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퓨젯사운드 바다 위로 페리가 항해하고 있다. © 뉴스파워 이동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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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봄이 왔나?” 며칠 전 심방을 마치고 아내와 함께 카메라를 들고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에드몬즈 바닷가를 찾아갔다.
이날은 겨울답지 않게 최고 기온이 화씨 52도(섭씨 11도) 일 정도로 포근했을 뿐만 아니라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위에 맑은 날씨여서 정말 시애틀에 벌써 봄이 왔나 생각할 정도였다.
바닷가에 가니 아직 바닷바람은 차가웠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와 해변을 걷고 뛰는가하면 낚시를 하고 벤치에 앉아 독서 삼매경에 빠져있는 등 화창한 날씨를 즐기고 있어 모두 활기차고 행복하게 보였다.
바다 건너편으로는 평풍처럼 펼쳐져 있는 올림픽 산맥들이 하얀 눈을 정상에 뽐내고 있는 가운데 페리들이 오고 가며 퓨젯사운드 바다를 항해하는 풍경은 정말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비록 나무들은 아직도 앙상한 가지로 발가벗고 있었지만 그 위로 붉은 태양이 눈부시게 빛나고 바다 수면도 금빛으로 반짝거리고 있어 벌써 여기저기에서 봄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24절기 중 가장 춥다는 대한이 일주일이나 남았고 입춘은 20일이나 남았는데도 이미 시애틀에 찾아온 봄의 소식은 훨씬 먼저 시애틀 북쪽에 있는 스카지트 벨리에서 들려왔다.
이곳에서는 매년 2월말이나 3월 봄철이면 한인들이 밭에서 맛있는 시금치를 따오고 있는데 올해는 벌써 1월 초부터 시금치들을 뜯어왔다.
연초부터 우리 교회 점심에 맛있는 시금치 국이 올라오는가 하면 집 식탁 위에도 시금치가 겉절이나 나물, 국으로 올라와 봄기운을 가득 느낄 수 있었다.
▲ 스카지트 벨리 밭에서 따온 시금치들을 다듬고 있다. © 뉴스파워 이동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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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에 처음 왔을 때 들판에서 시금치를 그냥 채취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호기심에 따라가 본 적이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밭에서 새봄을 맞아 돋아난 많은 시금치들을 마음대로 채취할 수 있었다. 하얀 눈 산들이 앞뒤로 펼쳐진 평원의 상쾌한 공기와 흙 내음을 맡을 수 있었고 러시아에서 날아온 수많은 흰색 철새들을 사진에 담아보는 경이로움도 있었다.
정말 단 맛이 나는 시애틀 시금치는 공기 좋고 물 좋고 토질 좋은 이곳에서 자라고 더구나 추운 겨울 동안 땅속에서 영양분을 듬뿍 가지고 있다가 새 봄에 돋아난 탓인지 시금치를 즐겨하지 않았지만 이젠 즐겨 찾게 될 정도의 맛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시금치 밭보다 그 밭주인의 이야기였다. 그는 한인들이 시금치를 따가도 아무 소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들을 위해 일부러 씨까지 뿌려 둔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이야기에 그가 보리 추수 때 가난한 사람들이 이삭을 주울 수 있도록 일부러 수확을 다하지 않고 남겨 놓은 성경의 보아스 같은 착한 크리스천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그를 직접 만나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당시 밭주인 60세 Lawrence Berg씨를 만나 이야기를 해보니 역시 생각했던 대로 마음 착하고 친절하며 하나님을 믿는다는 좋은 분이었다.
그러나 소문처럼 일부러 다른 사람들을 위해 씨를 뿌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에 따르면 13에이커나 되는 드넓은 시금치 밭은 시금치를 재배해 파는 것이 아니라 시금치 씨를 파는 농장으로 늦은 봄에 땅을 갈아 씨를 뿌려 시금치가 자라면 9월에 시금치에서 씨를 수확한다.
시금치 하나에 약 1000개의 씨가 생산되기 때문에 씨 수확 후에도 많은 씨들이 땅에 떨어져 있다가 겨울을 지나고 봄이 되면 저절로 자라나기 때문에 이것을 알고 한인을 비롯하여 아시안들이 많이 오는데 그냥 따가도록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 중 믿지 못할 정도로 놀라웠던 것은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시금치 채취 전 주인에게 허락을 요청한 것은 우리뿐이었고 한번 왔다가 다시 감사 표시로 한식 불고기를 전해준 것도 우리뿐이라는 말이었다.
