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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김준곤 목사 예수칼럼] 절망이라는 병
다시 읽는 김준곤 예수칼럼
 
김준곤   기사입력  2023/02/05 [13:01]

 

▲ 김준곤 목사     ©뉴스파워

세상은 절망이라는 병을 앓고 있습니다.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죽음에 이르는 병은 절망의 병입니다.

 

이사야서의 마지막 절에 그 불이 꺼지지도 않고 벌레가 죽지도 않는다고 했는데 이런 병을 앓고 있는 것이 인류인 것입니다.

 

김현승 씨는 <절대 고독>이라는 시를 썼습니다. 그는 그의 정신세계 속에서 그리스도 이후의 사람인 절대 고독을 발견합니다. 그 절대 고독은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도 치료할 수 없습니다.

 

시 속에도, 인간의 의지 속에도, 인간의 지식 속에도, 고독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무 데도 없습니다. 그는 그것을 묻고 있었습니다. 문제를 던지고 갔습니다. 무엇으로 이 절대 고독을 극복할 수 있습니까?

 

야스퍼스는 '극한 상황', '한계 상황'이라는 말을 썼는데 극한 상황 속에서 살겠다고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행동 철학입니다. 행동주의적인 휴머니즘입니다.

 

현대는 희망의 철학을 말하고 있지만 어디에 희망이 있습니까? 아편적인 소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했습니다. 성경 속의 어리석은 부자는 얼마나 헛된 것을 쌓았습니까.

결국은 바벨탑이거나 어리석은 부자의 노역같이 헛된 유토피아를 상상해 봅시다. 과학적 정치적 유토피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소망을 약속하지만 소망이 어디에 있습니까? 아무 데도 없습니다. 누구에게도, 어느 나라에도 없습니다.

 

버나드 쇼는 소원대로 안 되는 절망과 소원대로 된 다음에 오는 절망이 있다고 했는데 전자의 절망은 우리의 것이고 후자의 절망은 미국의 것입니다. 후자의 절망이 더 어렵습니다. 치료 불가능입니다.

 

마음대로 안 되는 절망은 하나둘씩 소원 성취가 되면서 계단을 올라가듯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지나가 버린 25시에 살고 있는 절망은 무엇으로도 치료가 안 되는데 이 절망의 안개가 우리를 덮고 있습니다.

 

인간은 절망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딜레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소망입니다.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소망이 없는 불이 꺼진 인간은 태양을 잃어버린 떠돌이별과 같습니다. 위로도 아래로도 갈 수 없는 떠돌이별처럼 이런 것 속에서 순간적인, 아편적인 소망을 이야기해 보았자 그것이 소망일 수가 없습니다.

 

참 소망은 영생이 있어야 합니다. 부활이 있어야 합니다. 그 영생은 보통 생활이 연장된 영생이 아니라 그 정체가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생명 강가에 생명과를 맺는 생명수가 흐르는 곳에서의 영생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명이라야 합니다. 예수님이 약속한 영생이 아닌 것은 고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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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2/05 [13:01]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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