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년 전부터 우리 마을 승강장에 주민들을 위한 서비스 공간을 마련해 두었다. 승강강의 크기는 길이 3m가 채 되지 않은 소소한 공간이다. 이렇게 작은 곳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을까?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법이다. 문화적 혜택이 적은 시골 주민들을 위해 짧은 글을 나누고 싶었다. 글의 내용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내용들로 꾸몄다. 지난번에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를 소개했었다. 열렬한 반응이었다.
이번에는 김춘수의 꽃을 소개했다. 마을 사람들 중 시를 싫어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이제 새로운 글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규칙적으로 게시하다 보니 자연스러운 마을의 문화가 되었다. 벌써 나는 다음 글을 고민하고 있다.
이웃 마을 사람들도 부러워한다. 마을 방문객들도 시골 마을에서 멋진 시를 발견하고 놀람과 부러움의 반응을 보인다. 맵자하게 걸린 현수막을 배경삼아 포토존을 삼기도 한다. 작은 현수막 하나로 우리 마을은 문학 마을이 된 것 같고, 나는 시인의 동네 주민이 된 듯 우쭐함에 빠져본다.
두 평 크기의 작고 뒤웅스러운 틈새가 페북 덕분에 세계적인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시골 마을 작은 승강장이지만 도시 터미널 못지않은 큰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과장하자면 우주처럼 큰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작은 것을 우습게보지 말 것이다. 하나님은 우주적인 분이시면서 머리카락까지 세시는 세심한 분이시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은 작은 시골에서 사역하셨다. 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지금 알아주는 이 없는 작고 미미한 곳에서 머물고 있다고 서러워하지 말라. 예수님의 시선은 작은 곳, 사람들의 무관심한 곳에 있다. 예수님은 주민들을 위한 작은 서비스 공간인 마을 승강장을 주목하고 계신다. 예수님께는 작은 것이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