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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김준곤 목사 그리고 CCC-김인중 목사] “인생을 바꾸어 놓은 강의”
김인중 목사-안산동산교회 담임, 안산동산고등학교 이사장, 세계성시화운동본부 명예대표회장
 
김인중   기사입력  2022/11/26 [20:46]

한국CCC 62년의 역사는 고 김준곤 목사(1925.3.28-2009.9.29)를 빼놓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1958년 한국CCC 설립하고 대학생선교를 못자리판으로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를 위해 평생을 헌신했던 김준곤 목사의 팔순을 기념해 지난 2005년에 제자, 지인, 국내외 동역자 110여 명으로부터 글을 받아 [나와 김준곤 목사 그리고 CCC] 라는 기념문집을 만들었다. 기념문집에 원고를 주셨던 분들 중 여러 분들이 이 세상을 떠났다. 역사적인 글들을 뉴스파워에 다시 올린다. (편집자 주)

▲ 김인중 목사(세계성시화운동본부 공동총재)     ©김준수



1972년 초여름, 대학 선배의 권유로 정동 채플에서 있었던 LTC 훈련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첫날에 있었던 예수의 유일성이라는 제목이라는 강의가 제 인생을 완전히 변화시키게 됩니다.

 

종전 14년 신앙생활 동안 제 안에서 끊임없이 반복된 질문들, 즉 꽤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인가? 예수님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인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정말 천국과 지옥이 있을까? 죽은 뒤에 부활이 정말 있는가? 나는 어떻게 해야 진정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와 같은 질문들이 그날의 강의를 통해 다 해결되고 진리가 믿어지는 마음이 저도 모르게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제 인생을 바꾸어 놓은 강의를 하셨던 분이 바로 김준곤 목사님이셨습니다. 다른 130여 명의 학생들 틈새에 끼어 훈련에 참가했던 저는 그렇게 김준곤 목사님을 처음 뵙게 되었습니다.

 

훈련 마지막 날인 66, 4영리를 통해 제시된 복음 앞에서 저는 하나님 앞에 두 손을 번쩍 들고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 나의 주님으로 영접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만난 지 이틀 후인 68일 토요일 오후 2, 경희대 캠퍼스에서 70여 명이 모인 자리에 저도 함께했습니다. 4영리 소책자를 들고 둘씩 짝지어 나간 캠퍼스 전도에 동참하여 제 평생 첫 전도를 시도해 보았습니다. 이날 이후 학원 복음화, 민족 복음화, 세계선교는 저의 비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훈련받고 일주일 정도밖에 안 된 초짜 신자인 제가 주일 오후 정동 채플 2부 모임에서 순장을 맡게 되었고, 그 후 1973년에는 친교부장, 1974년에는 전국 CCC 총순장이 되어 엑스플로'74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엑스플로 '74 여의도광장에 30만 명이 모였던 합숙 전도 훈련, 야간에 100만 명이 모였던 대중 전도 집회, 또다시 30만 명이 모여 여름 장맛비 속에서도 강행되었던 8·15광복절 철야기도, 이 역사적인 현장에 동참하여 섬기는 은혜가 저에게 임한 것입니다. 대학생 순장들과 나사렛 선배 순장들이 청년 민족 복음화와 세계선교 훈련 교재를 가지고 전국과세 계 곳곳에서 모여든 30만 명의 교역자, 교수, 장로, 평신도, 청년 및 대학생들을 집중적으로 전도 훈련 시키는 사역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구체적으로 제가 맡았던 일은 전국 각 지역의 총순장들과 함께 교육으로 섬김을 담당했고, 특히 훈련 · 합숙자 30만 명의 하루 세 끼 식사를 위한 식당 봉사에 참여한 것입니다. 30만 명을 먹이기 위해 밥 짓는 일은 참으로 인상적인 작업이었습니다. 매번 식사 준비 때마다 쌀 칠백 내지 팔백 가마를 아파트용 저수탱크에 쏟아 넣고 물을 채운 후 수십 명의 봉사자들이 장화를 선고 그 안에 들어가서 삽으로 대충 휘휘 저으면서 쌀을 씻었습니다. 씻은 쌀은 양은대야에 퍼 담아 특수 제작된 스팀 철통에 넣어 밥을 한 후, 70여 대의 차량에 밥을 나누어 싣고 반찬으로는 단무지와 새우젓 두 가지만 함께 넣어 수십 학교에 배달했습니다. 그때 일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밤이면 300여 명의 학생들이 성령 폭발 예수 폭발이라고 로고가 적힌 엑스플로'74 티셔츠를 입고 명동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움직이는 광고판이 되었던 일, 학생들이 대회 홍보 포스터를 손에 들고 전국 58천여 교회들을 직접 방문하여 엑스플로'74의 취지와 목적을 알리고 모든 교회의 참석을 권유했던 일, 대학생 순장들이 각 지역 교회를 방문하여 교우들에게 4영리 전도훈련을 실시했던 일, 엑스플로'74를 준비하기 위해 관악산 벨엘기도원에 수백 명의 순장들이 모여 민족 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위해 밤을 지새우며 철야기도를 하던 일 등은 평생에 기억될 경험들입니다.

주일마다 김준곤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불가능이 없는 하나님, 성령님의 능력과 약속을 들으면서 그 진리가 믿어지는 큰 믿음을 갖게 된 그때 그 시절은 저 개인의 신앙 성숙뿐만 아니라 사역으로의 헌신에까지 영향력을 미친 큰 도전의 시기였습니다. 그때 그 만남과 도전 때문에 비록 부족한 사람이지만 오늘날까지 이만큼 달려오게 된 것입니다.

 

김준곤 목사님의 그때 그 설교, CCC 그리고 이들을 통해 큰 은혜와 사명과 기쁨 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 찬송드리면서 오늘날에도 수많은 젊은이들을 향한 그와 같은 메시지와 도전이 일어나 이 땅과 세상이 복음으로 환하게 비춰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김인중 목사는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를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재학 중 김준곤 목사에게서 직접 4영리를 배우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으며, CCC 총순장으로 엑스플로 ‘74행사를 훌륭하게 치러냈다. 이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거쳐 지금의 안산동산교회를 개척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는 복음 전파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변화도 주저하지 않는 혁신가로서 모이는 교회를 거부하고 흩어지는 교회가 되기 위하여 과감하게 셀교회로 전환을 했고, 교회가 교회를 세우는 큰숲 운동에 전력 질주하고 있다. 현재 안산동산교회를 담임하며 안산동산고등학교 이사장, 세계성시화운동본부 명예대표, 한국 교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대표, 한국기독교탈북민정착지원협의회 대표회장으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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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2/11/26 [20:46]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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