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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원리주의와 지하드(9)
FIM선교회 대표 유해석 선교사 (전 총신대 강사)의 이슬람 바로 알기
 
유해석   기사입력  2014/12/11 [10:49]
4. 이슬람의 교리 타끼야

  이슬람에서 용납될 수 없는 거짓말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알라에 대한 거짓말이다. 무함마드 외에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거짓말은 용납되지 않는다.

  알라에 거역하여 거짓하는 자와 아무것도 계시되지 않았는데 나에게도 계시가 있었음이라 말하는 자, 그리고 알라께서 계시한 것과 같은 것을 계시할 수 있다 말하는 자보다 더 사악한 자가 누구뇨? 그대는 그 악한 자들이 죽음의 고통에서 헤매는 것을 보리라. 천사들이 그들의 손을 펼쳐, ‘너희의 영혼을 포기하라 오늘 너희는 수치스러운 벌을 받으리니 너희는 알라께 거역하고 거짓하고 그분의 말씀에 거만하였느니라.’ 하더라(꾸란 6:93)

  두 번째 금지된 말은 무함마드에 대한 거짓말이다.

  알 무기라(Al-Mughira)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선지자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잘못을 나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는 것과 매우 다른 것이다. 나에 대하여 고의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자는 분명 불지옥에 자신의 자리를 예비하게 될 것이다.

  이슬람의 도덕적 딜레마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거짓말이 허용된다는 것이다. 아랍어로 타끼야(taqiyya)라는 말은 ‘덮어씌우다, 가리다, 숨기다’라는, 즉 ‘은폐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무함마드가 죽은 후에 이슬람은 두 개의 종파로 갈리게 된다. 무함마드가 후계자를 남기지 않고 죽게 되자 이슬람공동체에서 뽑힌 칼리프를 전통적으로 후계자로 인정하는 수니파와 무함마드의 직계손만이 무함마드의 후계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시아파로 나뉘게 된다. 우마이야 왕조를 거치면서 정권을 잡은 수니파가 시아파를 핍박하였다. 시아파는 수니파의 정권 이래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타끼야를 교리화시켰다. 시아파에서는 이 관습을 이어받아서 1300년이 넘게 이 교리를 신앙에 적용하였다. 수니파에서도 이를 수용하면서 신앙이 없는 자들을 호도한다는 의미에서 이함(iham, 기만) 전술을 정당화하였다.

  무함마드가 거짓으로 이슬람이나 메신저를 부인해도 좋다고 허락한 맨 처음 사람은 아마르 벤 야세르(Amar Ben Yasser)였다. 무함마드의 친구였던 야세르가 꾸라이시 부족에게 붙잡혀서 인질이 되었고 꾸라이시족은 야세르를 심하게 고문했다. 야세르는 자유를 얻기 위하여 무함마드와 이슬람을 부인하였다. 야세르는 꾸라이시족으로부터 풀려나자마자 무함마드를 찾아가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고백했다. 무함마드는 만일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수치스럽게 여기지 말고 이번에 했던 대로 똑같이 행동하라고 가르쳤다. 이 때에 계시된 꾸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너희의 맹세 속에 비의도적인 것에 대해서는 책망하시지 않으시나 너의 심중에 있는 의도적 맹세는 책망하시느니라. 알라는 관용과 은혜로 충만하심이라.(꾸란2:225)

  무함마드는 힌디(Sha'ban Bin Khalid Al-Hindi)가 자기에 대하여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알조하니(Abdullah bin Anis Aljohani)를 불러서 힌디를 살해하라고 일렀다. 무함마드는 알조하니에게 힌디의 생김새를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알조하니는 상대편 진영에 가서 무함마드를 비난하며 무함마드를 죽이는 대열에 합류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 힌디는 알조하니를 신뢰하여 그 날 저녁에 자기 장막에서 머물게 하였다. 힌디를 비롯하여 다른 모든 사람들이 잠들자 알조하니는 힌디를 살해하고 그의 머리를 잘라서 무함마드에게 가지고 왔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과 기록된 역사의 공통된 무슬림의 신앙 아래에서 다섯 가지의 경우에 거짓말을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1)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2) 평화 또는 화해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

