되는 아픔 속에 18세에 음성나환자촌인 여수 애양원에 와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26세에는 실명을 했습니다.
하지만 애양원교회를 시무하셨던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을 만나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리고 신학을 공부한 것입니다. 김 목사님 말씀에 의하면 눈도 안 보이는 양재평이 1등을 했다고 합니다.
▲ 한성신학교 교사로 사용되었던 애양원 토플하우스. 한국CCC 설립자 김준곤 목사가 한 학기 교수로 사역할 때 친구 양재평 장로가 학생이었다. ©뉴스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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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평은 한센인들과 성서암송반을 만들어 성경을 암송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을 모두 암송했습니다. 아마도 신약성경 전체를 암송한 것은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사에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양재평은 장로가 되어 CCC를 비롯해 국내와 해외를 다니면서 자신의 간증과 손양원 목사의 순교신앙을 전파했습니다.
▲ 애양원 토플하우스. 1953년 지어진 이 건물은 1955년부터 1962년까지 한성신학교(애양원신학교)로 사용되었다. ©뉴스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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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자 신세가 되었던 모세가 미디안 광야를 떠돌다가 가시떨기나무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의 만나 출애굽의 사명을 받았듯 양재평은 당시에는 천형(天刑)이라고 했던 한센병으로 인해 가시덤불 동산인 애양원으로 왔다가 예수의 부르심을 받고 예수 사랑, 성경 사랑, 순교신앙을 전파했습니다.
그리고 평생을 애양원교회 식구들과 함께 친구인 김준곤 목사님과 CCC 대학생들 그리고 민족복음화운동을 위하여 하루 12시간씩 기도로 동역해해 주셨습니다. 장로님은 2007년 10월 15일 별세했습니다.
▲ 김준곤 목사 생가인 신안군 지도읍 봉리 원동마을 생가 뒷편에 있는 선영. 김 목사가 소천하기 1년 전 인정진 사모 순교기념비를 세웠다. ©뉴스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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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곤 목사님은 6.25가 발발하자 경기도 파주 금촌 장로교회 전도사로 시무하시다가 고향인 지도면 봉리 마을로 피난을 왔다가 초등학교 교사였던 인정진 사모님이 주일학교 교사를 했다는 이유로 1950년 10월 3일 밤 순교를 당했습니다. 부친도 학살을 당했습니다.
▲ 김준곤 목사님이 장로회신학교 1회로 졸업하셨을 때 사진. 우측이 6.25 때 순교하신 인정진 사모님. 따님 은희. ©뉴스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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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님도 죽음 직전, 1950년 10월 17일 지도 섬에 상륙한 김곤근 지도서장과 경찰 11명 그리고 해병대 1개 소대원들에 의해 극적으로 구출이 되었습니다. 그 고난 가운데 민족 구원의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특히 가족을 학살한 일에 가담했던 사람들을 용서해 줄 것을 탄원했습니다.
▲ 1950년 10월 17일 신안군 지도서장으로 발령받아 경찰 11명과 해병대 1개 소대를 이끌고 지도에 상륙해 좌익들의 준동을 막아냈던 김곤근 서장 ©뉴스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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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님은 한성신학교 교수 사역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조선신학교 51인 신앙동지회 멤버이자 장로회신학교 1회 동기인 조동진 목사님의 소개로 미국 알라바마 주 버밍험의 사우스이스턴성서대학에 입학했다가 풀러신학교로 옮겼습니다.
▲ 김준곤 목사(우)와 조동진 목사..장로회신학교 1회 동기로 대학생선교운동과 세계 선교에 각각 큰 족적을 남겼다. 2008년 11월 3일 홍콩에서 ©뉴스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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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빌 브라잇을 만나 한국CCC 창설을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귀국하여 1958년 광주에서 CCC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1월 2일 서울에서 CCC 창립예배를 드리고 본격적인 대학생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귀한 종으로 쓰임을 받았던 김준곤 목사님과 양재평 장로님. 고난이 하나님의 변장된 축복이고 보약이 되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