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는 묻지 말자. 내 마음을 지나 손짓하며 사라진 그것들을, 저 세월들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는 법이 없다. 고개를 꺾고 뒤돌아보는 새는 이미 죽은 새다.”
이는 류시화 시인의 산문집에 나오는 글입니다. 류시화 시인 역시 시를 쓰는 것도 힘들 뿐만 아니라 더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은 자신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는 세월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 않고 가슴에 피를 묻히고 날아간 새(세월)에 대해 꿈꾸어서는 안 될 것들을 꿈꾸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죽을 때까지 시간을 견뎌야 하는 것이 가장 두려운 일이었다고 하죠. 요즘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매여 살고 미래를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특별히 송년을 보내며 새해를 맞을 것을 부담스럽게 여긴다고 합니다.
원래는 새해를 맞는 것을 가슴 설레이고 두근거려야 하는데 말이죠. 그 이유는 과거에 매어 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매여 있으면 절대로 내일이 보이지 않고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가슴에 피를 묻히고 날아간 새(세월)때문에 괴로워하는 거지요. 죽을 때까지 시간을 견뎌야 하는 것이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면 내일을 맞는 것이 두렵습니다. 특별히 새해를 맞는 게 아주 부담스럽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오로지 과거만 보이고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글은 새로운 반전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다시는 지나간 세월을 묻지 말고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되새기지 말자는 것입니다. 날아가는 새가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상처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픈 상처는 반드시 상흔을 남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상처가 있는 사람은 상흔의 후유증을 앓게 되고 그 세계에 머물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내일이 두렵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바로 뒤를 돌아보다 목이 꺾인 새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상처가 크면 클수록 상흔은 더 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상흔은 생각에 따라서 다를 수 있습니다. 그 상흔 때문에 더 멀리, 더 높게 날아간다면 그 상흔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제 얼굴에도 저만 아는 상흔이 하나 있습니다. 청년 시절 오토바이를 타고 야성의 질주를 하다가 사고가 나서 왼쪽 광대뼈 위에 얼굴을 다쳤습니다. 저를 보는 사람마다 “어떻게 이렇게 피부가 좋으시냐?”고 하지만, 제 얼굴을 자세히 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가까이에서 얼굴을 보면 아직도 그때의 상흔이 있습니다. 그 상흔이 저를 저 되게 하고 겸손하게 해 줍니다. 대형교회 목사로서 제가 선택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저도 모르게 나라는 성 안에 갇혀서 안일과 나태와 자만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은 제 왼쪽 광대뼈 위에 있는 상흔 때문입니다. 그걸 볼 때마다 과거의 상처와 아픔이 기억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상흔 때문에 계속 날아가는 것입니다. 앞장서서 일하다 보니까 얼마나 많은 마음의 상처를 입고 상흔이 있겠습니까? 그때마다 저는 그 상흔을 보며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계속 날아갔습니다.
장자는 잘생긴 나무가 먼저 죽는다고 했습니다. 잘생긴 나무는 주로 상처 없이 자라는 나무고, 못 생긴 나무는 험한 세파에 구부러지고 휘어지고 온갖 상흔을 지닌 나무입니다. 그런데 잘 생긴 나무는 먼저 다 베임을 당하고 결국은 못생긴 나무들이 산을 지킵니다. 지난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아니 지난 한 해 동안 많은 아픔과 상처를 당한 사람일수록 요긴하게 쓰이고 미래의 영산(靈山)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난날의 아픔이 아무리 크고 상흔이 많다 할지라도 무조건 날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안 날아가더라도 세월이라는 바람에 떠밀려 억지로라도 날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떠밀려 가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날개를 펴며 미래를 향해 날아가야 합니다. 주저하면 안 됩니다. 뒤를 보면 목이 꺾입니다. 다만 바라볼 것이 있다면 말씀의 거울을 통하여 우리의 상흔을 바라보며 나의 부족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새해에 주실 하나님의 은혜를 더 기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미래에 나에게 주실 하나님의 눈부신 축복을 기대하게 되어 있습니다. 비록 내 삶에 어떤 고난과 역경이 오더라도, 폭풍과 맞서 싸우는 저 독수리처럼 우리는 날고 또 날아야 합니다.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계속 날갯짓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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