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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틴(8)-고향을 찾아가는 길
로마에서 풀어놓는 한평우 목사의 교회사 이야기
 
한평우   기사입력  2019/12/02 [15:17]

     

▲ 유럽목회연구원 원장 한평우 목사     ©뉴스파워

 

어거스틴이 세례를 받고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은 모자에게 있어서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길이었다. 비록 밀란에서 로마까지 너무나 먼 길이었지만 말이다.

페르시아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약 7-800Km 라고 하는데, 에스라는 그 길을 만 4개월이 걸려 도착했다고 했다(에스라7;9).

그렇다면 밀란에서 로마까지도 옛길로 계산한다면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먼 길이었는데 전혀 지루하거나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뜻이 통하고 영적으로 교통하는 관계가 되었으니 말이다.

 

드디어 387년 여름에 로마의 오스티아 안티 카(Antica Ostia)에 도착했다. 당시 인구가 3만 여명 되는 시끌벅적한 항구 도시이었다. 어업조합이 조성되어 있었고, 극장과 목욕탕들이 여럿 있을 정도로 화려한 도시이었다.

그 도시의 여관에 머물러 언덕이 보이는 베란다에서 어거스틴은 어머니와 행복한 대화를 나누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언덕이 보였다함은 아마 남쪽을 향한 집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어거스틴은 영적 놀라운 경험을 하였다. 비록 그는 이 영적 경험을 은유로 에둘러 표현하고 있지만 천국의 방문이 아닌가 싶다이런 영적 체험은 어거스틴의 미래를 준비하신 성령의 역사(16;6-10)이었을 것이다.

 

그의 고백록에서 어거스틴이 경험한 영적 체험을 옮겨 본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모든 물리적인 것들을 통과하였고, 하늘까지 통과하게 되 었다. 계속하여 더 높이 올라가서 지혜의 생명인 곳에 올랐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사용해야 하는 종이기에 비밀한 세계를 보게 하신 것 같다.

 

그 당시 오스티아 항구는 배들의 출항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콘스탄스 황제 휘하의 게르만 출신 장군 마그네티우스가 병사들이 봉급에 대한 불만으로 원성이 크자 그들을 동원하여 스스로 황제라고 칭하고 오스티아 항구의 모든 배들의 출항을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이런 돌발적인 사건이 아니었다면 이들은 무사히 고향 칼타고로 돌아갔을 텐데 말이다. 우리는 이처럼 오 분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다.

 

어머니는 출항하는 배를 기다리면서 마치 예언자처럼 말했다.

나는 이제 여한이 없다

아들아, 이제 내게는 살아갈 즐거움이 사라졌단다.”

세상에서 그토록 소망하던 일이 이루어졌는데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고 왜 세상에 계속 남아있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겠구나! 나의 유일한 소망은 네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넘치는 축복으로 네가 주님의 종이 되었으니 내가 여기서 더 할 일이 무엇이 있겠느냐?”(자신을 주님께 드리겠다는 아들의 결단을 들은 것 같다).

 

그런데 그 말을 한지 며칠 후에 열병에 걸려 자리에 눕게 되었다. 당시는 말라리아가 많아서 아마도 그런 병에 걸렸을 것이다. 정성을 다해 간호를 했지만 차도는 없고 점점 중하여져 5일 만에 몸져눕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머니의 장례를 어떻게 치러야 할까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상황이 되었다. 고향의 아버지 옆에 어머니의 묘 자리를 이미 마련하여 놓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그 말씀을 드렸더니 어머니는 강력하게 거절하셨다.

우리가 언젠가 부활할 텐데 육신이 어디에 묻힌들 그게 무슨 상관이겠느냐고 했다. 그 말은 자녀들에게 장례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한 배려이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 앞에서 어거스틴은 더 큰 죄스런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자신을 위해 평생을 고생하고 염려하신 어머니, 이제는 편안한 여생을 보내시도록 도와드려야 한다고 다짐했는데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려 하니 말이다. 어머니는 당신이 세상을 떠나시게 되었음을 인지하고 당부했다.

자신을 값비싼 수의로 감싸거나 향유로 방부처리를 하거나 자신의 무덤에 비석을 세우지 말라고 했다. 그 유언 때문이었는지, 후에 발견된 그녀의 무덤은 돌 판으로 된 묘지 덮개에 모니카라고 쓰인 것뿐이었다.

 

결국 어머니는 아흐레 만에 56세로 세상을 떠났다. 누구보다 사랑을 받았던 손자 아데오다투스는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울음을 떠드렸다. 그러나 나는 이를 악물고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참아냈다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알고 많은 성도들이 모여들었다. 나는 눈물이 샘솟듯 터져 나오려 했지만 슬픔을 표현하지 않으려 무던히 애를 써야 했다.

 

어머니는 어떤 의미에서 아들을 위해 존재하였고, 어거스틴의 회심만을 화두로 생각했고 그것을 매일 하나님께 기도로 올려 드린 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화두로 삼고 오늘을 살아가나요?

 

마지막으로 어거스틴의 얘기로 마무리 하고자 한다.

<사람들은 높은 산과 바다의 거센 파도와 넓게 흐르는 강과 별들을 바라보며 놀라지만 스스로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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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2/02 [15:17]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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