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성빈 교수(장신대 기독교와 문화, 전 총장) ©뉴스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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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
길었던 코로나19 상황이 드디어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다. 이제는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도 해제되었고, 수많은 모임과 행사들도 다시금 재개되고 있다. 코로나 상황에서 온라인 활용을 비롯한 다양한 방면으로 지혜를 발휘하며 견뎌온 교회들도, 이제는 본격적으로 모임과 행사를 재개하며 공동체로서의 활기찬 모습을 회복하기 위하여 진력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는 예전과는 다른 시대적, 목회적 과제들을 우리에게 남겼다. 온라인 플랫폼들의 성장에 따른 신앙생활 방식의 변화, 이에 따라 강화되는 원자화된 삶의 방식들, 감염병 상황에서 더욱 부각된 교회의 공공성에 대한 요청과 도전 등 기독교와 교회는 단순히 이전 모습으로의 회복만으로는 적실하게 대응하기 어려운 시대적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교회와 사회 모두의 대응을 요청하는 거대한 위기적 상황은 바로 ‘기후위기’의 문제이다. 지구온난화, 대기오염, 해양생태계 파괴, 미세플라스틱, 방사능 오염, 생물다양성 등 수많은 문제들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수면 위로 떠올랐고, 여러 과학적 연구와 사회적 논의를 통해 많은 이들의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이제 기후위기 문제는 더 이상 소수의 과제가 아니며, 세계인의 합의가 있는 지구적 차원의 핵심 과제가 되었다. 시민단체와 정치권이 이에 반응하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기업에서도 ‘환경에 대한 관심과 행동’을 중요한 하나의 과제로 삼게 되었다.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는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인데, 여기서 E는 ‘환경적인(Environmental)’의 첫 글자로 기업이 지향하는 가치와 방향성 및 그 기업의 활동이 지구환경에 대한 관심과 보호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한다는 하나의 기업가치를 말한다. ESG가 중요한 이유는 이러한 가치가 기업을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이며, 투자자들 역시 이러한 척도를 통해 기업의 미래가치를 평가한다는 점이다.
교회 역시 이러한 사회적 과제에 응답하고 있다. 세계교회는 1970년대부터 생태계 위기 상황이 기독교 신앙의 문제임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였다. 이후 많은 논의와 신앙적 실천을 펼쳐왔고, 교단 및 교파마다 그 중요성과 실천의 모습은 조금씩 다르지만 많은 교회들이 이에 공감하며 환경운동에 다양한 모습으로 참여해왔다. 교회가 이러한 운동에 참여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교회의 핵심적 사명에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보전한다’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 사회적 조직들이 다양한 이유로 환경운동에 참여하지만, 우리 참여의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신앙적 사명이다. 이 글에서는,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 신학적으로 성찰하고 이에 기독교윤리적으로 우리는 어떻게 응답할 수 있을지를 논의하고자 한다.
2. 창조와 일반계시
하나님과의 관계성 안에 있는 창조세계
창세기 1장은 “보시기에 좋았더라”를 7번이나 언급하며,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을 선하게 창조하셨다고 말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창조 세계가 완벽하거나 완전하다는 뜻은 아니다. “모든 우연성, 유한성, 한계성에도 불구하고 창조는 (불완전할지도 모르지만) 선하다.”우리의 경험과 생각으로 다 가늠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 위에서 창조 질서를 보전하고 선함으로 지켜나가는 것이 우리가 가진 신앙적 사명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서, 하나님은 그저 세상을 선하게 창조하신 것만이 아니라, 세상을 초월하는 분이시지만 세상 안에서 지금도 역사하며 함께하는 분이시다.특히 성령이 이 일을 하시는데, 이에 관하여 현대신학에서는 ‘성령의 우주적 차원의 사역’이라는 주제가 연구되어왔다. 여기에 따르면, 성령은 모든 창조 세계를 지탱하고 충만하게 하는 분이시며, 교회공동체뿐 아니라 교회 밖의 모든 인간과 사회, 학문과 예술, 종교와 역사 가운데 현존하며 일하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창조된 창조 세계, 성령의 역사의 현장인 창조 세계는 절대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성과 연결성 안에서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결성 안에서 창조 세계는 하나님의 계시의 현장이 되며, 우리는 이를 ‘일반계시’라고 부른다.