그는 허락 없이도 사람들이 즐겁게 시금치를 딸 수 있도록 제지하지는 않는다는 고마운 마음을 보였지만 사실 그 시금치 밭이 엄연히 사유지인 이상 이곳을 들어가고 시금치를 딸 사람은 주인에게 허락을 받는 것이 원칙이다.
그 밭주인이 마음이 좋아 이를 묵인하고 있지만 이럴수록 한인들은 예의를 지키고 그 주인에게 고마워하는 마음도 표시해야 하지 않을까?
지구 온난화 현상인지 이민생활 34년을 뒤돌아보면 시애틀도 10여년 전 까지 겨울은 춥고 눈이 많이 왔다. 언젠가는 크리스마스 시즌에도 눈이 많이 내려 백화점이 문을 닫아야 했고 3월에도 많은 눈으로 스노우 타이어를 달고서도 차가 미끄러지는 고생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해는 12월에 하루 눈이 조금 내렸고 올 겨울은 아예 눈 한번 내리지 않았다.
이런 자연 현상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귀한 메시지를 발견하며 감사한다. 추운 겨울이 될 지 따뜻한 겨울이 될지 우리가 전혀 모르는 것처럼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은 우리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 나무들은 앙상한 겨울이지만 밝은 태양과 햇살로 시애틀의 봄향기를 맡볼 수 있었다. © 뉴스파워 이동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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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그 절대적인 주권은 생사화복부터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자연을 다스리시기에 우리는 보다 겸손해야 하고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고 순응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럴 때 어떤 고난이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감사 할 수 있으며 넉넉히 이겨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아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대상 29:11)
또한 겨울이면 눈이 많이 오는 것을 기대하지만 올해처럼 생각지 않은 이상적인 고온으로 봄이 한두달이나 일찍 온 것처럼 우리가 생각하는 때와 하나님의 때는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기도할 때 쉽게 응답되지 않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좋은 때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때에 응답해 주시고 오히려 우리의 생각보다 더 빠르게도 허락하실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낙심하지 않고 인내하며 계속해 하나님과 동행하며 감사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들은 하나님께 하루빨리 다시 경기가 좋게 해달라고 기도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호경기 때 너무 사치와 방종을 일삼고 물질적인 것만 탐하지 않았는가 반성할 때까지 기다리고 계시다가 진정으로 우리가 받을 준비가 되었을 때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을 주시리라 믿는다.
여름과 가을에는 옥수수, 오이, 호박 등 수많은 채소와 곡식들로 가득했던 스카지트 벨리 벌판이 겨울철에는 춥고 비바람 불어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는 황량한 환경으로 변하지만 봄이 되면 다시 시금치가 자라고 수선화와 튤립이 피는 아름답고 생산적인 벌판으로 탈바꿈한다.
개인이나 가정, 교회나 사업에 여러 어려움이 있더라도 언젠가는 아름답게 피어오르고 열매 맺는 소망을 우리는 항상 마음에 간직하고 시련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시금치가 광활한 벌판에서 눈 많이 내리고 얼어붙었던 겨울의 고통을 이기고 봄철에 아름답게 땅에서 솟아나는 것처럼 우리의 시련과 고통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연단시켜주시어 정금보다 더 귀한 믿음을 갖게 해주시며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릴 수 있게 하신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욥23:10)”
하나님 생명력은 우리가 볼 수 없는 땅속에서 뿌리로 생명의 물이 오르게 하고 꽃망울을 피어오르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역사와 행사는 쉬지 않고 계속되고 있으며 하나님의 행사는 우리 삶속에서도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게 기이할 정도로 이뤄지는 것도 알게 된다.
벌써 시애틀의 봄이 곳곳에서 피어나고 있다. 새해 들어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이 한 달이나 일찍 화창한 봄을 주신 것처럼 기대하고 생각했던 것 보다 더 빠른 큰 기쁨이 임하기를 기원한다.
질병이 있는 환우들에게도 의사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빠른 회복과 치유의 역사 있기를 기도한다. 가정, 사회, 교회 등에서 단절된 관계들도 사랑의 하나님이 더 빠른 화해를 허락하여 주시길 간구한다.
아직 겨울 추위가 기세를 부릴 새해 1월인데도 화창한 봄 날씨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따뜻한 열기를 느끼며 감사드리는 마음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