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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희 목사의 광야사역]2022년 2월에 있었던 일
영등포 광야교회 임명희 목사의 노숙인 쪽방촌 사역 이야기
 
임명희   기사입력  2022/03/15 [13:02]

기차도 잠이 든 고요한 밤에 그들이 머물렀던 자리를 몇 번이나 가 보았다쪽방에 살았던 정정오 형제의 방문은 자물쇠로 굳게 잠가져 있었다. 임자 잃은 이름만이 문패처럼 문 옆 벽 위에 새겨져 있었다.

 

▲ 정정오 형제에게 복음을 전하는 임명희 목사     © 뉴스파워


이름을 불러보았다.

'정정오 형제님!‘

 

"주상!(그는 나를 주상으로 불렀다.) 오셨어요!"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문 앞에 서서 "주님! 그의 믿음을 보시고 모든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그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그를 받아주셨을 주님을 찬양합니다. 감사합니다."

"또한 한 지붕 울타리 안에 있는 6명의 다른 방의 형제들도 다 구원받도록 믿음을 주옵소서!" 기도를 드리고 나왔다.

 

정정오 형제는 20여 년 이상 동안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 밀고 당기기를 계속하면서 속을 태웠던 사람이다.

 

기골이 장대하여 젊은 날엔 충무로에서 악역의 단역배우로 활동했었다. 그러면서 죄를 많이 지었단다. 속죄하는 의미로 쪽방촌의 음지에 들어와 자신을 쪽방에 가두고 벽에는 "대죄인!, 의본 무언, 풍심 강심, 인생무상" 등을 적어놓고 도사처럼 살았다. 힘이 좋고 성질이 급해 가끔 우리 형제들을 때리곤 했다. 그러다 말리는 나와는 싸우기도 했다.

 

▲ 임명희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고 있는 정정오 형제     © 뉴스파워


그렇지만 주님은 망나니 같은 그를 위해 기도하게 하셨고 그 영혼을 포기하지 않게 하셨다. 그것은 주님의 마음이었다. 그래서 늘 찾아가서 속마음의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친구가 되어 주었다.

 

반드시 예수를 믿으면 천국이요 믿지 않으면 지옥이라고 복음을 전하였다. 때로는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 드린 다음 얼마의 용돈도 드리고 나온다. 이렇게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는 찾아 갈 때마다 늘 부탁한다.

 

"주상! 빨리 끝내시오."

 

그러나, 그렇게 전도를 하고 여러모로 격려를 해드리고 기도를 해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 듣고 난 다음 "주상! 난 예수를 안 믿을 테니까 헛수고하지 말고 다른 데나 가보세요!" 라고 했었다.

 

그렇지만 계속 찾아다니며 친구가 되어 주었다. 십여 년이 넘어 가면서 인사차 일 년에 한 두 번씩 교회를 나왔다. 싹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3~4년 전에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하였다. 그때부터 교회를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의 기쁨이었다. 그러던 중에 중앙통 선배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사단이 났다.

 

"! 네가 무슨 교회를 다닌다고? 사나이가 한길을 가야지, 여기 갔다 저기 갔다 그건 남자가 아니야!" 라는 말을 들은 것이다.

 

그후 나를 만나서 "주상! 사나이는 의리를 지켜야죠. 이제부터 교회 안 나갈 테니 헛수고 하지 말고 오지 마세요! 난 이미 지옥에 한발을 담고 있으니 날 포기하시고 오지 마세요!"라고 선언했다.

 

사단의 방해 공작으로 속이 상했다. 다 된 것 같았는데 아직도 사단은 포기하지 않고 사람들을 통해 그의 마음의 한자락을 잡고 있었다. 참으로 마음에 힘이 빠졌다. 두 달간 찾아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아 다시 용기를 내어 기도하며 찾아갔다.

 

"주님! 정정오형제에게 겨자씨처럼 싹튼 믿음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문을 두드리며 부르자 왜 또 왔습니까?” 핀잔을 한다. 그렇지만, 밀고 들어가 사나이라면 믿음의 의리를 지켜야죠!” 하며 영적싸움을 했다.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셔서 다행히 내쫓지는 않았다. 오히려 말씀을 듣고 내게 기도를 받았다. 다시 예수님을 영접하게 했다.