일반계시에 대한 논의와 성찰
일반계시와 관련된 논의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 중 하나는 칼 바르트(Karl Barth)와 에밀 브루너(Emil Brunner)의 일반계시 및 자연신학과 관련된 논쟁이다. 바르트는 일반계시의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는 입장이었고, 브루너가 바르트의 이 지점을 비판하며 논쟁이 시작되었다. 브루너 역시 일반계시의 역할을 극대화하는 입장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밖에서의 계시에 대한 바르트의 생각이 워낙 부정적이었기 때문에 둘 사이의 논쟁은 길게 이어졌다. 결국 바르트 역시 일반계시의 가능성을 인정했고,대체로 개신교 신학자들도 자연신학으로 넘어가지 않는 선에서 일반계시를 인정하는 브루너의 입장에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바르트와 브루너가 기준으로 삼았던 칼빈 역시 일반계시를 긍정하며, 하나님의 능력, 지혜, 영광, 공의, 선, 의 등이 일반계시를 통해 나타난다고 하였다.구원을 위한 지식이 일반계시를 얻어질 수 있다고 본 것은 아니었지만, 일반계시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와 관련된 활동들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일반계시에 대한 이러한 긍정적 가치를 고려할 때, 신학 분야에 몸담고 있는 우리는 자연과 인간, 사회와 역사에 대해 고찰하는 세속학문 및 사회적 논의들과 보다 열린 태도로 대화를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 사실 기독교 신학의 역사를 볼 때, 신학은 다양한 철학적 담론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왔다. 그리고 현대에는 철학, 사회학, 자연과학, 심리학 등의 결과물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발전해왔으며, 세상의 고통과 아픔의 문제, 그리고 지구와 자연의 지속 가능한 삶의 문제에 함께 참여하고자 애써왔다. 세상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하는 사역의 현장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선한 창조에 의한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드러나는 계시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세속학문과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나가야 하며, 세상의 고통과 아픔의 소리에 응답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 땅 가운데 이루어나가야 한다.
3. 창조질서 보전에 대한 기독교윤리적 성찰
창조 세계 돌봄과 사랑의 명령
창세기 1장은 선한 창조의 이야기뿐 아니라, 인간이 받은 ‘다스림과 정복의 사명’(창1:26-28)도 증언하고 있다. 아쉽게도 이 본문은 오랫동안 ‘세상에 대한 정복 명령’으로 인식되었으며 유럽인들의 자기 정당화의 도구가 되었다. 때로는 제국주의의 근거로, 때로는 무분별한 자연 개발에 대한 근거로 사용되었고, 이에 따라 탈식민주의, 여성주의, 환경운동 등 억압과 차별, 착취에 저항하는 여러 담론 및 운동들에 의해 숱한 비판을 받아왔다. 다행스럽게도 이제는 이러한 방식을 벗어나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드러낼 수 있는 방식으로 이 본문을 해석할 수 있게 되었고, 다스림과 정복의 명령이 위계질서를 통해 이루어지는 억압과 착취의 명령이 아니라 돌봄과 사랑의 명령이라는 것을 밝혀내었다. 창세기 1장에서 인간이 받은 명령은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자연과 지구를 가꾸고 돌보며 사랑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신학적 전회는 신학 자체의 노력과 성찰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기독교 전통에도 오래전부터 자연을 돌보고 사랑했던 수많은 신앙인들이 있어 왔지만, 현대적으로 자연에 대한 인간의 태도에 문제가 있음을 먼저 밝혀낸 것은 세속 환경운동과 과학자들이었고 이들 중 급진적인 그룹들은 자연에 대한 기독교의 인간중심적인 태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기독교는 이러한 사회적 발전에 조금은 수세적으로 응답하며 우리 자신의 신학과 실천을 성찰했고, 지금처럼 창조 질서의 보전을 교회의 중요한 사명으로 정립할 수 있었다.즉 지금의 환경보전의 과제는 일반계시 차원의 발견이 신학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자연을 돌보고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자연을 알아야 하고 무엇이 돌봄과 사랑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는 신학과 교회의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세속학문과 환경운동과의 대화 및 협력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자연과 괴리된 공허하고 원론적인 외침을 벗어나서, 계시의 현장이며 사역의 현장인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여러 환경운동 및 과학에게 배우며 사랑의 능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고무적인 것은 많은 교회들이 이러한 배움과 실천의 공간을 넓혀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를 겪으며 많은 성도들이 환경문제에 대응해야 한다는 실제적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구체적인 방안들을 함께 모색하며 보다 실천적인 녹색교회로의 변화를 이루어가고 있다.