  3) 여성을 설득하기 위해

  4) 여행을 할 때(사무처리)

  5) 누군가를 이슬람으로 개종시키기 위해 

  위의 각 경우에서 우리는 상대진리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많은 무슬림들은 이것을 거짓말하는 것으로 정의 내리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이것이 문제를 대하는 이슬람의 시각이다.
 

나가는 말

  이슬람 원리주의를 연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리주의는 전통 이슬람이 아니라는데 동의한다. 이슬람 원리주의를 좋게 말하는 자들은 이슬람 세계의 세속화에 대한 종교적 반응이라고 말한다. 즉 세속 이슬람을 거룩한 이슬람으로 바꾸려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또한 이슬람 원리주의와 이슬람을 분리하기도 한다. 이슬람 원리주의는 신앙이 아닌, 정치질서에 중점을 두면서도 단순한 정치가 아니라 종교화된 정치라는 데서 이슬람종교가 아니라고 항변한다. 또한 이슬람 사회의 정치는 이상적인 무슬림 공동체의 미명아래 종교화되고 이렇게 형성된 정치질서를 “샤리아 국가”라고 한다. 그러므로 종교가 국가와 함께 샤리아에 기반을 둔 정치질서 안에서 결합된 이데올로기로 본다. 

  이슬람 원리주의의 주된 신조는 단연 샤리아에 근거한 정교일치인데, 이는 신앙이라기보다는 신앙이라는 미명하에 정치체제의 구색을 맞춘 것이다. 여기에서 정치체제란 이슬람 신앙과는 일치하지 않은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데 종교가 이용되는 과정을 말한다. 정치적 종교는 세속적 목적을 추구하는 수단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또한 모든 무슬림들이 이슬람 원리주의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실상 무슬림 가운데는 일반적인 무슬림(Secular Muslim), 종교적 무슬림(Traditional Muslim), 헌신적인 무슬림(Committed Muslims)이 있다. 더 세분화 한다면 일반적인 무슬림 가운데 세속적인 무슬림, 무신론적인 무슬림이 있다. 이들은 전체 무슬림 가운데 약60-70%를 차지한다. 그들은 종교에 관심이 크지 않다. 다만 문화적으로 이슬람 종교를 믿었기에 자신을 무슬림이라고 말할 뿐이다. 종교적인 무슬림 가운데 전통적인 무슬림, 수피파에 속하는 무슬림이 있을 것이다. 이들이 비록 이슬람의 전통을 잘 따른다고 하더라도 일반적인 무슬림과 함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 대하여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된다. 이들은 약 15%를 차지한다. 헌신적인 무슬림 가운데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많이 포함되어있다. 헌신적인 무슬림 입장에서 일반적인 무슬림이나, 종교적인 무슬림도 세속적인 무슬림으로 볼 것이다. 다양한 종류의 무슬림이 있다고 해도 이슬람의 예언자인 무함마드에 의하여 지하드가 시작되었고, 지하드로 인하여 이슬람이 성장하였다는 사실을 동의할 것이다. 

  
  이슬람의 세계관은 이 세상을 전쟁의 집(Dar al Harb)과 평화의 집(Dar al Islam)의 집으로 나눈다. 예를 들어서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핍박을 받았던 시기를 전쟁의 집이라고 하고, 메디나의 경우 이슬람의 지배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평화의 집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슬람의 지배를 받지 않는 곳은 전쟁의 대상이 되고 이슬람의 지배를 받으면 평화의 집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슬람의 성장과 함께 무함마드의 삶과 꾸란을 알아 갈수록 세계의 이슬람화를 위한 지하드는 계속 확장하게 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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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12/11 [10:49]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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