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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를 향한 한국교회의 과제
이정익 목사(신촌교회 원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화장)
 
이정익   기사입력  2019/01/06 [00:11]

기독교학술원(원장 김영한박사, 샬롬나비 대표, 숭실대 명예교수)는 지난 4일 오후 온누리교회 양재성전 화평홀에서 "2019년 한국사회를 향한 교회의 소명"을 주제로 제73회 월례포럼을 개최했다. 다음은 이정익 목사의 발제문이다. 

▲ 기독교학술원 제73회 월례포럼     ©뉴스파워


새해 한국사회를 향한 한국교회의 과제 (목회적 관점에서) - 예루살렘 교회를 중심으로 -  

 

새해 한국사회를 향한 한국교회의 과제는 많다. 그중 가장 시급한 것은 한국교회가 시급히 종교다움을 회복하는 일이다. 현재 한국사회가 교회를 비난하는 것은 종교다움과 교회다움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교회다움은 교회가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고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종교다워지면 그 자체로서 그 역할을 충분히 하는 것이다. 교회다움의 진정한 모습은 행 2:43-47절에서 찾을 수 있겠다. 기독교 초기 예루살렘교회는 종교다움과 교회다움의 원형이었다. 그 모습을 몇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다

 

 

1. 진정성

 

43절을 보면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라고 하였다. 종교가 종교다워지면 세상 사람들은 그 종교에 대해서 두려움을 갖게 된다. 그 종교의 진정성, 순수성에 성령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성령의 역사는 이 진정성 위에 임하시고 역사하신다. 오늘 교회는 이 진정성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세상이 더 이상 교회를 향한 마음에 두려움이 없다. 한국교회가 이 진정성을 회복한다면 교회에서 선포되는 메시지에 힘이 실릴 것이고 정신적으로 중심지가 될 것이다.

 

2. 공감성

 

45절을 보면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을 필요에 따라 나누었다고 하였다. 여기 나눔은 세상에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진정성과 변화의 열매로 나타난 자발적 동기로 나눔이 이루어졌다. 세상은 그 자발적 나눔에 모두 공감하였고 사람들은 교회로 몰려왔다.

오늘 교회가 진정성을 상실하였기 때문에 다른 종교에 비해 더 많이 나누는데도 불구하고 칭찬도 없고 감동도 공감도 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오늘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받은 후 잘 보이기 위해서 나누다 보니 공감이 안 되는 것이다. 공감은 그 속에 변화의 힘을 입고 진정성이 나타날 때 이루어진다. 3,1운동 당시 한국 기독교 인구는 30만 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3.1절을 주도하였고 민심을 끌고 나갔다. 그 힘은 한국교회가 세상에 보여준 공감성 때문이었다.

1885년부터 1895년까지 10년간 한국교회 신자 수는 530여명에 불과하였다. 그런데 1895년 명성황후가 무참하게 시해되고 온 민족이 낙심해 있을 때 설상가상으로 청일전쟁 직후 악질인 전염병이 이 땅을 휩쓸어 갔다. 그때 죽은 시체들이 거리에 방치되기까지 하였고 자식이 죽었어도 처리를 하지 못하고 문밖에 버릴 정도였으나 관공서까지 전염성을 염려하여 그대로 방치하였을 정도였다. 그때 기독교인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그 시신들을 정리하였고 고난받는 민족과 함께 하였다. 그 결과 1895년에서 1905년까지 10년 동안 기독교인이 530여명에서 26,050명으로 늘어났다. 이 급격한 기독교인의 증가 이유는 순전히 교회를 향한 공감성 때문이었다.

그리고 2년뒤 1907년 평양을 중심으로 영적대각성 부흥운동이 열리면서 한국교회는 신자수가 200% 증가하고 전도소가 222%, 세례교인이 194%, 학습교인이 329%로 증가하여 전체적으로는 267.84%의 부흥을 가져오게 되었다. 그리고 5년뒤 그 힘이 3,1운동을 주도하는 힘으로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공감이다. 공감이 되면 사람들은 몰려들게 되어 있다. 오늘 한국교회가 새해 한국사회에 주어야 할 과제는 많은 일이나 구제나 선심이 아니고 이 공감을 주는 일이라 하겠다.

 

3. 일치성

 

46절을 보면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 떡을 떼며 ..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라고 하였다. 초대교회의 최고의 가치는 이 일치성에 있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 떡을 떼며 ...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이 모습은 일치성의 극치의 모습이다.

오늘 한국교회의 최고의 약점은 이 일치성의 상실일 것이다. 교단의 분열과 분파 그리고 연합기관의 분열은 기독교의 고질적인 병폐에 속한다. 이 기독교의 분파적 DNA는 마침내 개교회의 분열로 이어졌고 또 이 분열성은 마침내 교회에서 가정으로 다시 이 사회로 펴져나가 영향을 미쳤다. 세상 사람들이 한국 기독교에 가장 강하게 주문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가 되라는 책망일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미 이 분열로 가장 중요한 종교성인 일치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이제 누구도 한국교회를 신뢰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4. 정체성

 

47절을 보면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다고 하였다. 칭송은 아무한테나 주어지지 않는다. 감동이 되어야 칭송이 나온다. 세상 사람들이 무엇에 감동하는가 하면 정체성이 분명한 사람에게서 감동한다. 그 말은 한국교회가 세상에 무엇을 얼마나 할 것인가를 생각하기 이전에 한국교회가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하라는 말이다.