하나의 생명공동체로서의 지구
창세기 9장은 홍수 후에 하나님께서 노아와 언약(Covenant)을 맺는 장면이다. 무지개 언약이라고도 부르는 이 장면에서, 하나님은 노아와 그 자손들만 언약의 파트너로 세우지 않으시고 모든 생물을 언약의 파트너로 세우신다. 즉 인간과 다른 생물들, 지구공동체 전체가 하나의 계약공동체이며 생명공동체라는 것이다.인간뿐 아니라 다른 생명도 하나의 공동체로 여기는 모습은 요나서에서도 나타난다. 요나서에서 니느웨 왕은 사람뿐 아니라 동물들에게도 하나님 앞에서의 금식을 명하고(욘3:7-8), 하나님 역시 사람뿐 아니라 다른 동물들도 아끼는 마음으로 니느웨 심판을 주저하신다(욘4:10-11).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보자면 이러한 비인간 존재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여기는 것이 어색할 수 있지만, 성경은 이러한 관점들을 보여주고 있으며 우리 시대는 점점 더 이를 진지하게 다룰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 논의되는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공생”이다. 인간-자연의 관계 및 인간-기술의 관계 등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공생을 지향점으로 하는 연구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논의들은 인간뿐 아니라 비인간, 지구, 자연, 동식물, 기계, 사물 등도 하나의 행위자로 여기면서 함께 공생하는 미래적 비전을 목표로 논의를 이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그 목표점은 좋으나 실제적인 그림을 그려 나가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이다. 성경은 인간에게 세상 살림에 관한 주요한 책임을 부여하고 있고, 우리가 보기에도 현실적으로 지구공동체의 문제에 주체적으로 응답할 수 있는 존재는 인간 외에는 아직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비인간 존재들의 주체성과 책임성 문제, 실제로 비인간 존재들과의 공생을 논함에서 오는 모순적 상황 등 풀어가야 할 여러 과제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공생의 주제는 여러 분야에서 계속 논의될 것이고 기독교는 더욱 적극적으로 응답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4. 결언: 교회를 돌아보며
창조 세계는 하나님께서 선하게 창조하신 계시의 현장이며, 돌봄과 사랑으로 응답해야 하는 사명의 현장이다. 때론 흔들리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전 세계적인 합의를 형성해가고 있는 창조질서 보전의 과제 앞에서 교회는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가? 다른 무엇보다도 교회는 환경보전의 문제를 함께 배우고 공유하고 나누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실천을 도모할 수 있는 매우 강력한 배움 및 실천공동체의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창조신앙의 기초 위에서 수행되는 이러한 배움과 실천은 수많은 성도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활동이 가져오는 가장 큰 열매는 눈에 보이는 실천일 수도 있지만,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공감대 형성’이다. 교회가 기독교 밖의 다른 집단들과의 대외적 협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이 문제에 대한 교회 구성원들의 공감대 형성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실제적으로 교회는 지구공동체의 일원으로 창조질서 보존의 사명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힘과 노력을 다해서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고 싶어도, 지구공동체의 다른 이들이 함께 움직여주지 않는 이상 이 일은 요원할 뿐이다. 결국 교회는 지역사회, 시민단체, 정부, 기업 등 우리 사회와 전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집단들과 함께 창조 질서의 보전을 위해 힘써야 한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의 그룹들이 공통의 과제를 이루기 위해 긴밀하고 조직적으로 소통하며 협업하는 것을 “콜렉티브 임팩트(Collective Impact)”라고 부르는데,창조질서 보전의 문제는 전형적으로 콜렉티브 임팩트를 통해 풀어가야 하는 과제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 우리를 교회 밖의 모든 이들과 협력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1900년대 초반에 이루어진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서 1.5℃ 이하로 기온상승을 막지 못하면 지구는 위기 상황에 처한다. 이를 위해서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어야만 한다. 우리가 처한 엄중한 현실이다. 우리는 공동체적으로, 더욱더 공동체적으로 힘써야 한다. 힘을 합쳐 창조질서 보전의 사명에 응답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공동체와 집단들과의 협업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어떠한 모습으로든 각 교회가 위치한 지역사회에서 환경운동의 가교와 교두보 또는 공통공간의 역할을 하며, 국가와 사회에서 환경운동을 묶어내는 일에 크고 작은 모습으로 기여함이 이 시대 교회가 감당하여야 할 사명에 성실하게 응답하는 책임적 역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