▲ 정정오 형제 쪽방을 심방하고 있는 임명희 목사     © 뉴스파워



 

그는 다시 마음을 돌려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학습교인을 거쳐 세례교인이 되었다. 드디어 2020년 부활절에 세례를 받고 세례교인이 되었다. 잃어버린 한 양을 찾은 것처럼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가 나와 준 자체가 큰 헌금이었다.

 

그러나 이미 당뇨로 고혈압, 고지혈증, 우울증 등의 합병증이 와 몸이 약해질 대로 약해져 지팡이를 짚고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다녀야 했다. 비틀걸음으로 예배에 나오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예뻤다.

 

그는 예배가 없는 평일에는 바깥 식사 나눔에 지팡이를 짚고 나와 전도 집회에 참여하여 "아멘!" 했다. 그는 주님이 기뻐하는 성도로 변해가고 있었다.

 

작년 연말부터 코로나 4단계 규제가 연장되고 또 연장되면서 금년 설 명절 연휴를 넘어서도 지속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언제부터인가 그가 보이지 않았다. 직원들에게 물었다.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한다. 어느 병원인지, 방문이 가능한지, 건강상태는 어떤지 물었다. 가까운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다 하며 건강을 회복하면 돌아 올 거라고 했다. 그런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작년 12월 중순경에 돌아가셨다는 보고를 2월 둘째 주에 받게 되었다. 맥이 탁 풀렸다. 사랑했던 어린양이 사막벌판에서 떨다가 모래바람에 묻혀 죽은 것처럼 아파왔다. 너무나 허전했다.

▲ 세상을 떠난 김영복 형제     © 뉴스파워

 

 

그 다음 주엔 다리 밑에서 노숙하다가 몇 달 전에 병원에 실려 간 김영복 형제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형제는 우리 심방대원들이나 야간 순찰대원들에게 늘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찬송을 불러주며 위로해 주었던 거리의 천사였다.

 

그가 노숙을 하게 된 사연은 이혼 충격으로 죽으려고 농약 들고 나와 마셨다고 한다. 그러나 죽지 않고 살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노숙하게 되었다고 한다. 차츰 폐지를 줍고 고물을 모아 고물상에 팔며 살아갔다.

 

그에게 이렇게 수고로이 노동하지 말고 수급을 받고 살도록 하시죠.” 하면 아닙니다. 나는 아직 일할 힘이 있어서 일하고 살 겁니다. 수급비는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이 타도록 해야지요.” 참 고개가 숙여지는 위대한 국민이라 느껴졌다.

▲ 세례를 받고 임명희 목사와 기념촬영한 김영복 형제. 앞줄 우측에서 두번째.     © 뉴스파워

 

작년 12월 어느 날 야간 순찰 중에 영등포역 지하도 셔터문 곁에서 반팔 차림으로 떨고 있었다.

 

아니, 어떻게 된 일인가요?”

 

, 리어카(인력거)에다 이불, 내복, 방한잠바 등을 놔두었는데 누가 가져 가버려서

떨고 있는 그의 어깨와 팔을 만져 보았다. 뼈만 남아있었다. 때로는 리어카에서 잠을 자다보면 리어카 채 끌고 간 적도 있었다고 했다.

 

!” 목이 메어왔다잠바를 준비해 입혀 드리고 먹을 것과 핫팩을 주고 돌아왔다.

 

그 후엔 밥 먹는 줄에서 발견 되었다. 저녁 잠자리는 다리 밑 해병대 초소 옆의 트럭 곁에서 이불을 깔고 덮고 잤다. 자다가도 우리가 가면 "내주를 가까이하게 함은" 을 부르며 우리를 위해 격려의 기도를 해주었다.

 

그도 정정오 형제와 같이 2020년 부활절에 세례를 받았던 형제이다. 이런 형제가 떠나간 것이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쪽방촌에 들어와 35년 째 사역하는 동안 많은 사람을 떠나보냈다. '모세는 광야 40년을 지내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냈을까' 그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공허하고 허무했다. 돌아가신 분들이 하나, 둘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미남, 종태, 덕순, 복수, 명길, 제헌, 정준, 영조, 후식, 기중, 간난, 명옥마치 사하라 사막에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저하늘에 별이 되어 있겠지'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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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2/03/15 [13:02]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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