정체성의 확실한 모습은 이스라엘민족에게서 찾을 수 있다. 오늘도 유대인 거리를 가 보면 안식일이 시작되면 달리던 버스들이 순간 올스톱 한다. 거리의 가게 문이 닫힌다. 호텔의 엘리베이터도 멈춘다. 아이들은 손에서 책을 놓고 인터넷을 끄고 오락을 그치고 일주일 중 하루를 고요한 경건의 시간을 갖는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이스라엘 선수들은 안식일날 계획된 경기는 모두 포기하였다. 안식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정체성의 분명함 때문에 세계인들이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서 인정을 넘어 두려운 마음까지 가지게 된다. 정체성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오늘 한국교회는 급성장 하는 복을 받았다. 그리고 그 어느때보다 더 많은 풍요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 그 급성장과 풍요 때문에 한국교회는 교회의 정체성을 잃고 말았다. 온갖 비합리적인 행태들이 난무하게 되었다. 부정과 비리로 구속되는 저명인사들은 거의가 기독교인들이다. 오늘 교회들은 교회를 크게 건축하고 그 안에 거대한 식당을 만들어 놓고 자기들끼리만 모여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교회 주변의 음식점이 문을 닫아도 교회는 개의치 않는다. 주차장도 자기들끼리만 사용한다. 까페도 자기들끼리만 모여 즐긴다. 그러다 세상이 교회를 향하여 욕을 하니 잘 보이기 위해서 나눔 프로그램을 가진다. 이런 한국교회의 모습에 세상은 조소한다. 그래서 오늘 집근처에서 교회를 건축한다고 하면 목숨을 걸고 반대하는 것이다. 교회의 교회다움 즉 교회의 정체성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5. 성결성

 

47절을 보면 하나님을 찬미하며 ...”라고 하였다. 예루살렘교회는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 하나님을 찬미하였다.

오늘 한국교회도 예배 때 하나님을 찬미한다. 성전에 모이는 일에도 힘쓴다. 그런데 문제는 주일날 이렇게 예배드리고 하나님을 찬미하고 집에 돌아가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철저하게 잊어버리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 모습이 지금 한국교회가 직면한 현실일 것이다. 이것은 오늘 교회가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공동체적으로 순수함을 상실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즉 성결성을 상실한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의 최대의 약점은 이 성결성의 상실이다. 그래서 오늘 한국교회는 버려진 소금 꼴이 되었다. 성경에서 말하는 길가에 버려진 소금이야기는 효용가치가 없어진 소금을 말한다. 불을 피울 때 소금을 친다. 그러면 소금이 튀면서 불을 일으킨다. 이를테면 불을 붙이는데 아주 좋은 효과를 주는 것이 소금인 것이다. 한번 사용한 소금은 다시 긁어 재사용한다. 그 소금은 초벌 사용한 소금보다 화력효과가 떨어진다. 다시 긁어 또 사용한 후 효력이 없어진 소금은 길가에 버려진다. 그 소금을 사람들이 밟고 지나간다. 그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버려진 소금이다. 왜 버림을 받는가 하면 효력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마침내 이 신세가 되고 말았다.

 

6. 결론

 

오늘 세상은 교회에 대해서 별로 기대를 하지 않는다. 이제 교회는 버려진 소금꼴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오늘 세상이 교회를 향하여 욕하는 것은 아직도 기대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오늘 교회는 종교의 요소이자 교회의 정체성이기도 한 거룩도, 성결도, 자기부정도 전무해졌다. 오늘 한국교회는 심각하게 이단의 피해를 입고 있다. 이단은 기성교회가 혼돈할 때 생성된다. 이단은 이 땅의 교회들이 진정성 있는 공동체로 유지된다면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단은 오늘 교회가 성결성이 상실되었기 때문에 출현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위력 있는 힘은 다움을 유지할 때이다. 교회가 교회다움을 유지하고 종교가 종교다움을 유지한다면 가장 강력한 공동체로 존중받게 될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에는 기사와 이적이 일어났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것은 예루살렘 교회가 교회다움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으로부터만 인정받은 것이 아니고 위로부터도 인정받아 그 교회공동체 위에 성령의 역사까지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교회다움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그것은 성결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새해 한국교회는 얼마나 예산을 많이 책정하여 이웃에게 나누어 줄 것인가를 생각하기보다 먼저 교회다움을 회복하고 종교다움을 회복하는 일부터 힘써야 한다. 그것이 한국사회를 위한 한국교회의 사명이자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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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1/06 [00:11]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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